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으로 가서 아름다운 세상을 노랫말로 만드는 이가 있습니다. 탈북여대생인데요. 남들은 그를 시인이라고 부른답니다. 오늘은 남한생활 5년차가 되는 오은정 씨를 소개합니다.
오은정: 지금 준비 중입니다. 후원금을 모집하고 있는데 시집판매금은 탈북대학생을 위해 쓰일 겁니다.
2014년을 오은정 씨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간 마음이 가는 데로 일기장에 써놓은 글이 한권의 책으로 나와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으니 말입니다. 요즘 한창 마무리 작업 중이라는데요. 20대 초반의 오 씨가 남한으로 가게 된 것은 떨어져 있는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간단한 이유에서입니다.
오은정: 중국인지 한국인지 긴가민가해서 엄마가 부르니까 그곳이 어디든 가야한다는 마음으로...
남한에 먼저가 있던 오 씨의 엄마가 사람을 넣어 딸을 부른 겁니다. 사실 오 씨는 헤어졌던 엄마가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고 하는데요. 그게 중국이든 남한이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남한생활.
오은정: 5년 동안 학교만 다녔어요. 한국 와서 중고등학교 다니고 곧장 대학에 진학했고 그 기간 저에 대해 많이 알게 됐어요.
기자: 자신을 알았다는 말은 ?

오은정: 북한에선 그런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에 대한 생각보다는 현실에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데 한국에 와서 정착하면서 사랑에 대해 알게 되고 저 자신에 대해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몰랐는데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찾게 되고 앞으로 뭘 해야겠다는 목표도 생겼어요.
기자: 자신은 어떤 것에 소질이 있고 좋아하는 분이던가요?
오은정: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대학가서 알게 된 것인데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감정이 예민해서 작은 것에 감동받고 실망하고 상처도 받거든요. 그리고 꿈이 있다면 통일이 됐을 때 북한에 가서 사는 거예요. 북한에 가서 산에 나무도 심고 그곳 사람들 다시 만나고 예전에 살던 그 집에 가서 사는 것이 꿈이고요. 남북한 사람들이 공감하는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은정 씨가 노랫말을 쓰고 남한 가수 ‘커피소년’이 곡을 붙인 통일 마중 가자란 곡입니다.
(노래): 새싹이 햇빛을 기다리듯/ 파도가 바람을 기다리듯/ 단풍이 가을을 기다리듯/ 통일도 기다리자/ 그렇게 통일을 기다리자...
오은정: 제일 큰 이유는 북한에 아직 살고 있는데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 가고 싶은 그리움을 말하고 싶었어요. 여기서 살면서 힘들었던 점 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썼거든요.
(북에 있는 동생을 그리워하는 오은정의 고백: 목소리 양윤정)
몇 밤만 자고 오겠다던 날 보며 동생이 울먹이며 빨리 오라고 말했었어요. 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한 예감 때문에 눈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울먹이는 동생 목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울고 있는 언니를 보고 울음을 터뜨릴 동생을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문을 열고 나왔어요. 그때 다시 한 번만 뒤돌아 봤더라면 지금 동생 얼굴이 생생히 기억될 텐데... 늘 그때를 후회했어요.
오은정: 시라는 생각 없이 그냥 썼어요. 제가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요약해서 썼는데 주변에서 시인이라고 말해주셔서...아직 시인은 아녜요.
오 씨는 남한에서 자신의 나이또래 젊은이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자: 대학생이라고 했는데 대학에서는 어떤 것을 공부하세요.
오은정: 지금 식품영양학과 전공이고요. 현재 3학년 2학기 다니고 있어요.
보통 많은 탈북청년들이 경영이나 중국어 학과 또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데 오 씨는 중국생활을 거치고 않고 남한으로 직행한 탓에 중국어 학과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남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하면서 사업을 하는 경영학과는 적성에 맞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일 관심이 가는 분야를 공부하게 된 거죠.
오은정: 제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릴 때부터 혼자 살다보니까 밥을 해먹고 하던 것이 습관이 됐나봐요. 여기서 대학에 가려고 학과를 보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 하고 전공 선택을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좀 반대를 하셨어요. 요리는 육체적으로 힘든데 할 수 있겠느냐고...나중에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어린이들을 위해 영양사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리는 나중에 배우고 식품영양학을 하게 됐어요.
오 씨가 처음 남한 땅을 밟았을 때는 엄마를 다시 만나 함께 산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모든 것이 낯선 사회에 쉽게 맘을 열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은정: 한국에 와서 처음 느낀 감정은 콘크리트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저는 아직 옆집에 누가 하는지 모르거든요. 북한은 시골 같은 분위기라 동네사람들 다 알고 하는데 여기선 자본주의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너무 열심히 사는 겁니다. 대학교에 가보니까 말은 안하지만 경쟁이 너무 치열했어요. 그런 부분이 사람 마음을 더 얼어들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슬픔을 승화 시키고 절망을 극복하는 시인의 눈을 가져서인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오 씨는 차가운 속에서도 따뜻함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던 거죠.
오은정: 그런 콘크리트 같은 세상이지만 그 속에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것 남을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말하고 친해지다 보면 같은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제가 여명이라는 대안학교에 다녔는데 아이들이 방황하고 말도 안 듣고 하는데 선생님들이 잘 품어주시고 상담도 해주시는 거예요. 제가 생각해봤을 때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았어요. 사랑을 받아야 사랑을 줄 수 있잖아요. 저는 그때 사랑을 타인에게 느껴봤어요.
북에 살 때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됐고 꿈꾸게 됐습니다. 사랑을 알게 됐고 행복도 느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졌는데요. 오 씨는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오늘도 하얀 백지에 깨알 같은 글을 써내려가고 있답니다.
오은정: 한국에서 할 것 정말 많죠. 공부도 해야 하고 그리고 시를 취미로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한국 분들에게는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북한 분들에게는 건강하고 위로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제가 볼 때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봐요. 제가 자연친화적인데 주변에 작은 꽃 한 송이를 봐도 여유를 느끼는 삶이 좋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을 아름다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통일 마중 가자’ 노랫말을 쓴 탈북대학생 오은정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