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누구나 한 가지 일을 반복해서 10년 정도 하다보면 전문가가 된다고 합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외부 세계의 라디오 방송을 10년 동안 들으면서 탈북을 결심하게 됐고 남한에 가서는 탈북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주경배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주경배: 안녕하세요? 오늘도 새 하루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의 주경배입니다.
남한의 기독교 방송인 극동방송을 통해 매일 새벽 여러분을 만나고 있는 주경배 씨입니다. 탈북자가 남한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고향친지 그리고 이웃들에게 들려주는 내용인데요. 오늘은 RFA 초대 손님으로 나와 자신이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얘기부터 시작해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주경배: 제가 탈북을 하게 된 동기는 자랄 때부터 부모로 인해 사회적으로 핍박을 받고 소외 소외됐기 때문에 우울해진 측면도 있지만 제가 외부 라디오 방송을 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아마 거기가 깜깜한 곳이니까 사람이 빛을 그리워하는 것은 사실이고 해서 우연히 접하게 된 계기에 라디오를 온몸 받쳐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방송을 들으면서 우리와 다른 외부 세계가 있구나. 우리가 배우고 자란 그것이 아니라 더 큰 세계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고 정말 통제를 너무 하니까 그런지 상대적으로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고 빛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는지 외부 세계를 더 파고들었습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에 이어 고난의 강행군도 한창 진행됐고 사람들이 아무리 사회가 어려워도 어느 정도 자릴 잡아 갈 무렵인 2000년대 말. 주경배 씨는 3번의 실패 끝에 10년을 준비한 탈북에 성공합니다.
주경배: 제일 힘든 것은 마음을 굳히는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탈출해야 한다는 결심은 이미 20살 초반에 친구들과 결심을 이미 굳혔습니다. 그런데 거기 가족이 있고, 고향이 있고, 정든 사람들이 있고 이것을 헤치고 가족의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것이기에 실행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부단히 과정이 반복됐던 것은 자유세계에 대한 라디오를 접촉을 통해 행동에 옮겼습니다.
보통 남한에 간 탈북자들은 북한에도 잘 알려진 남한의 성공한 자본가 고 정주영 회장처럼 돈을 많이 벌어서 기업을 해보고 싶다는 당돌한 꿈을 갖고 남한 땅을 찾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원 없이 배불리 실컷 먹는 상상만 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북한에서의 생각은 남한 현실을 접하고 실망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더 큰 희망의 씨앗이 돼 내일을 기약하게 됩니다.
주경배: 거기서는 사실 이상으로 생각하고 꿈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많이 아름답게 생각했죠. 그런데 다 인간 생활인 탓에 여기 오니까 꿈처럼 아름답지는 않아요. 하지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접해 나갈수록 그때 이상하고 상상한 것보다 더 기쁘고 재밌습니다. 그런데 아픔이 있고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에게 차려진 자기 몫의 행복인데 북한 고행에 대한 생각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내 집 정원에 핀 꽃 한 송이 보고 숲에 나무를 봐도 감사하고 정말 감하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복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정말 나가도 다 아름다운 소리,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람들 문화가 이렇게 돼있고 모든 설비가 돼있고 우선 배고프지 않고 잡혀갈 염려가 없고, 마음대로 들을 수 있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매일 기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주경배 씨. 탈북자 주 씨가 말하는 행복은 남한 정부가 주는 정착금이 많아서도 아니고 처음부터 좋은 직장에서 어려움 없이 경제생활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북한에서도 오랜 시간 라디오를 통해 외부세계 즉 자본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는 했지만 누구 못지않게 빨리 새로운 세상에 정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본인의 마음가짐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주경배: 제가 처음 여기 와서 사실 북한에선 너무나도 무식하게 살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배고프게 살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거만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 3국을 거쳐서 한국에 오는 과정에 자기를 다 비우고 내가 새 사람으로 태어나겠다고 하니까 좀 달라지게 됐습니다. 여기 오니까 집에서도 부부간에 손 맞잡고 음식도 만들고 아이도 챙기고 하는데 북한은 가부장적인 제도여서 험한 음식이라도 앉아서 호령해서 받아먹고 상은 집사람이나 아이들이 치우는 줄 알았죠. 그런데 여기 오면서 자기를 비우고 아름다운 사회 문화를 접하면서 첫 결심이 제가 코를 땅에 대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그렇잖으면 오자마자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천덕꾸러기를 누구나 사랑합니다. 하면서 안아주고 감싸주니까 건방지게 살게 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바로 일하면서 직업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한 노천 서빙, 북한에선 접대인데 이름도 모르는 음식을 나르면서 고민한 적도 많고 했지만 여기 사람들 달게 받아주니까 감사했는데 식당에서 음식 나르는 일, 방 청소하는 일 그런 일도 해보고 정말 자기를 낮추는 법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건설 현장도 북한에 비하면 궁전 같습니다. 다 기계로 하고 안전설비가 돼 있고 알았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면서 일도 해보고 주방에서 봉사도 하고 많은 일을 했습니다.
주경배 씨는 현재 극동방송에서 대북 라디오 방송 일을 하면서 무역회사 직원으로 또 때로는 북한주민의 인권을 위한 행사가 있을 때면 자원봉사원으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누가 시켜서 강요하는 일이라면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았겠지만 주 씨는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이 맡은 일들을 열성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는 누구보다 애착을 갖고 새벽을 열고 있습니다.
주경배: 저는 매일 느끼는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비밀리에 남몰래 들으니까 방송 임할 때 생각도 그렇고 관점도 그래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북한에서는 모든 순서나 말, 행동을 당에서 하라는 데로 했고 교육도 외부 방송은 모두 허위 기만이라고 해서 이것이 사실일까? 누가 시켜서 한 말이겠다. 그렇게 생각할 텐데 정말 외치고 싶은 것이 내가 듣던 사람으로 모든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꾸밈이 없고. 저도 방송을 할 때 누가 적어주는 것이 없어요. 그대로 말하게 하는 언론의 자유에서 제가 행복을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듣는 분들이 사실로 들어줬으면 좋겠다. 좋은 소식, 기쁜 생활 모습을 전하다가도 아차 저 사람들이 귀에다 가공기를 달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조금도 거짓이 없으니까 한마디를 들어도 진실로 들었으면 좋겠다. 왜냐 당신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귀에 가공장치가 생겼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고 진실로 들고 기쁨 찾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제일 가슴 아파요.
제2의 고향, 탈북 방송인 주경배 씨의 남한생활 정착기. 다음 시간에는 탈북을 결심하게 만든 외부세계의 라디오 방송은 북한에서 어떻게 청취했고 또 어떤 내용에 제일 관심을 가졌는지 선배 탈북자의 라디오 방송 청취에 대한 주제로 얘기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사이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