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상담사 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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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들은 직업훈련과 자격증이나 학력 취득의 과정을 거친 후 자신이 원하는 직종에서 일하게 됩니다. 북한에서는 방송원이었는데 남한에서 의료상담사로 일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오늘은 남한생활 6년차의 임향 씨의 얘기 전해드립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철도역 안내 방송원이었던 임향 씨

임향: 제가 중국에 호기심에 왔고요 다시 가자고 했던 길이 중국에 와서 보니까 약속 시간이 떠나가 버려서 북한으로 다시 가면 정치적으로 힘들어질까 못가도 한국까지 왔습니다.

기자: 그때가 언제인가요?

임향: 1998년입니다.

당시는 모두가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임 씨도 살길을 찾아야 했고 그 길을 중국에서 찾게 됩니다.

임향: 제가 많은 사람들을 대상했기 때문에 북한에서 사는 것하고 중국에서 사람들의 생활을 비교하면서 중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림 하나를 가지고 넘어갔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중국에 살게 됐고 그때가 26살이었습니다.

정식으로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아 간 중국이 아니라 돈을 써서 강을 건넜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빌린 돈을 갚고서 최소 몇 달은 버틸 식량을 사야 하는데 뜻대로 안 됐습니다. 그리고 2007년 남한에 갈 때까지 갖은 고생을 다하게 됩니다.

임향: 중국에서의 생활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생소한 사람을 만나 결혼 생활을 해야 했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노동을 해야 했어요. 시댁 어른들이 모두 지병이 있었고 조카들도 돌보다 보니까 너무 고달프고 내 인생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부분이 중국에서의 생활이라고 말하는 임 씨. 남의 나라에서 숨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하는 것을 그의 말을 통해 어렴풋 짐작을 해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옛말이 됐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임향: 제가 한국에 와서 지금 느끼는 것이 노력한 것만큼 그 열매가 맺어지는 기쁨. 처음에는 정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얻어지는 기쁨이 있습니다. 남성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공부도 하고 대학원도 다니고 하니까 행복하죠.

이제는 어느 정도 남한생활에 적응이 되고 직업도 있어 안정이 됐지만 처음 남한생활 시작당시에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임향: 처음에는 식당일도 했고 사우나 매점에서도 일했고 많이 해봤어요. 그리고 일하면서 자격증도 10개 넘게 땄어요.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다문화 상담사 등 여러 가지 있습니다.

2년 정도는 일을 가리지 않고 했고 돈도 좀 모았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을 다녔고 자격증을 취득합니다. 남쪽에 가서 알게 됐는데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주고 조언해주는 상담사가 되려고 관련 분야의 자격증을 따는데 집중합니다. 그러는 사이 남편을 만나 가정도 꾸렸습니다.

임향: 남한 남성과 사는 것이 좋은 것은 남편이 굉장히 배려하고 정착하는데 내조를 잘해줍니다. 우리가 여기 와서 토대가 안 잡힌 상태에서는 남이 한 발작 뛸 때 우리는 열 발작을 뛰어야 한다고 보는데 남편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되죠.

기자: 남편의 배려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겁니까?

임향: 남편은 여자가 할 일 남자가 할 일을 가리지 않아요. 제가 아이 낳고 두 달 만에 출근을 했어요. 남편이 나보다 빨리 퇴근하면 아이를 돌봐주고 집안일을 다 해줘요.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와서 목욕 시키고 밥 먹이고 잠재우고 모든 일을 신랑이 한다는 거죠. 그래서 신랑에게 미안합니다.

임 씨의 남편은 직업이 호텔 요리사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바빠 주말에는 퇴근이 늦지만 평일에는 7시면 퇴근을 해서 아이를 돌봐줍니다. 그래서 임 씨는 집안일 걱정 안하고 직장엘 다닐 수 있는 건데요. 남들은 현재의 모습만 보고 부러워들 하지만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고 합니다.

임향: 제가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남편을 만나지 않았을 때는 우리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느꼈고 일을 해도 남한사라보다 어설프다는 시선을 느꼈어요. 탈북자가 건강이 안 좋아서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런 것들이 힘들었어요. 남편을 만나서는 문화 차이 때문에 서로 말투가 달라 싸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사투리 때문에 오해도 사고했는데 이런 것을 잘 극복했고 지금까지 오니까 남들도 우리보고 잉꼬부부라고 합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대학원 과정을 다니고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자면 쉼 없이 공부하고 준비해야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임향: 지금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이 꿈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컸을 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고 지금하고 있는 사회복지 공부를 박사까지 하고 싶고 통일 되면 북쪽에 가서 사회복지사로서 또 상담사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자 의료상담사로 일하는 임향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