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고향] 방송인이 되는 것이 꿈인 철학과 여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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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탈북여성 지은미(가명) 씨는 현재 남한의 명문 여자대학 철학과 학생입니다. 홀로 남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지은미 씨. 아무리 힘든 순간이 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철학과 학생 지은미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지은미: 저는 아버지랑 2005년 헤어졌습니다. 중국에서 누가 탈북자라고 신고를 해서 도망치는 과정에서 아빠랑 헤어지고 저 혼자 도망을 가고...

1997년 북한의 식량난으로 아버지와 함께 탈북 했던 지은미 씨. 중국에서도 불안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엔 아버지와도 헤어지고 더 이상 중국에서 살 수 없게 되자 운명의 장난처럼 남한으로 가게 됩니다. 중국 생활 9년 만입니다.

지은미: 저는 처음에 한국에 탈북자 제도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아마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오지 않았을까 생각도 합니다. 처음에 아빠와 같이 있다가 중국에서 헤어지고 나서 막막하고 할 것이 없으니까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일도 하고 그러다가 학교도 다니고 했는데 전혀 한국에 가면 우대를 해주고 보호해주는지 몰랐죠. 한국 회사 다니다 출장 차 들어왔는데 그때마침 중국에서 내가 도와주던 가족이 돈을 끊으니까 탈북자라고 신고를 해서 인천은 무사히 왔는데 더 이상 중국은 못 들어가게 된 거죠.

지은미 씨는 중국에 공장을 둔 한국 회사의 사원으로 본사 출장을 왔다가 다시 중국으로 갈 수 없게 됐고 스스로 수사기관을 찾아가서 탈북자 인정을 받게 됐습니다. 이것은 2007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에도 중국에 숨어사는 탈북자 사이에는 단파 라디오와 위성방송을 통해 북한 출신이 남한에 가면 임대주택을 받고 정착금, 교육지원, 의료혜택을 받으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지은미 씨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했습니다.

지은미: 워낙 한국 쪽으로는 거의 신경을 안 쓰고 어떻게 하면 중국에서 정착을 할 수 있을까만 생각해서 한족하고만 만남을 가졌거든요. 조선족이라고 하면 말을 하다보면 티가 나고 해서 탈북자 문제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만 어울리다 보니까 한국 소식은 전혀 몰랐습니다.

지은미 씨는 중국을 경유한 다른 탈북자들과는 달리 중국에서 가짜 호구도 만들었고 불안한 생활 속에서도 2년제 전문대학에서 경영학 공부까지 했습니다. 얼핏 보면 순탄한 생활처럼 들리지만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었고 결코 포기하지 않은 용기의 결과물입니다.

지은미: 제일 힘들었던 때가 중국에 있었을 때였어요. 특히 2년까지는 정말 힘들었는데 할만 것이 없잖아요. 중국에서 당시 대학생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고는 싶었지만 국적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가능했지만 일단 대학을 목표로 삼고 일단은 고등학교부터 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후원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를 찾아가서 후원해 달라고 했죠. 겁이 없었죠. 사람은 일단 부딪쳐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참 다행이었던 것은 중국에는 사설 고등학교가 많습니다. 사설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집엘 막무가내로 찾아가 빌어서 겨우 허락을 받았거든요. 그렇게 한반한발 앞으로 나가는 것의 기쁨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남한에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은미 씨는 여자만 입학할 수 있는 여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많은 수의 탈북자가 경영학이나 사회복지학 특히 중국어서 오래 생활한 탈북자는 중국어과를 가는데 지 씨의 학과 선택은 또 다른 우연이자 운명처럼 들립니다.

지은미: 사실 여기 와서 모르는 것이 많잖아요. 대학도 저의 보호 담당관이 대학은 꼭 나와야 한다고 해서 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문과가 무난할 것이란 생각에 인문과를 지원한 겁니다. 철학은 말도 재밌게 하고 조리 있게 하는 분을 보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부러워했었는데 철학을 배우면서 철학을 배우면 그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철학은 인성을 배우는 것이고 또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만큼 사람이 되는 학문, 지식이라기보다 인간 내면을 성숙 시키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느 다른 탈북자들처럼 식량난 때문에 탈북 했지만 평범하지 않은 과정을 통해 남한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지은미 씨. 그가 말하는 남한생활은 한마디로 요약이 됩니다.

지은미: 빨리빨리 이겠죠.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속성으로 되는 것 같습니다. 빨리 배우지 않으면 금방 뒤처지고 앞에 가던 사람도 금방 따라 잡히고... 지금 2학년이라서 아직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뭘 하겠다고 결정짓는 것은 이른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일단 목표를 세운 것은 방송 일을 배워서 방송국에 진출하는 것인데 제 목표가 너무 높은 것 같기도 해서 방송은 아니라도 영상 쪽으로 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매일 눈을 떴을 때 혼자라는 생각에 쓸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헤어진 가족 생각에 우울해 지기도 하지만 현재 남한이 제2의 고향이며 자신의 삶을 값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 씨는 매일 마음을 다잡습니다.

지은미: 물론 외롭고 다시 갓 태어난 아이처럼 다 배워야 하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남은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사는 것보다 내 의지대로 잠깐의 아픔을 극복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는 것이 더 삶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병이 들어 주사를 맞을 때 따끔하고 아프긴 하지만 그것은 치료를 위한 과정이잖아요. 그런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사고와 포기하지 않는 용기. 지은미 씨는 이 방송을 듣는 북한의 청취자에게도 자신이 힘들 때 고난을 이겨내는 방법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지은미: 저는 항상 저보다 힘든 사람이 있다는 그런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낙담하면 내가 너무 나약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아버지를 만나고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힘내고 있습니다. 그래야 아버지 만나도 당당할 수 있잖아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의 여자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지은미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사이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