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평양 사이] 진화하는 분단 소재 영화 (전쟁영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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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과 평양 사이 이장균입니다. 남북분단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의 현실만큼 극적인 요소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근 북한에서도 남한의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주민 여러분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서울과 평양 사이는 오늘과 다음 시간 두 차례에 걸쳐 남북문제,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의 흐름을 살펴봅니다. 오늘은 전쟁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 편입니다

(Act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즉 텔레비전 연속극의 내용을 크게 나누면 6.25 한국전쟁을 다룬 전쟁 영화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의 한반도에서의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첩보전을 다룬 내용, 그리고 같은 민족으로서 남한과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인간적인 갈등과 감동을 소재로 한 내용입니다.

남한의 전쟁 영화가 정치나 이념 갈등을 부각시키는 데서 보다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접근으로 진화를 해왔지만, 북한은 여전히 6.25전쟁을 남한이 도발한 북침 전쟁으로 둔갑시키면서 침략에 맞서 싸운 조국해방 전쟁이라고 강조하면서 반미 투쟁을 선동하고 주민을 결집하는 수단으로 영화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영화에도 반미투쟁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공부하다 잠이 든 아이가 꿈속에서 미군 군함을 향해 연필 포탄을 발사하는 내용의 만화영화 '연필 포탄' 여러분도 보셨겠죠?

(Act : 아동영화 '연필 포탄' )

전 세계 사람들이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연결해 직접 올리기도 하고 볼 수도 있게 동영상을 모아 놓은 유튜브에도 올라 있는 북한 만화영화 '연필 포탄'을 본 사람들이 소감을 적어 놓은 댓글에는 '무기나 그만 좀 만들고 제발 백성이나 살려라' '이런 거 만들 돈으로 굶어 주는 아이들 먹을 거나 줘라' '이런 거 보고 배운 애들이랑 통일해서 잘 살 수 있을지 내 다음 세대가 무척 걱정된다' 이런 내용이 올라 있습니다.

(Act : 영화 '포화속으로')

최근 남한의 전쟁 영화나 드라마는 그 내용이나 규모가 커져서 엄청난 제작비를 들이는 대작들도 많습니다 MBC가 지난해 한국전쟁발발 60년을 맞아 만든 텔레비전 연속극 '로드 넘버원'은 천2백만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습니다. 6.25전쟁 때 학생의 신분으로 전쟁에 나섰던 학도병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 '포화 속으로'도 비슷한 천만 달러가 넘는 제작비가 들었습니다.

(Act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전쟁 영화는 전쟁을 겪은 구세대들에게는 공감을 주고 전쟁을 겪지 않은 전쟁 이후 세대들에게는 전쟁을 실제 겪는 듯한 실감을 줍니다. 2004년에 나왔던 '태극기 휘날리며'는 많은 관객에게 인기를 끌었던 전쟁 영화로 전쟁 속으로 뛰어든 형제의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형은 동생을 전쟁에서 희생되지 않도록 하려고 자신이 혁혁한 전공을 세우면 동생을 집으로 돌려 보내준다는 상관과의 약속을 믿고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동생이 죽은 걸로 오해하고 약속을 저버린 국군에게 복수하기 위해 잔인하고 용맹하기로 이름을 떨쳤던 인민군 깃발 부대로 들어가 전투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국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현장에서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국군으로 싸우고 있는 걸 발견하고 동생에게 빨리 돌아가라며 국군에게 겨누었던 기관총의 총구를 다시 인민군 쪽으로 돌려 총탄을 퍼붓다 결국 인민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죽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Act ; 고지전)

6.25 전쟁을 소재로 가장 최근에 나온 영화는 지난 20일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한 '고지전'이라는 영화입니다.

1950년 6월25일 시작돼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37개월간 계속된 전쟁에서 400만 명의 사상자가 났고 그중 300만 명이 휴전협정 협상 기간에 발생했습니다. 협정이 조인되기 전에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남북 간의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기 때문입니다. 그 공방전의 대상이 고지였습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전쟁 영화는 그 시작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 고지전이라는 영화는 그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고지전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동부전선 애록고지를 배경으로 악어중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한 국방군 중대가 북한군과 펼치는 험난한 고지탈환 전투 얘기입니다.

