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차면 평생 함께할 배우자를 찾아 결혼을 합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늘은 같은 고향 출신의 여성과 결혼식을 준비 중인 함흥 출신의 탈북자
이슬 (가명)씨의 이야기입니다.
2006년 남한에 간 탈북자 이슬 씨는 미술대학으로 유명한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예술 학도인 이 슬 씨는 기자가 몇 년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직접 만나보기도 했는데요. 대학을 졸업하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안목을 넓히고 싶다는 포부도 밝힌바 있습니다. 당시 회견 내용 잠시 들어보시죠.
이슬: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어느 정도 지식과 안목이 쌓이겠지만 21세기 이 땅은 그저 한 조각에 불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또 가게 되면 저랑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고...
할아버지와 외삼촌들이 모두 북한에서는 도예작가였고 그런 집안의 영향을 받아서였는지 남한에 가서 제일 잘하는 미술 공부를 하고 싶어서 산업디자인과를 택했다는 이 씨.
30대 초반인 이슬 씨는 대학생활 중 같은 탈북여성을 만나게 됐고 결혼식을 올립니다. 남쪽에는 가족이 많지 않아 식은 될수록 간소하게 치루겠지만 그래도 초대할 사람이 한 150명 정도는 된다고 합니다.
이슬: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예식장을 찾는 건데 다른 분들은 한 500만원을 들여서 예식장을 빌려 결혼식을 하는데 제 경우는, 가봤는데 결혼식장이 썰렁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가족도 많지 않고 여기서 교회 다니니까 교회를 빌리기로 했습니다.
기자: 하객들 식사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이슬: 식사는 예식을 마치고 그 공간을 활용할 겁니다. 음식은 외부에서 이동식 뷔페라고 당일 전문점에서 오셔서 준비를 해줍니다.
기자: 음식은 몇 종류나 되나요?
이슬: 제가 구체적인 것은 다 기억은 못하고 그것을 전담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일 마지막에 계산서를 보고 제가 결제만 하면 됩니다.
기자: 결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예물인데 신부하고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이슬: 양가 부모님이 다 여기 계시면 준비할 것도 많고 한데 지금은 형편도 그렇고 또 저희가 결혼 전에 함께 살았으니까 간단히 금반지만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 보통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는데 순서가 좀 바뀌었어요? 아이 키우는데 돈 많이 들죠?
이슬: 네, 아기 낳기 전부터 애기 싸개부터 준비를 했습니다. 아이 용품은 조그만데 너무
비쌉니다. 포대기 하나에 10만 원정도 하더라고요. 신발, 분유통, 신발 등 너무 많아요. 이렇게 아이 용품이 많이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탈북자가 남한에 가서 대학진학을 하게 되면 대학등록금을 정부에서 지원 받습니다. 보통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원 미화로 5천 달러 전후가 되는데 학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하지만 생활비는 자신이 해결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꼭 빼닮은 아이가 생겨 신기하기만 하다는 이슬 씨. 모든 생활이 갓 태어난 아이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슬: 기저귀 값을 줄이기 위해 천기저귀를 샀는데 이것만 쓰면 빨랫감이 너무 많아지니까 낮에는 천기저귀를 쓰고 밤에는 일회용을 쓰는데 그래도 한 달에 일회용 기저귀 130개 하는 것 두 박스 정도는 쓰는 것 같습니다.
기자: 천기저귀도 한국에서 파나보죠?
이슬: 네, 아이용품 파는데 있는데 하나에 몇 만원씩 합니다.
이번 학기는 휴학계를 내고 일용직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지만 봄 학기에는 다시 복학을 하고 남은 과정을 끝내려고 합니다. 요즘은 결혼식 준비에 간난아이 돌보기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바로 달라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슬: 아이 낳고 중고차를 하나 뽑았습니다. 전에는 차에 대해 생각을 안했죠. 특별히 차 몰고 가야할 곳도 없고 하니까요. 그런데 아이가 있고 또 겨울이고 하니까 대중교통 이용하려니 못 다니겠더라고요. 찬바람 쌩쌩 불고 하니까 그래서 바로 면허 따고 300만 원 짜리 중고차를 샀습니다. 아이가 있고 부터는 수시로 전화하고 영상통화를 많이 합니다. 전화비용이 많이 나갑니다. 그리고 아이가 밥만 먹고 자는 것이 아니라 울면 안아주고 해야 하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꿈 많은 청년 대학생에서 이제 한 집안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예전에 가졌던 계획은 이제 현실에 더 충실해야 하는 쪽으로 약간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꿈을 접은 것은 아닙니다.
이슬: 고민을 많이 합니다.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현장으로 나갈까? 아니면 졸업을 하고 원하는 길을 가야할까? 많은 분들이 힘들어도 학교를 졸업하라고 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길은 도자기, 조각예술 쪽으로 하고 싶습니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 또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를 다 욕심내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집사람이 원하는 좋은 남편은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인데 개인적으로는 남들이 인정해주고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이런 모든 것을 충족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자 이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