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사람은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는 말도 있죠. 내 자신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면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분이 있습니다. 현재 경북대학원 사회복지학과 1학년 과정에 있으면서 노인 요양보호시설에서 일하는 탈북여성 안금선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안 씨의 남한생활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남한에 사는 많은 수의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방송에선 가명을 써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안 씨는 본명을 써달라고 요구합니다.
안금선: 안금선이란 인간이 그 풍파를 다 겪고 한국에 와서 이 나이에, 북한에서 45세라면 곧 할머니 소리를 들어야 하거든요. 그런 사람이 한국에 와서 대학에 다녀서 이제 석사 과정에 사회복지사라는 자격증 가지고 요양원에 근무하면서 월급 받아서 내차를 타고 남편도 자기차를 타고 출근을 하거든요. 그러면 그때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습니다.
내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있구나 하고 저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거죠.
오히려 내가 남한에 가서 이렇게 살고 있다고 알리고 싶다는 거죠. 좀 더 들어볼까요?
안금선: 북한에서 2009년 11월 17일 강을 건넜습니다. 제가 오면 남편도 따라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같이 온 겁니다.
안 씨가 북한에서 중국과 수예품을 거래는 생산자로 무역 일을 했는데 사업이 커지고 중국과 오가는 돈 액수가 늘자 보위부나 안전부에게 자신을 체포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도강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북한에 대한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금선: 저는 북한에 있을 때 아이들이 다 죽었어요. 연탄가스 먹고 죽은 아이도 있고 한국에서는 병도 아니지만 그런 병에 죽은 아이도 있고요. 북한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물론 내가 40년을 살아온 고향이니까 가슴 한 구석에는 북한 사람들이 못 먹고 못 입고 시장 구석에서 사는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 같은 민족이니까 쓰라린 것은 있죠. 하지만 다른 미련은 없습니다.
남한생활은 2010년부터입니다. 주간에는 대학에 다니고 야간에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해서 이젠 대학원생 북한식으로 말하면 준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자신도 대학원 과정까지 공부 하게 될지는 몰랐다고 하는데요.
안금선: 대학원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등록금도 비싸고 하니까 남편과 상의를 해야겠다고 맘먹고 조심스럽게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남편에게 물었더니 가고 싶으면 가라 하더라고요. 한 학기에 200만원이 들지만 그 돈 안 쓴다고 그 지식이 머리에 들어오겠나? 그러니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중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으니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남편한테 너무 고마운 거예요.
큰 어려움 없이 남한사회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안 씨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힘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금선: 한국 사람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려고 던지는 말이 아니고 자기들에게 익숙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니까 한 번 더 보고 하는데 그런 것을 힘들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죠. 예를 들어 대화를 하다가 '괜찮아요' 하는 표현을 우리는 '일 없어요' 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한국 사람들은 불쾌하게 생각해요. 불만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나는 별 뜻이 없이 말했는데 저분이 뭘 오해했나? 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한 번만 설명을 하면 그 분뿐만 아니라 주위 분들도 다 알게 됩니다. 그러면 나도 편해져요. 한국에 편하게 살려고 왔잖아요. 전 편하게 해요.
현재 안금선 씨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면서 주경야독 아주 바쁘게 사는 분입니다. 그리고 주말이나 휴일에도 쉴 수가 없답니다. 봉사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안금선: 제가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활동도 여러 곳을 다니고 있어요. 고아원, 쪽방 상담소라고 노숙인들 사는 곳에 가서 상담봉사도 하고 그리고 주에 한 번씩 무료급식 봉사도 갑니다. 또 장애인 가족결연을 맺어서 봉사도 가거든요
기자: 그렇게 봉사를 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안금선: 재밌어요. 봉사가 취미생활이에요. 남을 도와준다고 하기보다 제가 봉사활동을 가면 성장이 돼요. 내가 이렇게 하면 하늘나라에 있는 우리 애들에게 하느님이 잘해주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마음도 있고 노숙자를 위한 봉사에 가면 머리가 숙여져요. 이분들이 지금은 경제적으로 나보다 어려워도 한국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있을 텐데 나는 그런 것이 없잖아요. 하루가 아니라 매 순간에 감사함을 느껴요. 봉사가 남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굉장한 내게 힘이 됩니다.
바쁜 와중에도 지난해에는 유럽여행까지 다녀왔다고 하는데요.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을 둘러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는데요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쓸 줄 아는 사람, 안금선 씨의 좌우명은 "사랑, 나눔 더불어 함께 가요" 입니다.
안금선: 처음에는 사랑이었습니다. 좌우명이 사랑이었는데 그때는 내 자신을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남도 사랑하자 이런 것이었는데 나눔이 없으면 성장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봉사를 다니면서 알았는데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봉사를 통해 배울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랑에는 나눔이 없으면 사랑이 커질 수 없겠구나, 해서 나눔을 붙였고 하면서 보니까 사랑하고 나누면서 사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삶이구나.
부족한 것 없이 자신의 것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안금선 씨 그는 가슴에 품고 있는 소망이 있답니다.
안금선: 지금처럼 열심히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나눌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겁니다. 꿈이 있다면 통일이 되면 고향마을에 가서 우리 마을에 지금 하는 요양원을 하나 만들었 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북한에 있는 노인 분들도 내가 돌봐드리는 어른들처럼 너무 행복 하게 보낼 것 같아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안금선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