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는 대학생이 정말 많습니다. 얼핏 생각해 봐도 길에서 만나는 20대 젊은이 10명중 일곱 명 정도는 대학생이 아닐까 싶은데요. 대학을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탈북여성 주찬양(가명) 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또 나아가서 꿈을 이루기 위해 북한에서는 할 수 없었던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20대 초반의 주 양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함경북도 고향마을에서 혼자 살았던 주찬양 씨. 20대 초반의 나이었지만 주변의 도움 없이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야만 했기 때문에 사는 것 자체가 버겁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먼저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가족에게서 연락이 왔고 헤어졌던 가족을 남한에서 상봉합니다. 이제 1년이 채 안 된 남한 생활이지만 주 씨가 말하는 북한과 남한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주찬양: 사회주의라고 하면 저희 체제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생산해 나눠 갖는 것인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비판해주고 조직적으로 하게 하니까 양보하는 마음보다는 사람들이 서로 욕하고 헐뜯고 비판하는 버릇이 들어서 여기 말로 하면 사람들이 까칠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남한 사람들에게 받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주찬양: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말도 상냥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남한말투가 좋기는 한데 안 좋은 것은 외래어가 많으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쉽게 말을 이어갑니다.
주찬양: 식당에서 일하는 데 주방장이 피클을 가져오라는 겁니다. 다시 물어보니까 냉장고 몇째 칸에 있는 피클 있잖아? 하는 겁니다. 가서 보니까 오이김치였습니다. 여기서 적응하려면 다 알아야 하니까 배웠는데 창피했습니다.
주 씨는 남한에 가서 제일 먼저 정보 습득을 위해 컴퓨터를 공부했고 또 시간제 일을 하며 남한생활에 빠르게 적응 했습니다. 남한에 가면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아르바이트입니다. 이것을 보통 줄여서 알바라고들 하는데 북한식 표현으로 하면 삯벌이 정도가 됩니다. 주 씨가 경험한 삯벌이 즉 알바는 다양합니다.
주찬양: 식당에서 홀 서빙도 하고 호텔에서 접대원 일도 하고 호프집 가서 맥주 컵을 한손에 4개씩 8개도 들어보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 안하고 공부만 하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일할 때는 토요일엔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일당이 7만원 씩 했습니다. 하지만 알바만 하면 내 인생이 알바로 끝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호텔 삯벌이를 해서 일당 7만원이면 미국 돈으로 환산하면 65달러정도 됩니다. 하지만 주 씨는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요. 소위 말하는 취직을 하기 위해 학벌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대학에 가야한다는 겁니다.
주찬양: 알바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지금은 힘들어도 열심히 배우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맘먹었죠. 북한에서는 한참 배울 때 코피를 흘리면서 공부하고 싶어도 우리 손에는 호미자루가 잡혀 있었는데 부모님도 그때 생각하시면서 저희만 꾸준히 하면 뒷바라지 해주시겠다고 해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북한에 있을 때도 외부세계 라디오 방송을 매일 들었다는 주 씨. 직접 남한에 가서 생활하며 어려움은 없었는지 북한과 비교해 대중교통 이용에 대해서도 들어봤습니다.
주찬양: 하나원에서 교육받을 때는 뭐가 뭔지 모르고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나와서 며칠 타보니까 너무 좋습니다. 누구에게 길 물어보지 않아도 화살표 방향표가 있지 버스도 여기는 900원만 내고 30분 안에 갈아타면 돈도 더 안 내는데 북한은 갈아탈 때마다 돈을 내야합니다. 남한은 국민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놔서 좋은 것 같습니다.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남한 생활이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좀 어색한 점도 있지만 혼자 헤쳐 나가기 힘들 정도로 어려움은 없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북한과는 모든 면에서 같은 것보단 다른 점이 많을 텐데 이럴 때마다 간단한 정보검색 기능을 갖춘 스마트 폰 즉 손전화기가 개인교사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주찬양: 제가 온 다음 아빠가 스마트 폰을 해줘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 이게 뭐예요 하고 물어보지 않아도 인터넷 검색해서 다 알 수 있으니까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할아버지가 일본이나 남한 등 세계정세를 알려줬는데 그때는 상상적인 꿈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보니 다 현실이고 하니까... 북한에 있는 아이들은 이런 세상을 상상도 못할 겁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남한에 정착한 많은 수의 탈북자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남한생활을 몇 년 만 해도 말투부터 모습까지 싹 바뀌고 북한에서 쓰던 말을 잊는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온 신경을 남한적응에 쏟다보니 잠시 머릿속에서 북한에 대한 기억이 모두 지워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찬양 씨는 좀 달랐습니다.
주찬양: 저는 북한 생각을 잊을 바에야 꿈이나 목표든 안 가지고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거기를 잊지 않고 살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15살부터 정말 어려운 일을 많이 해봤습니다. 여기 와서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 하지만 공부할 나이에 제대로 먹지도 먹하고 페라글라 걸리고 죽고 하는 것을 봐서... 사촌동생이랑 너무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고 와서 북한 생각을 잊을 수 없습니다. 대학가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진짜 뭐가 필요하고 뭘 위해서 뭘 해야 할까 그러자면 대학에선 무슨 공부를 해야 할까 공부에 임하는 자세나 생각을 바로 해야 잘될 것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사람들 만나고 사업 하는 그런 것이 좋습니다. 지금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부족한 점을 채우고 장점을 키운다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남한에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주찬양(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