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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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큰 병을 앓다가 수술을 해서 새 생명을 얻고 나면 갑자기 삶에 대한 욕심이 생깁니다. 전보다 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봉사일을 하는 분도 봅니다. 오늘의 주인공이 그런 경우입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탈북여성 노우주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노우주: 제가 뜸을 몇 만장을 떴어요. 북한에서부터 하면... 친구들이 십자가를 몸에 달고 다닌다고 놀리거든요.

온몸에 뜸을 뜬 자리와 수술의 흔적을 무슨 훈장이나 되는 듯 달고 살아야 하는 노우주 씨. 중국을 거쳐 남한에는 2007년 입국했는데 그동안 참고 지냈던 병의 증세가 더 심해져 약을 쓸 수 없는 상태까지 갔습니다.

노우주: 북한에서는 암을 종양이라고 합니다. 종양이라고 하니까 여기서 암이라고 하는데 그게 종양인 것을 몰랐던 거예요. 그때 당시 병실이 6인실이었는데 저와 같은 암 판정을 받은 사람은 가족과 함께 매일 울고불고 난리였어요. 2008년도만 해도 위암이라고 하면 다 죽는 줄로 사람들이 알고 있었거든요.

북한에서 종양에 걸리면 열 명 중 아홉 이상은 사망하기 때문에 노 씨는 자신이 그런 죽을 병에 걸렸다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병이 위암이란 것을 수술 전날에야 알게 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답니다.

노우주: 5 리터짜리 약물을 들고 와서 다 마시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일 수술을 해야 하는데 몇 번째로 했으면 좋겠냐고 과장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첫 번째로 해달라고 웃으면서 말했더니 과장 선생님이 도대체 이사람 뭐지? 이런 의아한 눈길로 저를 바라보면서 제가 위암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수술 전날 저녁에 알았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여기 가족도 없으니까 저희가 잘해줄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저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했어요. 훗날 과장선생님이 그러는데 다른 분들은 울고불고 하는데 오히려 제가 선생님들 위로를 하고 하니까 속으로 깜짝 놀랐데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위의 대부분을 절제하는 수술을 6시간 넘게 받습니다.

노우주: 수술을 오전 8시에 들어가서 오후 2시에 나왔답니다. 위를 70% 절제를 하면 맹물을 마셔도 토합니다. 역류하는 겁니다. 저는 누가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링거를 메달은 밀대를 끌고 화장실을 갔어요. 보통 살이 있는 사람은 볼일을 볼 때 조금만 배에 힘을 줘도 터진다고 하는데 저는 배에 살이 없고 종잇장처럼 얇았으니까 터질 것도 없고 3일 만에 수술자리가 다 붙어서 퇴원할 정도가 됐다고 과장선생님도 기뻐하시더라고요.

탈북자는 보통 일반 남한사람보다 병 치료에 있어 특별혜택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치료비용을 자신이 부담하자면 하지 못했을 대수술이었지만 탈북자인 노 씨는 병원비 걱정 없이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강을 되찾기까지가 문젭니다.

노우주: 항암제 치료를 하면 내가 나른해지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어요. 병문안 온 사람들 소리도 듣기 싫을 정도로 힘들고 수녀님들이 죽을 사와서 먹으라고 하는데 그 소리도 듣기 싫을 정도로 건강상태도 안 좋았고 정신과 치료도 받을 정도였어요. 조금 잠들려고 하면 북한에서 겪었던 탈북과정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전기곤봉에 맞고 각자에 맞고 이런 것이 떠올라 더 힘들었어요.

보통 질병은 수술을 하고 그 수술자리가 아물면 되지만 암의 경우는 항암치료를 꼭 받아야 합니다.

노우주: 항암치료가 종양균을 죽이는 건데 그 암 균을 죽이는 것은 좋은 균까지 같이 죽이는 거예요. 그러니 몸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죠. 신약이란 것이 더군다나 위에 좋으면 간에 안 좋고 그렇거든요. 항암치료가 나쁜 균을 죽이면서 좋은 균까지 죽이니까 사람이 너무 힘들었어요.

많은 종류의 알약을 매일 먹어야 하고 그 기간이 6개월인데 도저히 더 이상은 알약을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는 날 먹지 않고 3개월분을 가져가서 다른 환자에게 쓰라고 돌려주고 먹는 음식을 통해 병을 관리하자고 맘먹습니다.

노우주: 집에서 고추장. 된장, 간장, 청국장을 직접 만들어서 식이요법을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도 하고 있고요.

남한생활을 막 시작했을 1월 수술을 받고 그로부터 딱 아홉 달 만에 변화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노우주: 저의 시에 봉사단체가 있어요. 우연한 기회에 동사무소에 갔다가 거기서 바르게살기 회장님을 만났는데 내 말투가 다르니까 중국 조선족이냐고 물어봐서 탈북자라고 하니까 잘 왔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좋은 일을 안 해보겠냐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집에 혼자 있으면 한국사람 사는 모습을 알 수 없잖아요. 1년 동안 병 치료 하면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아는 사람이 있어야 얘기도 나누고 하니까 그해 10월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봉사활동을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노우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예를 들어 노인 복지관, 장애인 복지관, 사회 복지관 이런 곳에 가서 점심 대접하고 청소하고 이런 일을 합니다.

북한에선 당원이었고 무척이나 활동적이었던 노우주 씨 그는 현재 병 치료를 하면서 영남외국어대학 1학년생으로 앞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우주: 공부는 이미 전부터 하려고 했는데 건강이 너무 안 좋았어요. 2014년에 공부하려고 하다가 하루 종일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 포기했다가 1년 정도 건강을 추스르고 남한에서 살자면 뭐라고 배워야 하겠다고 해서 처음에는 2010년에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올해 3월에 더 배우고 싶어서 보육복지상담과라고 거기 가서 학과 부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당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세상에 있어 좋다는 노우주 씨. 더 많은 일들을 하기 위해 오늘도 건강회복에 애쓰고 있습니다.

노우주: 앞으로도 공부는 많이 해야 되겠고 내가 원하는 바라 앞으로도 할 겁니다. 봉사나 강의도 꾸준히 할 겁니다. 앞으로 건강이 좀 더 좋아지면 직장도 가지고 일도 해보고 싶고요.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노우주 씨의 암 투병과 새로 얻은 인생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