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과 평양 사이 이장균입니다. 한민족이 둘로 갈라져 살아야 하는 분단이라는 현실에서 비롯된 수많은 사연은 지속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했습니다.
민족의 비극으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지난주 살펴봤듯이 역사적 증언으로서 그리고 전쟁이 한 인간을 그 가족을 얼마나 비참하게 파멸시키고 민족 전체에 아물지 않는 큰 상처를 남기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서울과 평양 사이 오늘은 지난주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에 이어 전쟁 이후 남북 사이에 얽힌 다양한 얘기들을 소재로한 영화나 드라마들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민족의 분단이 전쟁을 통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는가를 보여주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남북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남한과 북한 사람끼리 얽히는 인간적인 삶을 조명하면서 정서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영화나 드라마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전후 세대 겨냥 현대적 감각으로 진화
영화를 보는 주 소비자가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들이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가 남북 분단 문제를 역사적 시각으로 정면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남북 남녀 간의 사랑을 통한 정서적 접근 또 남북의 첨예한 정보전을 바탕으로 한 첩보영화 형태로 전후 세대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적 흐름의 물꼬를 텄던 영화가 첩보전의 성격을 띠면서도 남과 북의 남녀의 애정을 다룬 1999년에 나온 ‘쉬리’라는 영화였습니다. 당시에는 한국 영화에서 유례가 없는 대규모 투자로 제작된 대작으로 개봉 10일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할 만큼 큰 관심이 쏠렸던 영화였습니다.
(ACT : 쉬리 )
국가 일급 비밀정보기관의 특수비밀요원 유중원, 한석규라는 남한의 인기 배우가 역을 맡았었죠, 이 남한의 특수비밀요원 유중원의 상대역은 이방희라는 북한군 특수8군단 소속의 최고의 저격수입니다. 배우는 박은숙이 맡았다가 성형수술을 하고 남한비밀요원 유중원에게 이명현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할 때는 김윤진이라는 배우가 배역을 맡았습니다.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하고 화해 분위기로 접어드는 것을 반대한 북한의 특수부대원들이 남한에 잠입해 남한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대규모 폭탄 테러를 벌이려고 하는 것을 남한 특수요원들이 막아낸다는 내용입니다. 원래 ‘쉬리’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요 쉬리는 한반도의 맑은 물에만 서식하고 있는 토종 관상어에 대한 순수 우리말로, 영화에선 특수8군단 소속 북한 요원들의 작전명으로 사용됐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남북통일기원 축구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 북한 요원들이 설치해 놓은 고성능 폭탄의 폭발을 막기 위해 주인공인 유중원이 현장에 달려가고 그곳에 잠입해 있던 북한 요원들의 지휘자인 특수8군단 소속 박무영 소좌, 배우 최민식이 역을 맡았죠. 이 박무영 소좌와 북한 요원들에게 붙잡힙니다. 박무영 소좌는 북한의 특수8군단장의 지시를 받고 남한을 무력으로 전복시키려는 무력을 맹신하는 강경파입니다만 남한비밀요원 유중원을 묶어놓고 서로 나누는 대화는 통일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박무영은 남북한 정치인에 대한 강한 불신, 그리고 남북한의 경제적인 차이에 대한 불만으로 전쟁을 통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강경파로서의 생각을 하고 있고, 유중원은 남북한이 서로에게 총구를 맞대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뿐이라고 강변합니다.
박무영 : 이제 곧 여긴 썩어빠진 남북 정치꾼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유중원 :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관중들까지겠지, 미친 짓이야
박무영 : 역사는 때로 그런 무모함을 필요로 할 때가 있어 바로 지금처럼..
유중원 : 원하는 게 뭐야
박무영 : 전쟁이야, 우린 전쟁을 위해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있다.
유중원 : 저 많은 사람이 장애물은 아닐 텐데..
박무영 : 여기 일 단계 작전이 끝나면 곧바로 우리 인민혁명군의 통일전쟁이 시작된다
유중원 : 무모한 짓이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 라이트 꺼
박무영 : 미안하지만 이 땅의 역사와 조국의 영령들은 그런 걸 원치 않는다.
유중원 : 또 한 번 서로의 가슴에 총구를 맞대는 전쟁은 더더욱 원치 않아
박무영 : 혁명에는 고통이 뒤따르게 돼 있어,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지
유중원 : 지난 1950년에도 너희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어. 그 전쟁의 결과가 우리에게 남긴 고통이 뭔지 알아?
