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희망봉사단 대표 황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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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기 때문에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나눔을 실천하는 ‘통일희망봉사단’ 대표인 탈북여성 황현정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황현정: 탈북동기가 솔직히 먹고살기 힘들어서 탈북했다 아입니까

현재 부산에 살고 있는 황현정 씨의 고향은 함경남도 신포입니다. 2003년 탈북해서 중국생활을 거쳐 남한에 간지는 5년 됐습니다. 지금은 부산에서 재활시설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황현정: 장애 아이들을 돌보고 있거든요. 1급 지적장애 아이들을 24시간 돌보는 겁니다. 주간에는 공부하고 야간에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는 겁니다.

기자: 그런 일을 하신 지는 얼마나 됩니까?

황현정: 작년부터 장애인 봉사를 했는데 취업은 7월부터 하게 됐습니다.

기자: 일하는 것은 어떤가요?

황현정: 지적장애인들이라 좀 힘이 들긴 하지만 일단 그 아이들을 내 아이라고 생각하니까 덜 힘든 것 같아요.

기자: 봉사활동으로 잠시 하는 것과 직업으로 일하는 것은 틀릴 것 같은데요.

황현정: 많이 틀리죠. 제가 양치질 하는 것부터 세안, 식사, 목욕, 옷 입히는 것을 다 하는데 장애인 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24시간 돌본다면 8시간씩 3교대인가요?

황현정: 저희는 2교대 근무로 주간 반에는 주로 오전 9시 반에 아이들을 주간 반에 데려다 주고 오후 4시 반부터 데려와서 다음날까지 같이 생활하는 겁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생활하다가 금요일 오후에 집으로 가는 거죠. 엄마 아빠에게 갔다가 월요일에 오는 겁니다.

기자: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황현정: 저희 시설에는 야간에도 있는 아이들이 12명인데 4명에 한명 꼴로 돌보는 교사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6년을 살다가 남한에 도착했을 당시는 많이 떨리고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고 했는데요. 아무래도 북한에서 교육받은 것이 있고 몸에 베어버린 습관 때문에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잠시 남한도착 당시를 회상해 봅니다.

황현정: 과연 내가 남한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많이 고려하면서 떠났는데 하나원 나와서 주거지도 마련해주고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을 보면서 내가 놀란 거예요. 그런데 생활을 해보니까 지원해준 것은 좋지만 그 다음엔 자력갱생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1년 정도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면서 살았습니다.

기자: 남한에 갔을 때는 벌써 40대였는데 20대 젊은이들과는 틀리잖습니까? 어떠셨어요?

황현정: 우리 40대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잖아요. 배우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내가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어요. 서울 동생네 집에 갔다 왔다 하다가 뭔가를 배워야하지 않겠는가? 해서 부산에 내려와서 직업교육도 다니고 하다가 일단 딸이 보고 싶어서 방황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한에 오기까지 얼마나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는데 나이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는 것도 핑계다 싶어서 공부를 했어요.

기자: 대학에 다니셨나요?

황현정: 2년제 전문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어요.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했어요.

기자: 일하면서 대학에 다녔다고 했는데 어떤 일을 해보셨나요?

황현정: 일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김치공장에 가서 한 20일 정도 하다가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도 한 달 정도 하다가 몸이 아파 관뒀고 그 다음에 식당 아르바이트도 하다가 재작년에는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하면서 하는 일을 찾자니 저녁 7시부터 10시는 수업 받고 야간에 식당에 가서 다음날 아침 9시 까지 일했습니다. 5개월 정도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돈을 조금 받아도 낮에 일하는 직장을 선택해서 살았습니다. 2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회사를 세 곳을 옮겼습니다.

기자: 밤 10시부터 하는 식당은 새벽까지 하나 보네요?

황현정: 네, 24시간 영업하는데 야간 공부 끝나고 오면서 다음날 아침까지 일하고 낮에는 몇 시간 자고 지역 탈북자 새로 오면 도움도 주고 그런 식으로 살았죠.

탈북자가 남한에 가면 정부에서 집도 주고 대학도 보내주고 정착금도 주고 한다고 하지만 자기 노력이 없으면 살기 힘든 곳이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나라에서 직업을 정해 주지도 않고 배급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황 씨도 짧은 방황 끝에 당당히 혼자 자립을 이뤄냈는데요. 그 비결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황현정: 제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북한에 있는 딸 때문입니다. 방황하면서 서울 동생 집을 오가면서 시간이 갔는데 딸을 그리워한다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 언젠가 만나는 날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기자: 남쪽에서 5년을 살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과연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겹게 살았다는 느낌인데 어떤가요?

황현정: 네, 저는 행복했다 이런 생각은 없고요. 지금 하고 있는 일상에서 만족을 느끼고 행복이라고 하면 북에 있는 딸을 만나 산다면 그때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그냥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3년 전부터 시작한 봉사활동 지역에 혼자 사는 노인과 고아들을 찾아가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같이 말동무가 돼주는 것. 황현정 씨는 탈북자 회원들과 함께 주말이면 시간을 내서 이렇게 어려운 이웃을 찾아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황현정: 힘들다고 생각하고 일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봉사자체를 즐기고 누군가를 섬기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할 수 있고 저를 비롯해서 우리 회원님들도 자발적으로 참여를 하는 것에 기쁜 마음으로 참가했기 때문에 오늘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부산에 사는 탈북여성 황현정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