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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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세상을 사는 데 어떤 마음의 자세로 임하는 가에 따라 행복해 지기도 하고 또 불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가 봅니다. 남한생활이 5년차가 되는 탈북여성 김화순(가명) 씨는 남들이 볼 때 크게 가진 것은 없어 보여도 부족한 것 못 느끼면서 힘차게 내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학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는 김 씨의 이야기입니다.

김화순: 항상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을 싫어해요.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죠. 미래를 생각하다 보다 불확실성 때문에 두렵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면 현재에 더 충실하면 되는 거죠.

올해 서른다섯 살 김화순 씨는 함경북도가 고향입니다. 탈북한 것은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김화순: 제가 나올 때는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다고 선거를 하는 날이었어요. 2003년 8월3일 이예요. 사실은 그전에 두만강을 건너려고 했는데 선거에 참여 안하면 반동이 되니까 가족을 위해 선거하려고 갔죠. 세포조직비서가 난리를 피우고 했는데 그때 제가 들어 간 거죠. 그리고 선거 끝나고 강을 건너려는데 마침 그때가 장마여서 강물이 너무 불어 8월 10일에 강을 넘었어요.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탈북 했던 것도 아니고 더 이상 북한에서는 살수 없어 먹고 살기 위해 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는 중국에서 조선족 남편을 만나 살다가 남한으로 갑니다. 신분을 보장해 주고 정부에서 살길도 마련해 준다는 소식을 먼저 간 탈북자들을 통해 들었기 때문에 다시 큰 결심을 한 겁니다. 그렇게 김 씨는 2008년 남한으로 갔고 새로운 환경을 맞게됩니다.

김화순: 저는 성격이 좋은 편이예요. 쉽게 말해서 적응을 잘하는 편이죠. 와서 보니까 말이 좀 다르더라고요. 북에서는 크레용이라고 하는데 여기선 크레파스라고 해서 못 알아들었죠. 오자마자 적응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외국사람들이 쓴 책, 번역본을 보면서 영어 단어도 알고 책을 통해 시대를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남쪽에서 바로 한 일이 물건을 가지고 집을 방문해 파는 방문판매 영업직이라 사람도 만나고 설득도 해야 하기 때문에 김 씨는 도서관에서 주로 ‘고객을 감동 시키는 방법, 설득의 비결 등 장사를 하면서 필요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이런 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법을 간접적으로 학습한 겁니다.

김화순: 저는 오자마자 화장품 방문 판매원으로 일했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들이나 소개를 받아서 파는 거죠. 북한 같으면 자기가 좋으면 사고하겠는데 아니더라고요. 북한에서 장사도 하고 성격도 사교적이라 잘 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여기는 철저하게 자기가 아는 사람을 통해 사더라고요. 아무리 멀어도 택배가 되니까 다 단골이 있더라고요. 저는 아는 언니의 인맥을 통해 그 일을 한 1년 했습니다.

사람 상대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질 않았습니다. 맘 같아서는 받아 놓은 물건을 모두 팔 것 같았는데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가지고 있어도 전부 이미 받아쓰는 사람이 있어 새로운 고객을 찾기 힘들었던 겁니다. 그리고 소개를 받아 하나를 팔고 나면 그 사람이 다시 찾을 때 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고. 이건 아니다 싶어 남한사회를 좀 더 알기 위해 대학을 갑니다.

김화순: 1년 동안 영업일을 하다가 그 후부터 학교 진학했어요. 다니다가 힘들어서 한해 휴학도 하고 쭉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사람들이 한국에 대학이 많고 한국 사람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북한에서 농장원이었습니다. 농사꾼이었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한국에서 공부하려고 하니까 이런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북한 사람은 머리가 나쁘다’ 또 2년제를 하는데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것을 보고 너무 공부가 힘들어서 못 따라가는구나. 그럼 나는 더 못 하겠구나 하고 겁을 먹은 겁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4년제를 못가고 2년 전문대를 갔는데 너무 쉬운 거예요. 교수님들이 너무 잘한다고 하고요. 그래서 이번에 전문대 졸업하고 3학년에 편입한 거죠.

북한에선 농사꾼으로 살았고 중국에서는 힘들게 숨어 살아야 했는데 이젠 대학생으로 당당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됐습니다. 중국에서 데려온 남편 그리고 딸 이렇게 세 식구는 매일 소박한 행복을 맛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김화순: 저는 시시각각으로 감사함을 느껴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가서도 문득 문득 감사하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껏 생각했던 것대로 다 된 것 같아요.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가가 다른 거죠. 북에서도 한국 생각을 했는데 중국에 갔다가 한국에 왔고 또 공부를 좋아하니 대학도 다니고 적극적이다 보니 사기도 당하고 했지만 괜찮아요. 남편이 하는 말이 그러면서 인생을 배우는 것이다. 오늘 손해 본 것에 교훈을 삼아 너무 가슴아파하지 말라. 일이 터지면 왜 이렇게 됐을까? 누구 탓일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해결 방법을 찾는 거죠.

대학교 3학년의 김화순 씨 내년만 지나면 졸업장을 손에 쥐게 됩니다. 그냥 대학 졸업장만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상담사 자격증도 준비 중인데요. 이렇게 앞일을 준비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화순: 저는 강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사람들은 앞에 나가서 말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데 저는 무대에서 말하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저는 연설하는 것, 강의 하는 것을 잘하는 것 같아요. 제가 철학을 좋아하는데 그런 공부를 해서 강의하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김화순(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