박무영 : 알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전쟁의 고통이 뭔지.. 분단이 안겨준 고통이 뭔지.. 이젠 끝낼 때가 됐다.
유중원 : 오늘 이 경기가 그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야
박무영 :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순진하게도 우린 저 고매하신 정치꾼들을 믿고 지난 50년 동안을 그렇게 기다려 왔어.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작 저들은 통일을 원하고 있지 않아. 우린 지금 이 순간에도 잘 짜여진 연극 한 편을 보고 있는 거야
유중원 : 착각하지 마라 박무영, 통일을 원하는 건 너희만이 아니야, 아직은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할 때야
박무영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니들이 한가롭게 그 노래를 부르고 있을 이 순간에도 우리 북녘의 인민들은 못 먹고 병들어서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어. 나무껍데기에 풀뿌리도 모자라서 이젠 흙까지 파헤쳐 먹고 있어. 새파란 우리 인민의 아들딸들이 국경 너머 매춘굴에서 그것도 단돈 100달러에 개 팔리듯이 팔리고 있어, 굶어 죽은 지 새끼의 인육마저 뜯어먹는 그 애미, 그 애비를 너는 본적이 있어, 썩은 치즈에 콜라, 햄버거를 먹고 자란 너희가 알 리가 없지, 축구로 남북한이 하나가 되자구? 개수작 떨지 마라, 지난 50년 동안 속고 기다린 걸로 족해, 이제 조선의 새역사는 우리가 다시 연다
이념, 체제 부각보다 같은 인간이라는 정서적 접근
(ACT : 웰컴투 동막골)
이렇게 남북이 분단된 채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도의 현대적인 첩보전을 통해 가상의 위험한 상황설정을 풀어가는 영화들이 있는가 하면 한발 더 나아가 공산주의, 민주주의라는 이념 갈등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인류애로 접근한 ‘웰컴투 동막골’이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2005년에 나온 영화 웰컴투 동막골은 영화에 등장하는 남한군과 북한군, 연합군 그리고 생전 총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동막골이라는 산골 촌사람들을 통해 모두는 화합해야 할 친구이자 똑같은 사람이라는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ACT : 웰컴투 동막골)
1950년 11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함백산 절벽들 속에 자리 잡은 마을, 동막골에는 추락한 미군 전투기 조종사와 인민군 병사들, 그리고 자신의 부대에서 이탈해 길을 잃은 국군들이 우연히 마주쳐 어쩔 수 없는 불안한 동거생활을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바깥세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던 순박한 동막골 사람들, 총도 한번 구경하지 못했던 산골 사람들에게 인민군, 국군. 미군이 가지고 있는 수류탄, 총, 철모, 무전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저 신기할 뿐인 물건들로 비칩니다.
서로 죽여야 하는 인민군과 국군, 미군들 사이지만 사상도 이념도, 전쟁도 전혀 의미가 없는 순수한 시골 사람들의 눈을 통해 모두가 인간이라는 공통점,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결국은 모두가 같은 인간들이라는 점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들 가운데 전쟁이나 첩보전을 소재로 다룬 영화나 드라마들은 상당한 제작비를 들여 규모가 큰 대작들이 많습니다. 이런 대작들과는 달리 규모는 작지만 남북한 사람들 사이에 얽히는 얘기를 가슴 먹먹하게 그린 영화 또는 남북 사람들의 얘기를 희극적으로 풀어간 영화들도 많습니다.
어두운 남북관계를 훈훈하게 밝혀준 영화 ‘의형제’
지난해 나온 ‘의형제’라는 영화도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내용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입니다.
(ACT : 의형제)
영화 의형제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한에 내려온 공작원 지원과 이런 공작원을 추적해 잡아내는 역할을 하는 남한의 국가정보원 요원인 한규 사이에 펼쳐지는 얘기입니다. 한규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총격전 사건과 관련해 작전을 펼치다 실패해 국정원에서 파면을 당하고 남파 공작원 지원은 동료로부터 배신을 당해 북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신분을 속인 채 함께 흥신소라는, 남의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고 돈을 받는 일을 합니다.
영화에서는 결코 가까워질 수도 없고 가까이해서는 안 될 북한의 공작원과 남한의 정보부 요원이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고 형제처럼 정을 느끼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규는 지원이가 더러운 빨갱이 간첩인 줄만 알았는데 북에 두고 온 한 가정의 가장이고 돌아가려 해도 버림받아 어찌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 그래도 가족만은 지켜보려고 애쓰는 너무도 여린 한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연민을 느낍니다.
