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해 후회 없이 산다

오세혁 씨.
오세혁 씨.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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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가 영국 외무성이 지원하는 쉐브닝 장학금을 받고 영국에서 1년 과정의 석사 즉 북한으로 치자면 준박사 학위를 받은 이가 있습니다. 황해도 출신인데요. 지금은 북한소식전문 언론매체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꿈을 향해 후회 없이 산다는 오세혁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북한에서 장교를 양성하는 군사학교를 졸업한 청년이 1999년 밀도강을 합니다. 그때 오세혁 씨의 나이 스물 하나

오세혁: 지금 10년도 넘었는데 그때 북한에서 기차타고 남양이란 국경까지 일주일 만에 왔는데 도중에 돈이 없어서 굶기도 하고 와서 두만강을 건넜죠. 그리고 중국에서 2년 반 동안 피신해서 살다 중국에 있는 독일대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왔죠.

기자: 시간이 많이 흘러 옛날 얘기가 됐는데 탈북배경은 결국 경제난 때문이었나요?

오세혁: 그렇죠. 일단 그때는 최악이었죠. 하루하루 밥을 해결하는 것도 힘들었고 아버지도 출당(아버지가 당원이었음) 당해서 집도 시골로 추방당해 내려가기 직전이었거든요.

북한에 가족은 부모님이 사망하고 형제도 소식이 끊기 상태입니다. 당시도 혼자 탈북했지만 남한생활 11년이 지난 지금도 독신으로 있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하는데요. 세혁 씨는 남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 이후 과정인 대학원에서 받는 석사 학위만 두 개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공부를 할 계획은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오세혁: 1년 동안은 바로 대학에 안가고 한국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때는 목표가 오로지 돈을 버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대학 가는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일을 했죠. 일하면서 자중엔 내가 뭔가 돈을 벌려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1년 뒤에 대학에 갔죠.

기자: 1년 동안 돈은 얼마나 모으셨나요?

오세혁: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는데 쓸 일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일하고 편의점 일도 하고 사우나에서 청소하고 떼미는 일도 했고요 그러면서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준비를 해서 입학을 했죠.

그렇게 진학한 대학을 졸업하고 오세혁 씨는 이어 대학원까지 마치게 됩니다. 영어를 잘하는데요. 오 씨가 영어를 잘할 수 있게된 이유는 이것입니다.

오세혁: 일단 학부 졸업할 때는 영어 성적이 있어야 졸업을 하니까 그게 급했죠. 공부를 하면서 보니까 졸업 후에 영어를 사용하는 유엔이나 국제기구에서 일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해서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고 실제 사용하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필요한 단어나 문장은 외우게 됐고 외국인 친구를 만나고 그렇게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민간단체에서 일하다가 영국 외무성이 지원하는 장학금을 받아 1년 과정 전액 무료로 영국 쉐필드 대학 정치학과에서 ‘세계화와 개발’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과정을 마칩니다.

기자: 영국에 가서 장학금 받아 공부를 하고 왔는데 한국에 오니까 영국 생각 많이 날거예요.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오세혁: 공부하는 것이 쉽진 않았어요. 처음 에세이 쓸 때는 긴장을 많이 하고 했는데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에세이 쓸 때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으니까 제출하기 전에 읽어 보고 수정해 달라고 하니까 친구들이 기꺼이 해줘서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자: 좋았던 기억은 없습니까?

오세혁: 전반적으로 좋았습니다. 공부하면서 힘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혼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일이나 다른 것에 신경을 안 쓰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간이었습니다. 물론 1년 과정 끝나고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약간 압박감이 됐지만 그래도 영국이 특이하게 기숙사 있는 곳에 잔디도 있고 나무도 울창하고 도시였는데도 야생짐승 예를 들면 청설모나 다람쥐가 주변에 있고 오리도 기숙사 앞에 내려앉았다 날아가고 그런 평화로운 분위기여서 그런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웬만한 남한사람보다 좋은 학벌을 가지게 된 오세혁 씨 만약 남한생활 10년 그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기술을 배우고 돈을 모아 장사를 했다면 어떻게 인생이 바뀌었을까? 국제기구에 들어가 인권문제를 다루고 싶다던 오세혁 씨. 요즘은 북한에 대한 기사를 쓰느라 바쁩니다.

오세혁: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이 데일리엔케이고 신문사인데요. 기자로 제대로 된 활동을 하려면 글쓰기부터 여러 업무 능력을 키워야겠고 기자라는 직업이 매일 기사를 써내야하는 부담도 있지만 반면 기자이기 때문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북한소식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최근 북한 소식을 접해서 그런 면에서는 나중에 북한에 가게 되는 날이 언제일까 그런 기대를 하게 되는 곳입니다. 저희가 북한 소식을 전하려면 소식을 알기 위해 저 같은 탈북자를 통해 소식을 접하게 되니까 예전보다는 북에서 온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온 친구들에게는 앞으로 진로에 대한 저의 경험도 들려주면서 그렇게 생활하고 있어요.

오 씨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이 남한사회지만 모두가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잘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고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인데요. 자신의 미래 목표에 대한 수정은 있지만 절대 꿈을 포기한 적은 없다고 말하는 오세혁 씨

오세혁: 무슨 일을 하던 시간을 갖고 기술을 배우고 경력을 쌓고 하면 그것도 나름 나쁘진 않다고 봐요.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돌이켜 봤을 때 전 후회는 없어요. 만약 내가 공부를 안했다면 그때 했어야 했는데 그런 후회가 남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다 했기 때문에 아쉽거나 후회스러운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이 제일 행복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오세혁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