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북한은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은 되지만 동시에 분단이후 서로 왕래가 없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의미로 그 뜻이 달라진 말도 많습니다. 오늘은 남한생활 6개월 된 탈북여성 유연실(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유연실: 예를 들어서 머리 감는 비누를 남한에서는 샴푸라고 하고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유 씨는 30대 중반으로 남한생활은 1년이 채 안됐습니다. 그렇다고 탈 북해 바로 남한으로 간 것은 아니고 중국에서 10년 넘게 살다가 남한에 간 경우입니다.
유연실: 제가 오기 전에 95년부터 고생해서 탈북한 99년까지 힘들었어요. 중국에서나 한국에서 쌀이 조금씩 들어가면 배급을 줬는데 그때 보니까 우리가 받아야할 식량이 4톤이 밀렸더라고요. 저희는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엄마 아빠 언니가 다 공장에 출근했어요. 공장에 출근한 날을 따져서 식량공급을 받았는데 95년부터 배급을 안주니까 아빠는 출근하고 엄마하고 언니는 장마당에 가서 빵을 4원 50전 사서 5원에 팔아서 번돈으로 옥수수를 사먹고 했어요.
중국에서 오래 살면서 아이도 낳고 어느 정도는 자본주의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조선족과 결혼해서 소통에도 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죠. 그러다가 남한에 가니 말은
같은데 소통이 잘 안 되는 겁니다.
유연실: 당연히 불편하죠. 제가 핸드폰 가게 갔는데 설명을 해서 그 자리에서는 네네 하고 대답을 했는데 돌아서니까 하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크레파스라고 하는데 중국이나 북한에선 크레용이라고 하거든요. 또 북한에서는 입술연지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립스틱이라고 하고요. 그래서 나가 물건을 살 때는 자신감이 없어요. 그냥 그거 얼마예요? 이렇게 하지 립스틱이 무슨 색 주세요 이렇게 안 해요.
기본적으로 간다, 온다, 먹는다, 배고프다 이런 것은 알겠는데 제품이름 즉 고유명사는
남한에서 살면서 자연히 습득하는 용어들이라 알 수 없었던 것이고 외래어는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장애가 됐던 겁니다. 게다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사투리도 한 몫을 합니다.
유연실: 그러니까 톤이 틀려요. 억양이 다르죠. 북한에서는 목에 힘을 주고 음성이 높고
강하게 말하는데 여기서는 힘을 빼고 말하니까 부드럽게 들리죠. 그래서 내가 밖에 나가
말할 때는 간단하게 네, 아니오 이렇게 답을 하려고 해요.
남한에 갈 때 돌이 지난 아들은 데려갔고 중국에서 딸이 국정원 조사를 받은 후 불렀습니다. 그래서 아이 둘 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유연실: 집에서 노니까 조금이라도 용돈벌이 하자고 지인틍 통해 부업을 하게 됐어요.
저희는 국정원이나 하나원에 있을 때 너무 주는 것만 받아먹고 하니까 남한사회가 이런가? 일 안하고도 먹고 살 수 있는가 했는데 나오니까 다르더라고요.
부업은 일터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일감을 받아 하는 일을 말합니다.
유연실: 부업이 수도관 조립이요. 중국에는 수도관이 보이게 밖으로 나와 있어요. 여기는
땅 속으로 들어가 안 보이지만요. 관을 서로 이어주는 거예요.
기자: 한 개 조립하면 얼마를 법니까?
유연실: 한 개에 8원이요. 3시간 반 정도 하면 천개를 하는데 그러면 8천원을 버는 거예요. 나가서 하면 한시간에 8천원을 버는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는 거죠. 하루 일하면 얼마 안 되지만 한 달 하면 몇 만원이 되거든요.
집에서 부업을 하면서 아껴 모은 돈은 가족을 위해 송금했습니다.
유연실: 애기 하고 나하고 기초수급비가 나왔어요. 한 달에 95만 원 정도 나와서 안 쓰고 모았어요. 애기 우유 사 먹이고 옷 좀 사고요. 남은 돈을 아꼈고 그 돈을 모아 보낸 거죠.
요즘 밤에는 식당에 나가고 있는데요. 고기를 구워 파는 음식점입니다. 손님이 들지 않아
한가할 땐 주인에게 괜히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냥 있지 않고 일을 찾아 하고
있습니다.
유연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4시간 일하는 중에는 앉아 있고 하면
안 되니까 손님이 없을 때는 먼지 닦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봐요. 걸레가지고 나가서
창문 닦고 하면 손님이 없어도 그 시간에 제가 일을 했으니까 돈을 받아도 떳떳한
거잖아요.
부드러운 남한 말이 좋고 일한만큼 돈을 벌 수 있어서 좋다는 유연실 씨.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직장생활을 하지는 못하지만 시간을 쪼개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연실: 한 가지는 제가 좋아하는 직업을 선택해야 하잖아요. 애를 먹여 살리는 것은 현실인데 제가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강사가 딱 맞더라고요. 여기 사람들이 우리는 한민족이고 북한을 도와줘야할 대상이라고는 알고 있는데 도와주기는 해도 같이 사는 것은 싫다고 해서 그런 인식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통일 강사가 하는 일이예요.
세상에 공짜도 없지만 불가능도 없다고 믿고 있는 유 씨는 지금은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차차 생활도 나아지고 원하는 일을 하면 살 수 있다는 희망 속에 자신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유연실: 누구의 도움이 아니라 북한에서처럼 뇌물을 써서 그 자릴 차지하고 싶지는 않고 내 능력으로 노력해서 남은 인생 멋지게 살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유연실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