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으로 간 탈북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 집을 받아서 살게 됩니다. 많은 수가 서울과 경기도와 같은 대도시를 선호하지만 일부는 섬에 살기도 합니다. 오늘은 남쪽의 휴양도시로 알려진 제주에 사는 탈북여성을 소개합니다. 남한생활 8년차가 되는 박나정 단장의 얘기입니다.
박나정: 공연하러 왔다가 신랑을 만났죠. 그래서 제주에 정착했죠.
함경북도 회령시가 고향인 박나정 씨는 북한에서는 회령시 시동예술선동대에서 방송원으로 활동하다 남한에 가 평양한라민족예술단 단장으로 있습니다. 처음엔 서울에 집을 배정받아 살다가 제주에서 신랑을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박나정: 좋죠. 북한 사람들은 제주도를 유배지로 생각하거든요. 관광도시보다는 갇혀있는 그런 곳으로 생각하는데 살아보니까 너무 좋아요. 서울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이라 그런지 약은 그런 것이 있는데 여기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처럼 순박한 것이 있어요. 서울 남자들은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데 제주 남자들은 북한 남자처럼 무뚝뚝해요. 신랑이 아빠하고 닮은 점이 너무 많아서 좋아요.
살아보니까 복잡한 도시 보다는 제주가 너무 좋아졌다는 박나정 씨
박나정: 공기가 우선 좋으니까 북한에서도 고혈압이 있었는데 아빠가 여기 와서 혈압 약을 끊었어요. 서울에는 차가 너무 많아서 택시를 탈 수가 없어요. 여기는 택시를 타도 시내 가는데 10분이면 다 가니까 너무 좋아요. 보통 일상생활 그러니까 마트나 병원 가는 것은 제주도 너무 잘돼 있어서 좋은데 백화점이 없으니까 젊은 사람이 살기는 좀 갑갑할 수 있죠. 면세점이 있긴 한데 내국인은 이용을 못하니까요.
박 씨가 처음 탈북한 것은 1998년입니다. 그리고 중국 생활을 하다가 강제북송을 두 번이나 당했지만 고향의 모습을 보고는 살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박 씨가 전하는 2004년 마지막 탈북 당시 고향의 기억입니다.
박나정: 그때 처음 탈북 했을 때와 다른 것은 장마당에 중국 물건하고 남한 물건 상표 때고 파는 것이 많고 시장이 활성화 됐더라고요. 배급은 전혀 없고 암시장이 활성화 됐더라고요. 마약 중국으로 밀수 밀매하고 텔레비전이나 옷 같은 것 거의 밀수밀매더라고요. 우리 옆집은 온 가족 5명이 쪼르륵 누워서 다 죽은 거예요.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굶어죽은 거예요. 그것을 보니까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런데 맹장해 주는 사람도 없어요.
같은 조선말을 쓰지만 60년이 넘게 떨어져 있다 보니 남북한 사람이 쓰는 말도 많이 다른데요. 처음 남한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시골 사람이 도시에 가서 시골 사투리를 쓸 때 느끼는 그런 기분을 많이 경험했다고 하는데요.
박나정: 외래어가 힘들어요. 내가 북한 사람인 것이 말투에서 나오니까 좀 창피하다 이런 것이 많아요. 음식점이 가서나 공공장소에서 가서는 뭘 물어보기가 꺼려져요.
기자: 왜 그럴까요? 저는 다 이해를 하겠는데요.
박나정: 지금 공연을 하면서 이름이나 얼굴이 알려져서 탈북자인 것을 알지만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면 조선족입니까 하니까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신경 안 쓰고 말하니까 좋더라고요.
기자: 사실 상대방 보다는 내가 자신감을 갖고 말하니까 편해진 것 아닙니까?
박나정: 네, 이제 자신감이 생기니까 북한 사람인 것 숨기고 이런 것이 없어요. 내가 바뀐 거예요.
북한에서 선동대에서 활동한 것처럼 남한에서도 비슷한 예술 공연을 합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기자: 공연할 때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으로 하고 분량은 어떻게 됩니까?
박나정: 반갑습니다! 노래부터 시작해서 옷 바뀌는 마술 공연, 물동이 춤 공연, 아코디언 공연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민속무용을 하는데 한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하죠.한 번 할 때마다 전쟁이죠. 무용수들은 옷을 계속 갈아입고 하니까 땀이 물 흐르듯 하죠. 보통 9명이 할 때도 있고 12명이 할 때도 있고요.
공연을 하고 나면 초청한 곳으로부터 출연료를 받습니다. 공연 성격에 따라 금액이 다르지만 보통 몇 천 달러를 벌게 되는 겁니다. 공연이 힘들어도 하는 만큼 수입이 생기니 단원들도 공연을 더 많이 하길 바라는 마음인데요. 남한에 가서 좋은 점이 바로 이런 겁니다.
박나정: 첫째 언어의 자유요. 내가 생각나는 것 느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옳다,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돈 버는 것이 좋아요. 북한에서는 같이 노동하고 로임을 타는데 여기는 내가 한 것만큼 버니까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이제 중산층 사람하고 어깨를 겨눌 수 있게 됐구나 하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좋은 겁니다.
박나정 씨는 돈을 버는 일에만 열심인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돕고 있습니다.
기자: 봉사활동은 얼마나 자주 다니시나요?
박나정: 한 달에 한 번하고 개인적으로 장애인 어머니가 한분 다리가 불편한 분이 있는데 일주일에 3번 정도 가서 청소도 해드리고 그러죠.
1년 내내 돈을 모아서 어버이 날이나 추석, 설날 등 가족의 정이 그리운 때면 양로원을 찾습니다. 돼지도 잡고 음식 마련을 해가서 공연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겁니다.
박나정: 솔직히 처음에는 아깝고 그랬어요. 돈 벌기 힘든데 가면 몇 백만 원씩 나가고 하니까요. 그런데 처음 아빠를 모시고 양로원에 공연을 갔는데 막 우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짠한 거예요. 부모 마음이 다 마찬가지고. 자식 없는 사람들에게는 저희가 다 자식 같잖아요.
박나정 씨는 예술단 활동을 하면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졸업장과 자격증 취득했는데요. 이런 것은 훗날을 위한 준비인 겁니다.
박나정: 제가 지금 예술단을 하고 있지만 올해 한라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어요. 현재는 봉사회 회장도 맡으면서 불우이웃을 찾고 있는데 나중에 양로원을 하나 해보려고요. 탈북해서 오는 청소년이나 어르신들이 살 수 있는 그런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꿈입니다. 한 3년 후에는 하려고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제주에 살면서 평양한라예술단 단장을 맡고 있는 박나정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