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로 새 인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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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주민이 남한에 가서 직업을 구할 때는 자기가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직종에 도전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지만 일하면서 자신의 적성을 알게 됐다는 간호조무사 지망생 김미향(가명)씨의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김미향: 조무사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실습 중이고요. 5개월 실습기간이 끝나면 3개월 공부해서 내년 3월에 자격증 시험 보면 끝납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50대 여성 김 씨는 형제가 많은 집 딸이었는데 1998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국으로 갑니다.

김미향: 부모는 내가 고향에 있을 때 돌아가셨고 7남매인데 저 혼자 왔습니다.

북한에서 또 중국에 살 때도 병원에서 일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직업 중 매일 환자를 대하면서 주사를 놓고 소독을 하고 피를 닦아주고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내키는 일이 아니었죠. 그런데 남한에 가서 요양병원에 취직하게 됩니다.

김미향: 저도 처음에는 병원에서 일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병원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집 주위에 일할 곳이 없어서 가까운 병원에서 간병사 일을 하게 됐죠. 그런데 1년 하면서 병원 부장님이 나한테 조무사 자격증을 따라고 하더라고요. 일하다 보니까 간병사보다 간호조무사가 낫겠더라고요. 지금 다니던 병원에서 실습 중인데 동료들이 자격증 따면 여기서 일하자고 합니다.

중국에 5년을 살다가 강제북송을 당했고 북한에서 감옥생활을 한 후 다시 탈북해서 남한으로 갑니다. 항상 신분이 불안했던 중국에서 살 수가 없어 남한에 간 것이 3년 전입니다.

김미향: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10년 넘게 살다가 왔으니까 놀라고 이런 일은 별로 없었는데 다른 것은 이제 마음 편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습니다.

2012년 남한 생활을 시작한 김 씨는 처음 1년은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남한사회 적응을 하게 됩니다.

김미향: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느라 학원 3개월 다니다가 자동차 면허 학원도 다니고 일당제 일을 했습니다. 생계비를 받으면서 일당일을 했어요.

기자: 일당일은 무슨 일입니까?

김미향: 청소도 하고 식당일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1년을 보냈습니다.

강제북송을 당하기 전에 중국생활이 5년 그리고 재탈북해서 다시 7년을 살았으니 합해서 10년을 넘게 중국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재 생활이 북한보다는 중국과 많이 비교가 됩니다.

김미향: 물건을 보게 되면 설명서가 자세히 안 돼 있고 포장도 엉성한데 한국 것은 잘 돼있어서 믿고 살 수 있는 상품이란 것을 알죠. 지금도 매장에 나가 얘기를 하면 여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아보고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물어봐요.

기자: 그 사람들이 뭘 보고 첫눈에 타지에서 왔다는 것을 알죠?

김미향: 대구에 사는데 서울말과 대구 말이 틀리고 저희 말은 또 한국말과 틀린 거예요. 말을 하면 중국교포죠 하고 물어보면 자세히 대꾸를 안 하고 네, 하고 자릴 피하죠.

같은 주민으로 봐주면 좋으련만 꼭 물어보는 사람이 있죠? 그것도 집요하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잊고 있던 고향에서의 힘든 일이 떠올라 우울해 지죠.

김미향: 그때는 기분이 정말 안 좋아요. 그냥 지나가면 되는데 굳이 물어보면 별로 기분이 안 좋아요. 그런데 저는 중국에선 신분을 숨기고 살았지만 여기서도 그러고 싶지 않아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북한에서 왔다고 말해도 하지만 동료한테는 자세한 말을 안 하고 중국교포인가 하면 그냥 네, 이러고 맙니다.

가족이 전부 북에 있고 북한하면 먹을 것 없어 굶어죽고 북송당해 지옥 같은 감옥생활이 마지막 기억인데 기분이 좋을 수 있겠습니까? 왜 물어보는 줄 이해는 하지만 그만 물어봤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랍니다.

김미향: 사람들이 아마 외국에서 왔다 하니까 신기하겠죠. 저고 궁금할 것 같아요. 나쁜 생각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궁금하니까 자꾸 물어보는 거죠.

기자: 타지에서 왔다 하니까 호기심에서 물어본다는 거죠?

김미향: 그렇죠, 그냥 궁금한 거죠.

이제 실습이 끝나면 필기시험을 보고 일정한 점수가 나와야 정식 자격증을 받아 간호조무사로 일하게 됩니다. 지금은 간병인이지만 자격증을 따면 간호사를 보조하는 조무사로 월급과 대우가 달라지는 겁니다.

기자: 필기시험에 합격을 해야 할 텐데요

김미향: 그렇죠. 제가 그게 걱정입니다. 점점 간호조무사 시험이 어렵게 나오고 있어요. 올해 시험 친 사람들 보니까 40%가 떨어졌더라고요. 실습이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공부를 해야 하겠는데 남들보다는 두 배로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남한은 취업이 힘들어 젊은 사람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 못하는 사람이 많다 하는데 50대 여성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다고 취직이 잘될까 걱정을 했더니 문제없답니다.

김미향: 지금 현실은 아가씨들은 간호조무사일을 안합니다. 간호조무사일이 힘들고 하니까 다 아줌마들이 해요. 병원에서도 아줌마를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아줌마들이 일도 잘하고 환자도 융통성 있게 잘하고 하니까 병원에서는 아줌마들을 뽑죠.

이제 남한생활 3년이지만 크게 적응에 힘든 일은 없습니다.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 하면서 살기 때문에 매일 행복하답니다.

김미향: 힘들다고 하는 것은 일에 지치고 해서 힘든 것은 있지만 심리적으로 어렵다 이런 것은 없어요. 제일 좋았던 것은 신분증을 받았을 때 날아갈 것같이 좋았어요. 탈북자라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려고 하는데 그것은 부과적인 것이고 신분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없으니 좋은 거죠. 자기가 환경에 적응을 못하면 주저앉는 것이고 스스로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계획대로라면 이제 얼마 안 있어 자격증을 따고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새로 인생을 시작합니다.

김미향: 제가 노력하는 만큼 먹고 사니까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이고 지금 나이부터는 노후 준비를 해야 하니까 돈을 벌면 노후 준비도 하고 집도 장만하고 한다는 생각이죠.

제2의 고향 오늘은 간호조무사 지망생 김미향(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