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마음의 문을 열면 성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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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입국 탈북자 2만 명이 훨씬 넘어선 가운데 이제는 남한 어느 지역을 가든 북한출신 주민이 지역사회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남쪽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가고 있는 탈북자 유지광(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유지광: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희망을 잃지 말고 꿈을 가지고 도전하고 그 꿈을 향해 한발짝 한발짝 나가면 꼭 실현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던 유지광 씨는 20대 중반 탈북해 이제 남한 생활 6년이 됩니다. 홀로 탈북해 가족이 모두 북한에 있기 때문에 자세한 신상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미리 기자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유 씨는 북한에서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계층으로 큰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지만 체제에 대한 불만이 쌓여 결국 남한 행을 택하게 됐다고 털어 놨습니다. 그리고 유지광 씨는 북한에서 배운 것들을 모두 뒤로 하고 간난 아이처럼 새롭게 남한사회를 온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유지광: (남한에 와서) 처음에는 북한에서 배웠던 기술들이 남한에서는 하나도 필요 없더라고요. 북한에서 공직에 있었던 기술직에 있었던 용어가 너무 달라서 한국에선 단순직, 노가다라고 하는데 저는 페인트 일을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공무원으로 일한다고 해도 한 달에 버는 돈이 한국 돈으로 2만 원정도 되는데 페인트 일을 하면서 하루에 5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좋았습니다. 페인트 일을 배우다가 나중에 기술이 늘어서 기계로 페인트칠하는 것도 배웠고 벽에다 방열판 붙이면서 조각을 깎는 것도 배웠고 그런 일로 처음에는 저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현장에서 일했던 그 경험들이 내가 나중에 대학가서 공부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일하는 만큼 은행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모이는 것을 매일 확인하면서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에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도 익숙해져 일하는 것도 재밌고 좋았습니다. 유 씨는 이렇게 매일 일을 하면서 남한 사회를 조금씩 배웠던 겁니다. 주위에서도 항상 웃으며 성실하게 일하는 유 씨를 칭찬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유지광 씨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유지광: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에서 어느 정도 배울 만큼 배웠고 위치도 있었는데 대한민국에 페인트 일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뉴스를 보면서 남북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일한만큼 보수를 받는 것은 좋지만, 북한에 비하면 너무 좋지만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것보다 조금 더 공부를 해서 전문직에서 북한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통일을 준비하는데 있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학원을 다니게 됐고 나중에 대학까지 가게 됐습니다.

기자: 남한에서 대학생활은 몇 년 한 겁니까?

유지광: 4년 했습니다.

기자: 편입을 하면 기간을 줄일 수 있는데 과정을 다 했나보네요.

유지광: 저는 2학년에 편입 됐고 3년에 졸업했어야 했는데 북한에서 배운 과목들을 전부 인정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시간도 부족했고 더 배우고 싶은 욕심도 있어 4년만에 졸업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했던 과목을 남한 대학에서 인정한 과목은 어떤 겁니까?

유지광: 인정해주는 과목은 수학, 자연, 글쓰기 등 4과목 정도 인정이 되더라고요. 역사는 새로 다 배웠습니다.

기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 생활하는데 남한생활을 잘하려면 북한출신이 바꿔야 하는 생각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유지광: 항상 내가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모른다. 사람들이 날 우습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부터 버려야한다고 봅니다. 모르면 상대에게 물어보고 자기 마음을 먼저 열게 되면 주변에서 많이 도와줍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내가 모른다고 무시하지 않는가 하고 혼자 벽을 많이 쌓습니다. 벽을 무너뜨려야합니다. 사람들이 다가서기 전에 먼저 도움을 청해야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훨씬 편하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남한 사람과 일하면서 친해지면 많이 가르쳐주고 싶은데 괜히 가르쳐주면 자존심 상할까봐 못했었다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모르면 물어보고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면서 접근하니까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잘 챙겨줘서 너무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유 씨는 대학원 준비를 하던 중에 취업이 돼서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사회 약자인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회복지일입니다. 사실 남한 사람이나 남한에 간 탈북자나 요즘 취업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설령 취업이 됐다고 해도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고 일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유 씨는 누구에게나 고난과 시련은 있다면서 어려움을 극복해야 꿈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유지광: 물론 일을 하다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옛날 고향에서 어렵게 살았던 기억 또 북한에 있는 친구 친척들 떠올리면서 그 사람들과 비교하면 지금 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좋은가? 꿈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마음이 들어서 그때마다 한 번 뒤돌아보고 힘을 내고 용기를 내 다시 도전하면서 이겨내고 있습니다.

솔직하면서도 겸손한 유 씨를 볼 때 그가 북한출신인지 남한사람인지 따지는 것은 정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이제 30대 초반으로 결혼 할 나이가 된 젊은 총각에게 요즘 중매를 서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서 유 씨는 매일 싱글벙글 입니다.

유지광: 사회에서도 주변에서도 인정을 해줘서 소개를 많이 해줍니다. 지금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내년정도 결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빠르게 승급을 하고 싶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자 유지광(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사이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