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 많이 망설여지고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북한에서 입당을 하기 위해 힘들게 군사복무까지 마쳤지만 결심을 새롭게 해서 남한으로 간 청년이 있습니다. 오늘은 남한생활이 3개월도 채 안된 20대의 탈북청년 허시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함경북도가 고향인 허 씨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제대 후 고깃배를 타던 젊은이입니다.
기자: 언제 남한에 입국하셨죠?
허시몬: 6월 19일에 왔습니다. 중국에서 태국 경유해서 한국까지 오는데 한 달 걸렸습니다.
허 씨가 현재 쓰고 있는 이름은 물론 가명인데요. 청취자 여러분도 다 아는 이름이죠? 바로 여러분이 교육받은 그 잔인한 악당 기독교인 허시몬 입니다. 허 씨는 남쪽에서 교회의 도움을 받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허시몬: 여기 와서 보니까 우리가 원수로 대하던 허시몬이 교회 선교사였거든요. 그런데 북한에서 배운 그 허시몬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아주 좋은 사람인 겁니다. 그래서 내가 허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북한에서 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사람이 아니고 북한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올해 여름까지 북한에 살았으니 제일 궁금한 것이 북한의 식량사정이라 먹는 문제에 대해 대화를 이끌어 가려고 하자 허 씨가 말을 잘라버립니다.
허시몬: 식의주가 기본이 아니라고 봅니다. 못 먹고 못 사는 나라에서는 식의주가 기본이지만 저는 여기 와서 보니까 먹는 거는 여기선 굶어 죽기 힘든 나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식의주가 아니라고 봅니다.
탈북자가 남한생활에 대해 익숙해지고 심리적 안정을 찾기 까지는 보통 3년이 걸린다고들 합니다. 아직은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이 정리가 안 된 상태라 대화를 나누기도 매끄럽질 못했는데요.
기자: 남한 음식이 입에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을 텐데 어떤 것이 제일 맛있던가요?
허시몬: 저는 북한에서 예술을 하다 보니까 음식도 세계 여러 나라 음식을 먹어봤습니다. 여기 와서 음식이 안 맞는 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제가 예술단에서 배우 생활을 하다가 군대 가서 힘들게 썩은 밥을 먹고 그런 생각이 나서인지 다 맛있어요. 그런데 한국 음식이 북한 음식과 다른 것은 좀 달더군요. 이 땅의 음식이 다 맛있고 행복하고 사람들이 다 좋다고 말하니까 온 지 얼마 안 돼 그렇다고 했는데 두 달이 지났는데 현재도 모든 것이 맛있고 감사합니다. 북한에서는 열심히 일을 해도 월급을 못 받고 살지만 여기선 몸을 움직이는 만큼 벌수 있으니까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허 씨는 북한에선 사무직에서 일하거나 또는 대학 졸업생, 예술 종사자는 군복무가 10년이 아닌 3년만 복무하면 제대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예술단에 있었기 때문에 3년 군생활을 했다는데요.
허시몬: 저는 군에서 남보다 힘들었습니다. 백두산에 있는 곳인데 풀뿌리를 뜯어 먹으면서 사는 힘든 곳입니다. 얼굴은 수축해 보이지만 백두산 얼음 속에서 피눈물 흘리면서 3년 복무 하면서 입당하기 위해 영하 40도 아래로 떨어지는 그런 곳에 있어 그런 생각하면 눈물나요.
아무것도 보장 되지 않는 곳에서 3년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런 정신으로 산다면 사회에 나가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질 않습니다. 월급도 주지 않는 직장엔 나갈 수 없었고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하면서 직장에 빠진 것이 문제가 됐던 겁니다. 단련된 몸이어서 국경을 넘는 것도 그리 불가능하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결국 남한에 까지 가게 됐는데요.
기자: 고향 마을과 달리 남쪽이 발전했다는 것은 어디 서 느낍니까?
허시몬: 저는 솔직히 여기 와서 북한을 배웠습니다. 북한에선 몰랐는데 한국에 와서 안겁니다. 북한은 너무 조용한 세상입니다. 함경북도에 수남 시장이 있습니다. 아침, 저녁에 출퇴근을 하는데 너무 복잡하고 사람이 많습니다. 자전거와 짐을 실은 유모차가 너무 많아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고속도로에 자동차가 많아서 돌진을 못하는 겁니다. 북한은 자전거 대열 때문에 사람이 돌진 못하지만 한국은 승용차 대열이 있는 겁니다. 제가 받은 집이 북한에서 살던 집에 비하면 초라한 집입니다. 그런데 절대 후회는 안 합니다. 저는 자유를 느낍니다. 내가 술을 먹고 내일 출근을 안 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순간부터 행복을 느끼고 감사한 겁니다.
허 씨는 북한에서 비교적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집안에 살았지만 그가 북에서 느낀 자유와 남쪽에서 느낀 자유로움은 틀린 겁니다.
허시몬: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다 보니까 단체복을 많이 입고 맘대로 입고 싶은 것을 못 입습니다. 그런데 여기선 옷이 찢어진 것을 입어도 누가 욕하는 사람이 없고 맘대로 하니까 다양한 겁니다. 그리고 머리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것이 제일 부럽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남쪽에서도 불러보고 싶지만 아직은 가수생활을 하긴 이르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체력에는 자신이 있으니 닥치는 일은 그것이 건설현장 막노동이든 시간제 일용직이든 다 해보면서 남한 생활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입니다.
허시몬: 북한에서 가수라고 하면 여기는 뮤지컬 가수, 오페라 가수 여러 명칭이 붙지만 북한에선 일단 가수라고 하면 모든 종류의 노래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문화가 다르니까 사람들 앞에서 제가 하고 싶은 표현을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먼저 문화를 배우자는 생각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청년 허시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