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살기로 하면 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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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말 중에 천재성 보다는 자기 노력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보다 머리가 똑똑한 해서 된 것이 아니라 몇 갑절 노력을 해서 현재의 자기가 있다는 말인데요. 오늘은 남한생활 4년차가 되는 탈북청년 이찬우(가명) 씨의 이야기입니다.

이찬우: 저는 2007년 7월에 북한을 떠났습니다. 그때 북한에 선거가 있을 때였는데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엄마가 일어나라고 하더니 중국 간다고 하더라고요.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으로 당시 15세였던 찬우 씨는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다니던 중 갑자기 부모님을 따라 탈북 하게 됩니다.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외부세계를 동경했던 것도 아니고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장사를 하던 부모님에게 일이 생겨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렇게 탈북해 중국에서 2년을 살다 남쪽에서 간 목사를 만나 강제북송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되는 한국으로 가게 됩니다.

이찬우: 한국에 2009년 1월에 들어왔습니다. 국정원 조사 2개월 정도 받고 하나원에서 2개월 교육 받고 4월에 퇴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한 5개월 놀며 진로를 찾다가 대안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고 검정고시 공부를 1년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나와서 직업학교 다녔습니다. 기술직 자격증을 따서 굴삭기 기사로 1년을 일하다 나와 방황도 좀 하다가 교회에서 만난 형이 하는 사회적기업에서 사무실 일을 5개월째 일하고 있습니다.

열일곱 살이면 일반적으로 한국 청소년이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며 대학 입학시험 준비에 잠자는 시간도 부족할 때입니다.. 그런데 찬우 씨는 대학 공부 대신 취업을 했습니다. 자격증만 있으면 일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막노동이 아닌 전문 기술자로 돈을 벌게 된 겁니다. 정부에서 학비까지 지원해 주는데 대학을 안간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찬우: 솔직히 아들이 저 하나밖에 없고 부모님이 몸도 안 좋으시고 해서 제가 빨리 가족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제가 공부는 안 좋아해서 공부로 성공할 것이 아니면 사회생활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빨리 찾는 것이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을 했죠. 북한 사람이 여기 와서 실력으로 한국 아이들 따라가기 힘들거든요. 안 되는 길을 밀어붙이는 것도 무식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길로 빠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중장비를 다루는 일은 체구도 작고 아직 남한생활 적응도 완전하지 않은 찬우 씨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래하진 못 했는데요

이찬우: 보수도 괜찮은데 경쟁도 심하고 또 장비가격도 비싸고 일도 너무 힘들었어요. 일하다가 다릴 다쳐서 정상적으로 움직이질 못해요.

기자: 굴삭기라면 땅 파는 기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찬우: 네, 그것도 맞는데 꼭 건설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합니다. 저는 고철상에서 일했는데 운전했는데 고물차 들어오면 옮기고 그 일이 없으면 용접도 하고 그랬는데 다릴 다쳤습니다. 일이 힘들죠. 1년 했습니다.

기자: 지금 사회적기업에 하는 일은 뭔가요?

이찬우: 저는 생산관리를 하는데 천막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기자: 사업은 잘 됩니까 경기가 나빠서 다들 고전하는데

이찬우: 솔직히 힘들긴 한데 그건 제가 알 필요는 없고요. 경제 어렵고 한 것는 위에 있는 분들이 다 알아서 하니까요. 사장님이 시키면 하라는 것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 앞에 있는 업무만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찬우 씨 그의 목소리에선 젊음의 패기보다 인생을 다 살아본 듯한 도인의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힘든 고비를 하도 많이 넘기다 보니까 자신의 나이보다는 인생을 더 알게 된 탓일까?

이찬우: 내가 솔직히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이 많잖아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해라 일한만큼 앞에 차려지니까 앞에 차려진 일부터 먼저 끝내라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얘기해라 이런 것이 항상 마음에 있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하고 회사 출근도 남보다 빨리 가서 사무실 청소도 하고 그래요. 사람이 기분 문제거든요. 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면 좀 실수를 해도 용서가 되요. 그런데 일은 안하면서 내 주장만 펴면 사람들이 오다가도 다 도망가더라고요.

찬우 씨가 느끼는 남한은 자신이 한만큼 차려지는 곳 마음먹기에 따라 뭐든 이룰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현실은 차갑다는 겁니다.

이찬우: 북한에서 살 때는 부담감이 별로 없거든요.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 그런 식이라 편했죠. 어차피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이 북한이니까 대충 대충 했는데 한국 와보니까 경쟁이 심하더라고요. 하나를 하더라도 심한 경쟁을 뚫어야 하니까 그게 좀 어렵고요. 대신하고 싶다고 목표를 정하면 뭐든 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이잖아요.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목숨을 걸어라 머리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목숨 건 사람 앞에선 못 견디더라고요.

남한정부는 남한입국 5년 또는 고등학교 졸업인정 5년 안에 대학에 진학해야 등록금 지원을 해줍니다. 찬우 씨도 이를 알기에 늦기 전에 하지 못한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대학은 안갈 것같이 말하더니 생각이 바뀐 겁니다.

이찬우: 회사 들어와 보니까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무슨 대학 나왔나 무슨 과를 나왔나 물어보고 대학 졸업에 따라 보수도 다르고 편견도 있고 하니까 대학 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대표님도 대학을 가라고 권했습니다.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개인생활을 할 수 있게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그렇게까지 하는데 내가 안하면 어떻게 합니까. 대표님이 열심히 해서 다른 탈북자에게 본을 보이라고 하시니까 그 말을 들었을 때 찡했습니다. 가족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제 찬우 씨의 목표가 확실해졌습니다. 그리고 머리 좋은 사람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줄 차례가 된 겁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청년 이찬우(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