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늘 자리옆에 두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글을 좌우명이라고 합니다. 보통 인생에서 가장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이런 좌우명을 보면서 반성도 하고 힘을 얻게 되는데요. 오늘은 ‘무엇이든 땀을 흘리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란 말을 좌우명으로 삼는 황해도 출신의 박신혁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박신혁: 저는 아파트가 10층인데 걸어서 올라가고 지금도 아침에는 아령을 6킬로그램짜리 들고 매일 운동을 하고 그래요.
고향에서 어릴 때부터 권투를 즐겨했다는 50대의 박신혁 씨. 그는 요즘도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여단 선전부 직속 기동대에서 작품을 쓰고 연출도 했다는 박 씨는 군복무 10년을 하고 고향에 돌아갔고 이후 새로운 인생을 찾습니다.
박신혁: 고향에 가니까 10년이면 옛날 속담에도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고향 산천의 변한 모습은 전혀 없고 동네서 당시 충성의 노래모임 적임자를 뽑았어요. 면접을 보는 과정에 내가 군대에서 예술계통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서 나를 충성의 모임 책임자로 받게 됐어요. 취직을 해서 외화벌이를 하는 과정에 솔직히 말해서 외부 세상 소식도 듣고 바다에 나가서 대북방송도 듣고 한국 방송을 들으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환상을 조금씩 가지게 되고 씨디 영화도 몰래 보고 하면서 같은 민족이지만 또 다른 발전된 사회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됐어요.
변하지 않는 북한 현실에 비해 모든 것이 멋지게 느껴졌던 또 다른 세상. 박 씨는 2008년 탈북해 남한으로 갑니다. 그가 느낌 남한에 대한 첫인상은 어둠이 없는 밝은 세상 그것입니다.
박신혁: 북한은 어둡잖아요. 문화 생활을 못해요. 저는 외화벌이를 해서 밧데리를 충전해 썼는데 냉장고가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북한에 노래도 있잖아요. 밝은 세상을 찾아서 가자. 내가 한국에 와서 처음 느낀 것이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나라입니다. 내가 국정원에 와서 조사를 받을 때 창밖을 계속 봤는데 밤 12시가 지났는데 계속 차가 다니는 거예요. 내가 와 있으니까 나 보라고 의도적으로 하는 건가 해서 계속 봤는데 새벽 3시가 지났는데 계속 차가 쉴새없이 지나다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북한에서 본 남한영화가 사실이구나 했어요. 완전 딴 세상에 온 느낌이었어요. 북한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구나.
보통 탈북자가 남한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 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3년에서 5년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북한에서 외화벌이 일꾼이었던 박 씨에게 자본주의 생활에 적응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없었습니다.
박신혁: 여기와서 생활이 북한하고 비교할 때 장소가 달라졌을 뿐이지 서울에 임대주택을 받아 살았는데 어려움을 몰랐어요. 담당 형사님이 신혁씨는 서울사람보다 낫다고 그랬어요. 전혀 다른 느낌을 못받았어요.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이 있었는데요. 문화가 틀리고 법이 다른 사회에서 북한식 사고 방식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면서 정착 초기에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됩니다.
박신혁: 처음에는 저도 여기 와서 일이 순조롭게 진척이 되질 않았어요. 처음에는 방송국에서 기자생활도 해보고 바닷가에 가서 잠수부 일하면서 홍합, 해삼도 잡고 한 달 동안 60만원 받으면서 했는데 누가 캐나다 가면 거기는 생활도 좋고 복지도 잘돼있다고 해서 사기꾼에게 속아서 남한테 대포차도 해주고 핸드폰도 뽑아주고 그리고는 캐나다에 갔었어요. 가서 거기서 이삿짐도 날라주고 지붕일도 하고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렇게 1년 6개월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외국에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말이 통하는 한국이 좋다해서 다시 돌아와 파산 신청을 하고 면책받고 사업을 시작했어요.
박 씨는 자신이 남한생활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정보를 공유할 통로가 다양하지 못했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욕심을 앞세우다 보니까 현실을 못 봤던 겁니다.
박신혁: 처음에 와서는 여기가 정말 천국이다 하면서 만족을 느꼈는데 조금 몇 년 살아보니까 남들처럼 좋은 차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에서는 외화벌이 하면서 상류층으로 남보다 경제적 생활이 앞서갔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진다는 자괴감이 들고 거기서 내가 욕심이 앞섰던 것같아요.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여기 저기 쓸대없는 곳에 귀를 기울였던 거죠.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서는 개인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할 정도가 됐답니다.
박신혁: 지금 여기서 캐나다에서 칼라지붕한 기술을 배워온 것으로 지붕일도 하고 트럭을 사서 물동량 운반하고 이삿짐도 날라주고 합니다. 농촌집들 다니면서 지붕 비 새는 것 견적을 내서 해줍니다. 나름대로 보람도 느끼고 그래요.
박신혁씨가 항상 되뇌이는 말은 무한불성입니다. 땀흘리지 않으면 뭐든 이룰 수 없다는 말인데요. 이 말은 자신의 경험에서 터특한 말이랍니다.
박신혁: 일하면 따라와요. 내가 돈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땀을 흘리면 돈이 지불되고 정말 행복의 부가 창출되고 하는 거죠.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철학인데 노력한만큼 대가가 차려지고 일하지 않은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는 자기가 열심히 일하면 내가 추구하는 좌우명과 같이 무한불성 땀을 흘리지 않으면 뭐든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뭘 이루려면 돈을 투자하든 땀과 노력을 투자하든 시간을 투자하면 꼭 좋은 결과가 이뤄진다는 것은 제가 확신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는 박신혁 씨. 그를 이런 행복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합니다.
박신혁: 제가 찾는 행복은 여기서도 가족을 이뤘는데 힘들게 일해도 가족을 생각하면 힘들지 않아요. 앞으로 언젠가 통일이 이뤄지면 고향에 찾아가서 지붕도 해주고 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이런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황해도 출신의 박신혁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