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인생을 운동경기 종목과 비교하면 오래 달리는 마라톤이라고 합니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누구나 1등을 하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삶도 출신성분과 배경 때문에 출발은 힘겹더라도 마지막은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장식하고 싶어합니다.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간 탈북자들도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해서 후회없는 인생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합니다. 오늘은 남한정착에 성공한 탈북민들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남한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3만 명이 넘는 탈북자가 남한에 입국했습니다. 각기 출신 배경과 북한에서의 직업 그리고 교육정도가 틀린 사람들이 남한정착에 성공할 수 있었던 있었던 공통점은 뭘까요? 그중 하나는 포기할 줄 모르는 도전일 겁니다.
첫번째 사례는 함경북도 출신으로 북한에서 발족심 발관리를 20년 했다는 50대의 허수경(가명) 씨입니다. 남한에서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남들이 한 두번 시험을 보면 되는 것을 열번도 넘게 치루고서야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허수경: 저는 "미 피부건강샵 원장 허수경"입니다. 1년 7개월 동안 시험을 쳐서 12번만에 합격했습니다.
허씨는 남한에서 혼인신고를 하려니 중국 조선족인 배우자의 체류신분이 문제였습니다. 신랑의 비자문제를 해결하자면 자신이 사업장을 내야했고 영업허가를 내기 위해선 피부미용사 자격증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시험에 떨어지고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겁니다.
국가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려면 비용이 따르게 되고 시험이 매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허 씨는 한 번 떨어질 때마다 재도전을 했고 학원에서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용기를 자신에게 끊임없이 세뇌 하면서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격의 순간을 맛봤습니다.
허수경: 2월 1일 아침 9시에 발표하는데 사실은 가슴이 두근거려서 기다리면서도 신랑에게는 말도 못했어요. 또 떨어졌을까봐서요. 9시가 돼서 봤는데 합격이라고 해서 환성을 지르고 춤이라도 칠줄 알았는데 정작 합격이란 두 글자를 보니까 눈물이 솟구쳐서 둘이 붙잡고 울었어요. 우리 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하니까 선생님이 축하합니다 하면서 울어요. 비록 12번만에 합격을 했지만 제가 거기서 느낀 것이 내가 제 2의 인생을 살면서 나한테 좋은 분들이 많구나. 그것에 힘들 얻었어요. 포기하지 말고 힘내자 해서 약원 학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서 최고 점수를 받고 나니까 본인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구나…
허 씨는 현재 자신의 사업장을 차려 사업장 사장이 됐습니다.
두번째 사례는 남한생활 5년만에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고 말하는 김향순(가명) 씨입니다.
김향순: 제가 탈북한 것은 2005년이었고 그때는 자본주의 풍이 들어와서 돈이 있는 사람은 장사를 해서 먹고 살만 했지만 저는 장사할 밑천도 없고 …
청진 출신의 김 씨는 탈북해 중국에서 7년을 살다가 남한으로 갑니다. 처음에는 특별한 기술도 없고 자격증도 없었기 때문에 단순노동 일을 했지만 만족한 생활을 합니다.
김향순: 회사에서 상품을 만드는데 화장품을 만들었어요. 스티커를 붙이고 간지를 붙였는데 다 붙이고 나서는 물건을 날라와야 하는데 나이든 사람은 가만히 서 있고 나이 어린 내가 해야 했어요. 그땐 화가 났고 밤 1시까지 야간작업을 하고 집에 올때는 돈을 벌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오늘 이렇게 열심히 해서 돈을 벌었구나. 이런 성취감도 있었어요.
기자: 그때 얼마나 버셨는데요.
김향순: 회사에서 8시간 일해서 6만 4천원을 벌었어요. 그러니까 매일 일하면 내 통장에 돈이 쌓이겠구나 하는 욕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땐 먹고 싶은 것도 안먹고 쓰고 싶은 것도 안쓰고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재미에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현재 김 씨는 개인 사업장을 내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를 오가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 두부밥을 남한사람 입맛에 맛게 만들어 음식점 사장이 된 탈북청년입니다.
강민: 안녕하세요 함경남도 북청에서 2007년에 탈북했고요. 한국에 온지 7년차입니다.
세번째 남한생활 성공의 비결이 상상력을 아낌없이 펼치는 용기를 손꼽을 수 있겠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 또는 주변의 잘못된 편견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말입니다. 강 씨는 북한에서는 어렸을 때 꽃제비 생활을 하다가 15살부터 탈북전까지 장사를 했습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빈손으로 시작해도 결국 뭔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강민: 가게를 열어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이틀 후면 오픈해야하는데 간판이 없었습니다. 간판 만들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돈이 없어서 못 만들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집에 돌아오는데 버려진 냉장고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저것으로 간판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냉장고를 주워다가 닦아서 냉장고 한쪽 면에 철판을 붙이고 용접기를 빌려서 용접해 쇠기둥 붙여 땅에 세웠습니다. 냉장고 한면에 종이를 붙여서 스프레이를 뿌려 듀밥이라고 썼습니다. 하고 보니까 정말 뿌듯했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간판이었어요.
지금까지 소개한 남한정착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통점을 찾아보면 하나같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는 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봅니다. 이런 열린마음 즉 자신의 고집이 아닌 어린 아이와 같은, 배우는 자세로 세상을 접한 사람들은 감사함도 느끼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40대 중반 회사원 주영희 씨입니디.
주영희: 그런대로 살 수 있겠다고 한것은 나름 열심히 하니까 알아주시더라고요. 처음 선입견과 자격지심을 많이 가졌을 땐 힘들었는데 지금은 3년이란 세월이 귀중한 것이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외국인과는 전혀 다르다는 거죠. 우리 회사에 조선족이 많은데 다르다는 거죠. 한민족은 한민족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겠다 그리고 북한하고는 다른 것이 노력만 하면 귀천이 없고 살 수 있잖아요. 그것이 난 너무 좋아요.
주 씨는 현재 회사를 다니면서 북한식으로 말하면 준박사 과정에 있는 회사원이자 학생입니다.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데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작은 것에서 고마움을 느끼줄 아는 마음, 나는 할 수 없어가 아닌 나는 뭐든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용기에 꿈을 향한 열정을 더해서 오늘 이시간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지막 주인공은 2010년 탈북해 현재 서울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김진성(가명) 씨 입니다.
김 씨는 북한에서 당간부였던 사람도, 배움이 없이 노동자로 살던 사람도 남한에 가면 같은 시작점에서 출발하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도착점은 다르다고 믿고 있습니다.
김진성: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뭔가 해보겠다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발전이 없잖아요. 인쇄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무슨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겠다 했죠. 사람이 내가 너무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고 하잖아요. 내가 새벽에 우유배달 하고 낮에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대학에 가고 이게 그 간절함이 없었더라면 못했어요. 내가 한국에서 정착해서 성공해야겠다 살아남아야겠다 이런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된거죠.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정착에 성공한 탈북민들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