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많은 수의 탈북자가 자신이 북한출신이란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조선족이라고 말한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요. 반면에 당당하게 자신이 탈북자란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남한 사람이 북한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을 대화로 풀면서 친구로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서울 서강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동철(가명) 씨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이동철: 제가 남한 생활한 것이 8년이 되어가네요. 서강대학에서 정치외교학과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자: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과 선택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이동철: 저는 정치외교학을 선택한 이유가 통일에 관심이 있어서 하게 됐습니다. 저희가 주변 강대국을 모르면 통일을 하기 힘듭니다.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면서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와의 관계를 공부함으로써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할 지 고민하기 위해 선택했고 신문방송학은 통일이 되면 남과 북의 다리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습니다.
기자: 지금 하는 공부가 쉽지 않은 주제인데 어렵지는 않나요.
이동철: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입학 전 제가 생각한 것이 1학년 때는 친구들의 발목을 잡고 가고 2학년 때는 친구들 허리춤을 잡고 가고 3학년 때는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꿈꿨습니다. 물론 4학년 때는 친구들을 앞서는 것이었죠. 그렇게 생활하다보니까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3년이 지나고 나니 공부하는 것도 재밌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좋습니다.
기자: 말투만 들어서는 북한출신인지 잘 모르겠는데 본인은 어떤 때 자기가 탈북자라는 것을 느낍니까?
이동철: 대학에 들어온 초창기에는 느꼈는데 지금은 못 느끼고 삽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도 보면 부산에서 공부하러 서울에 유학 온 학생도 있듯 저도 북한이라기보다 함경북도에서 서울로 공부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제자신도 탈북자란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기자: 탈북 대학생들이 토로 하는 것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눌 때 공감대 형성이 안 돼 힘들다는 말을 하는데 어떤가요?
이동철: 저도 어렸을 때 친구들과 어울렸던 무리가 남한 친구들과는 달라서 공감대 형성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궁금한 것을 서로 물어보면서 궁금증을 해소하다 보면 더 빨리 친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기자: 또 많은 분들이 정착이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하는데 힘들었던 점이나 자신의 고난극복 비결에 대해 소개를 해주시죠.
이동철: 외로움이 가장 컸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둘이 왔기 때문에 주위에 친척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학교 생활하면서 친구도 생기고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도 있고 하니까 그 친구들과 어울려 얘기도 하고 밥도 먹고 하면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기자: 지금 남한에서 대학을 다니는 탈북 대학생들이 대부분 북한의 고난의 행군시절 태어났기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못한 상태인데 같은 탈북자가 어렵지 않은가 하고 묻는다면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요?
이동철: 저도 고난의 행군 세대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인민학교 4학년까지만 다녔고 12살부터 17살까지 공부를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당시 주변 분들이 나이가 많으니 차라리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라는 것이 거짓말을 안 하더라고요.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만큼 실력이 올라갔습니다. 북한 주민이 한국에 가면 살기 힘들지 않을까? 공부라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겠지만 그것은 개인의 의지에 달렸다고 봅니다. 두만강을 넘을 때 생각, 한국에 올 때 꿈,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누구든 자기 앞길을 잘 개척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자: 미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온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가게 됐나요?
이동철: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공부만 열심히 하고 의지만 있다면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체에 지원을 했고 그곳에서 보내줬습니다.
기자: 미국에서 뭘 보고 배웠나요.
이동철: 미국에서는 우선 땅덩어리가 크다는 것에 놀랐고 가장 좋았던 것은 미국 대학 도서관입니다. 서부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크고 잘 돼있는 도서관을 보고 노벨상이 미국에서 많이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미국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무섭고 인종차별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실제 대해보니 너무 친철해서 그런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기자: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이동철: 공부하다보면 너무 지치고 피곤한데 책상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볼 때 그 때 가장 행복합니다.
기자: 내년이면 대학도 졸업하는데 앞으로의 진로 계획은.
이동철: 저는 계속 공부를 할 마음이 있고 학자가 되고 싶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계획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당당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이동철(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사이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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