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아마도 불행한 인생,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될 수만 있다면 행복하게 즐겁게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의 원하는 바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뭘 잘할 수 있는지 또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아는 것이 중요할겁니다. 오늘은 남한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탈북여성 이경희(가명) 씨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지난해 여름까지 북한에 살았던 이경희 씨는 이제 남한 생활이 두달째 접어듭니다. 키가 165cm로 늘씬한 20대의 이 씨는 겉으로 보기엔 여느 남한 사람과 달라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전혀 다른 체제에서 온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경희: 그때는 좋아 하는 것이 있어도 뭘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경제적인 문제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말도 꺼내질 못했죠.
기자: 당시 말도 하지 못했지만 하고 싶은 것은 뭐였나요?
이경희: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이 법관이었습니다. 정의의 법관이 되고 싶었습니다. 뇌물을 받고 무마 시킨다던가 불쌍한 사람이 법의 도움을 못 받을 때 제가 사람들의 권리가 똑같이 보장 받을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로 허황된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그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일기장에만 썼어요. 두 번째는 미술을 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자주 그렸는데 집에서도 조금만 도움을 줬으면 했을 텐데 부모님한테 미술을 하겠다는 말을 못해봤어요. 경제적으로 따라주지 못했으니까요.
기자: 북한에서도 미술을 하자면 돈이 많이 드나요?
이경희: 미술대학을 가야하는데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시간 여유가 있어야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꿈을 접었습니다.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었죠.
남한이나 미국 등 북한을 제외한 외부 세상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내 아이가 뭘 잘하는지 또 무엇에 소질이 있는지 적극적인 지원을 해줍니다. 대표적인 예가 어릴 때부터 영어학원이다 태권도 학원이다 피아노 학원이다 이런 곳에 등록을 하고 이것저것 가르쳐 보는 것이죠.
이경희 씨는 북한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우선이기 보다 주위 환경이 이끄는 데로 맞춰서 사는 그런 인생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경희: 속으로는 이런 것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누구에게 말도 못했는데 여기서 상담 사 선생님에게 말하고 가능성도 알아보고 하니까 조금 더 빨리 왔었더라면 어떤 측면에서는 내가 할 수도 있었겠구나. 이제라도 늦지 않구나. 이런 부분에는 재능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기자: 싫어하는 것도 생각을 하게 됐다고요?
이경희: 네, 그때는 다른 사람하고 잘 어울리고 별 문제가 없는 줄 알았는데 상담을 통해 내가 싫어하는 것이 뭐고 약점이 뭐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니까 저 자신에 대해 새삼스레 더 알게 됐으니까 장점을 살리고 약점을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자: 북한에서는 그런 생각을 안 해봤나요?
이경희: 내 장점과 약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그런데 심리적성검사 상담을 받아보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기자: 본인이 어떤 사람이던가요?
이경희: 제가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나왔어요. 그 소리를 들을 때 좋았습니다.
기자: 단점은 뭐라고 나왔나요?
이경희: 단점은 좀 메마르다는 것, 저도 좀 느꼈습니다. 휩쓸리는 것을 싫어하거든요. 그런 것을 고쳐야할 것같아요. 제가 먼저 다가서는 것을 싫어하거든요. 그런 것을 좀 고쳐야겠어요.
기자: 남한생활 두 달밖에 안됐는데 일을 한다고요?
이 씨는 일 얘기가 나오자 대화를 끊었습니다. 사실 시간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부에서 지급하는 생활비가 끊어지는 것을 걱정한 겁니다.
남한 정부는 탈북자가 거주지 배정을 받고 6개월 동안 생활비를 지원합니다. 물론 그 금액은 경제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파트 임대료를 내고 먹고 살 수 있는 최소 금액입니다.
현재 이경희 씨는 지역사회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교육을 받으면서 낮에는 백화점에서 판매원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지원 최소 생계비로는 전화비도 내고 각종 공과금을 내기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일하면서 또 남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배우기도 합니다.
이경희: 처음에 진짜 신기했습니다. 거기서는 손 전화 하면 생활이 어느 정도 갖춰진
사람이 갖는 것인데 여긴 보통 사람들이 다 갖고 다니잖아요. 상상의 세계가 현실화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 배우진 못했지만 배우려고 노력하고 여러 가지 하니까...너무나 생각지 않던 상상도 못해봤던 현실에 닥치니까 진짜 여기 온 것을 후회 안합니다.
한창 꾸미고 친구들과 만나면서 이성에게 관심이 가는 나이로 사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인데 그런 것에서 오는 갈등은 없을까?
이경희: 아직까지 물건에 대해 사고 싶다는 충동은 못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신경을 안 돌리려고 합니다. 한 번 마음을 돌리면 충동이 일거든요. 우선 제가 신경을 안 쓰려고 합니다. 어느 정도 괘도에 올라설 때까지 그런데는 자중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장소에는 우선 가질 않아요.
이경희 씨는 남한에 가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를 통해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을 잡은 듯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한 삶인데요. 그러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경희: 나이가 좀 있고 하니까 주간에 통짜로 낮에 학교를 다니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고 일을 하면서 그에 맞는 지식을 쌓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직업 선택에서는 제가 생각 하는 것이 회계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4년 대학은 생각 중입니다. 무조건 주간 대학을 다닌다는 그런 생각은 접었습니다. 왜냐하면 살아 온 경험에 의하면 대학을 나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경력도 있고 자기 분야에 대한 능력이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나오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생각하고 공부를 한다면 야간대학을 가려고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최근 남한 생활을 막 시작한 탈북여성 이경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사이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