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많은 수의 탈북자가 대학을 다니거나 평생교육 기관을 통해 사회정착에 애쓰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도 꽤 되는데요. 오늘은 탈북자 상담사로 일하면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40대 중반의 탈북여성 김정원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김정원: 탈북자들에게 밤에도 위기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데 그런 경우 상담을 받을 수 있게 전화상담도 운영하고 있어요 ...
24시간 탈북자의 전화상담을 받는 곳에서 일하는 김정원 씨는 기자와 통화한 날에도 밤 근무 중이었습니다. 8시간 씩 3교대로 일하면서 탈북자 어려움이나 고민을 호소해오면 전화로 얘기를 들어주고 해결책을 함께 찾는 겁니다.
김 씨는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7년 살기가 너무 힘들어 중국에 있는 고모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기 위해 집을 떠난 것이 탈북으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중국 생활을 거쳐 2003년 남한에 도착합니다.
김정원: 처음에는 직업훈련학교 다니면서 돈 쓸 일도 있고 하니까 고기 집에서 3개월 일했고 싸우나 안에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3개월 했고 섬유공장에 가서 옷에 염색하는 실험실에서 3개월 일했어요. 그러다가 학원 원장님이 소개를 해서 1년 직장생활 하다가 경리 모집광고를 보고 직장을 옮겨 경리로 한 3년 일하면서 사이버 대학을 다녔어요. 또 대학을 다니는 과정에 상담사 교육을 하는 곳이 있어서 주말에는 교육을 받았고요.
현재 탈북자 상담사로 5년째 일하고 있는 김정원 씨. 그가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 사회경험을 위해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쓸 돈을 벌기 위해 시간제 일인 아르바이트 줄여서 알바를 많이 했는데요. 이런 경험이 남한사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정원: 처음에는 알바를 3개월 하면서 이건 돈이 필요하니까 공부하기 위해 한 거고요. 자본주의 사회는 자기가 하는 만큼 버니까 한 것이고 한 번은 이력서를 냈는데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는가 묻더니 말투가 틀리니까 어디서 왔냐고 해서 북한에서 왔다고 하니까 믿을 수가 없다 해서 안됐어요. 그런데 한국에는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더 많더라고요. 일하면서 느낀 것이 자신이 노력하고 진실 되게 누군가를 대하면 인정을 받고 인정받으면서 일하니까 재밌고요. 처음에는 내 진심도 보여주지 못했고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자리에서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취업도 못하고 해서 힘들었는데 저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 분이 많아서 이제 인정받으면서 일하고 있어요.
탈북자들이 남한에 가면 대개는 북한에서 꿈꿔 왔던 일들을 하고 싶어 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남한에 가서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고 선전대에 있었던 사람은 가수가 되려고 합니다. 김 씨가 원했던 직업은 경리였죠.
김정원: 저는 북한에 있을 때도 경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북한에서는 수학을 잘했고 여기는 계산을 전자계산기로 하지만 북한에서는 주판으로 하잖아요. 내가 한국에 와서 잘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생각을 했는데 주산도 잘하고 하니까 경리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어요.
이제 남한생활 10년이 넘었으니까 생활하는데 불편함은 없습니다. 강산이 한 번 변한 세월 속에 남한땅이 고향처럼 돼버렸는데요. 요즘도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고민상담을 해주다보면 기억이 가물가물해 지는 북한에서의 생활이 떠오른 답니다.
김정원: 내가 만약 한국에 안 오고 북한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많이 하죠. 지금 한국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북한에 있었으면 절대 이렇게 못살 거예요.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난 지금 남한생활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탈북자가 남한에 가면 제일 먼저 구입하는 것이 핸드폰 즉 손전화기고 제일 먼저 취득하는 것이 주민등록증을 빼고 나면 운전면허증입니다. 그런데 김 씨는 아직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친구들이 자기 차를 몰고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가는 것을 보면 항상 부럽긴 했지만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하고 면허시험을 본다는 것이 안됐는데 요즘 들어 운전을 해서 나중에 통일이 되면 자신의 차를 몰고 고향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김정원 씨는 자신이 경험한 남한생활을 이렇게 말합니다.
김정원: 일단 일하는 만큼 인정받으니까 좋고요. 어떤 신분을 가졌던 간에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수 있다는 것이 만족이고요. 모든 면에서 한국 와서 사는 것이 좋고요. 또 어느 나라든지 의식주 문제가 제일 큰데 북한에서는 이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 안 되니까 탈북을 하는데 내가 남한생활 10년 살면서 한 번도 의식주 문제에 대해 걱정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게 젤 좋은 것 같아요.
자신의 꿈을 향해서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살고 있는 김 씨. 오늘의 풍요로움에 감사한 마음이고 또 내일을 계획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합니다.
김정원: 지금하는 일은 상담일이지만 나중에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통일이 되면 교수로서 고향에 가서 교육하는 것이 꿈이라서 그쪽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1학기만 있으면 졸업이에요. 욕심일지 모르지만 박사까지 공부해서 교수가 되는 것이 지금으로선 목표고 또 하고 싶은 일이예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김정원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