서로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산인데, 막상 따지고 보면 그 산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빼앗으려고 수없이 서로 죽였던 그 고지는 강원도의 어느 알려지지 않는 하나의 산일 뿐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포화 속으로'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조국과 애국심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주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면 '고지전'이라는 영화는 서른 번 넘게 같은 산을 점령하고 또 점령당하는 치열한 전투를 계속 보여 주면서 나중에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조차도 잊은 채 단지 살아남기 처절하게 싸우면서 관객에게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보신 분들 있으실 텐데요 11년 전 나왔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을 쓴 박상연 작가가 대본을 썼고 남북 분단을 소재로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의형제'라는 영화를 만들었던 장훈 감독이 감독을 맡았습니다. 고 수, 신하균, 고창석, 류승스 등의 남한 인기배우들이 등장해 좋은 연기를 펼쳤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천만 달러가량의 적잖은 제작비를 들여 만든 영화로 고지에서 싸우는 군인들, 널브러진 시체 모습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60여 년 전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예고편을 통해 대략의 줄거리를 짐작해 보시죠

(예고편)

이 영화에는 17살 나이의 앳된 신병으로 이다윗이라는 배우가 등장합니다. 극 중 인물을 남성식 이병인데요 변성기도 오지 않은 앳된 목소리로 부대에 배치받았을 때 처음 인사를 하는 신고식에서 '전선야곡'이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고지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구덩이에 파고 묻었던 남북병사들의 편지와 선물 속에 이 노래의 가사를 적어 넣어주기도 했던 이 어린 병사는 고지에 투입돼 무료한 기다림의 시간을 메우려고 고참들이 이 노래를 청해 듣다가 결국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이다윗 의 전선야곡 / 전선야곡 )

영화의 끝 무렵에서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자욱한 안갯속에서 그 안개가 걷히지 말고 계속 피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북한군과 남한군이 능선을 마주하고 함께 부른 노래 또한 바로 이 전선야곡이었습니다.

(전선야곡)

6.25 전쟁 이후 잊고 싶은 그 참혹한 전쟁의 비극을 끊임없이 영화에서 재현해 온 이유는 결코 그런 비극이 이 땅에서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출발하는 것이겠죠

처음에는 단순히 공산주의, 북한의 침략자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반공의식 고취, 애국심 함양 등의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배경을 강조했던 전쟁 영화들이 최근에는 전쟁으로 희생된 개개인의 고뇌와 아픔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또 영화를 만드는 장비와 기술이 발달되고 많은 제작비 투자로 영화의 규모가 훨씬 커지고 최근 개봉된 고지전처럼 관객이 마치 전쟁터에 서 있는 것처럼 현장감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최근 크게 관심을 끌고 있는 3D 기법을 동원한 입체영화로 참혹한 전쟁터의 생생한 모습을 담는다면 그 실감은 몇 배 더 커지겠죠

(Act : 고지전)

남한의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도 북한의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당과 지도자의 보살핌으로 지상 낙원 속에 살고 있다는 선전만이 가득합니다. 북한 당국의 선전 내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데 북한의 특권층과 일반 주민의 격차는 더욱 커진 모습입니다.

이른바 평양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평양에서 소수 특권층만 권력과 부를 독차지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주민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식량난과 물자난으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북한이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행복한 나라라며 내년에 강성대국의 문이 열리는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철천지원수 미국이라고 주민에게 미국에 대해 적개심을 불어넣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과 어떡하든 대화를 해서 쌀이며 물자를 얻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은 북한의 이해할 수 없는 두 얼굴을 보고 있습니다.

태어나 겨우 글을 읽고 쓸 나이가 되기만 하면 총으로 미군을 몇 명 쓰러뜨렸느냐는 식으로 산수를 가르치고 연필을 포탄으로 둔갑시켜 미군 군함을 쳐부수는 만화영화를 만들어내는 북한을 보는 남한 주민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6.25 전쟁이 얼마나 깊고 큰 상처를 우리 민족사에 남겼는지를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 깊이 되새겨 보는 남한 주민에게는 여전히 무력도발을 그치지 않고 불바다 운운하며 위협을 일삼는 북한의 모습은 언제 또 갑자기 위험한 불장난으로 민족을 비극의 구렁텅이로 빠뜨릴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과 평양 사이 제작, 진행에 이장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