지원 역시 자신을 잡으려고 애쓰는 인정 없는 차가운 정보 요원으로만 알았던 한규가 자신의 딸에게 전화 통화를 하는 걸 들으면서 그 역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살아가는 초라한 한 남자임을 알게 되고 그에게 친형처럼 따뜻한 정을 느끼게 됩니다.
(ACT : 풍산개)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로 가장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는 ‘풍산개’입니다. 북한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과거 남북정상회담 때 선물로 보내기도 했던 개죠, 예부터 시베리아 호랑이 같은 맹수를 사냥하기도 했던 용맹스런 개라고 합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북한에는 ‘우리나라의 자랑 풍산개’ 라는 문구가 새겨진 ‘풍산개’라는 담배도 있죠. 영화의 주인공이 이 풍산개라는 담배만 피워서 그랬는지 풍산개라는 이름을 붙인 이 영화는 휴전선을 넘나들며 무엇이든 세시간 만에 배달한다는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주인공입니다. 이산가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 또는 유품을 전달하는 일을 합니다.
윤계상이라는 남한의 인기배우가 바로 그 역할을 맡았는데요 어느 날 북한에서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고위층 간부가 북한에 있는 자신의 애인을 빼 와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얘기가 시작됩니다. 영화는 이를 눈치챈 남한 정보당국 요원들과 망명한 북한 고위간부를 처단하기 위해 남한에 내려와 있는 북한 간첩단 간에 펼쳐지는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과 평양 사이를 오가며 심부름을 하는 주인공은 양쪽 사이를 끌려다니며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만 그때마다 고문을 당하면서 받는 질문은 너는 어느 편이냐 북조선이냐 남조선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나이는 영화 내내 말이 없습니다.
휴전선 철조망을 긴 장대로 장대높이뛰기를 해 넘는다거나 서울과 평양 사이를 3시간에 주파한다거나 하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과도한 설정에다 남북 분단의 묵직한 주제인데도 군데군데 희극적인 내용이 뒤섞여 뭘 얘기하려는지 주제가 모호하다는 비판도 많이 받고 있지만 남북 분단의 상징인 높은 휴전선 철조망을 넘나드는 주인공, 남과 북 어느 편도 아닌 한 주인공을 통해 남북 분단의 현실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해 보는 영화입니다.
인간적 접근, 애정물 등으로 정서적 공감 다룬 분단 소재로 진화
(ACT : 스파이 명월)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가운데 가장 진화한 형태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최근 방송되고 있는 텔레비전 연속극 ‘스파이 명월’을 들 수 있습니다.
스파이 명월의 주인공은 정보기관의 정보원도 아니고 특수 공작원도 아닌 이른바 한류스타로 불리는 인기배우입니다. 남한의 인기배우가 남파된 북한의 미녀공작원 명월이와 달콤하고도 살벌한 연애를 펼친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가요 등 이른바 한류가 해외는 물론 북한 땅까지 퍼지고 있는 현실을 드라마에 담고 있어서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드라마로는 가장 진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여러 북한 전문 매체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 여러분이 남한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많이 보고 있다고 하죠, '시크릿 가든'을 비롯해 '아이리스', '아테나-전쟁의 여신' 등 한국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만 '시크릿 가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부 북한 부유층 자제들은 '현빈 트레이닝복' 즉 운동복을 구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드라마 '스파이 명월'에서 명월과 강우가 만나는 과정 역시 북한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이 발단이 됐죠. 강우라는 남한 배우를 너무나 좋아하는 북한 고위층 자녀가 비밀리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강우의 공연을 구경하러 갔다 명월에게 "강우의 사인을 받아 달라"고 요청하며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됩니다.
‘스파이 명월’ 제작진은 이념과 정치 싸움에 얽힌 남북관계가 아닌 한류라는 대중문화를 통해 새로운 소통 창구를 연 남북한 젊은이들의 사랑을 보다 유쾌한 분위기로 풀어내면서 정치적 색깔은 되도록 드러나지 않도록 이 드라마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최근의 남북분단 소재 영화나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이념의 대립과 반목으로 얽힌 관계가 아닌 보다 다양한 인물들을 다루면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수준으로 맞춰지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색깔은 빼고 인간적이고 희극적인, 때로는 달콤한 남녀 간의 애정에 이르기까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서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작품들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ACT : 스파이 명월)
서울과 평양 사이 제작, 진행에 이장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