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노동신문은 지난 7일 김정일의 패션, 즉 옷차림 감각에 대한 기사를 하나 올렸습니다. 노동신문은 '행성에 굽이치는 위인 칭송의 열풍'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정일이 항상 입고 다니는 잠바가 전 세계에서 유행을 불러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수수한 잠바옷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특유한 유행복이 되고 있다며 익명의 프랑스 패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정일식 유행'은 인류 역사상 그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유행이라고 전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에 따르면, 노동신문이 세계적 유행이라고 주장한 국방색 또는 짙은 회색의 인민복을 지칭하는 '김정일식 복장'은 김정일이 북한에서 정권을 확립한 80년대 초부터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 따라 입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탈북자 주미선(가명) 씨의 말입니다.
주미선
: 우리는(북한은) 많이 단체복을 입잖아요. 남한이나 다른 사회처럼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단체복을 많이 입습니다. 특히 김정일 잠바 차림에 바지를 많이 입고, 그 질이 여기의 커튼천 같은 것을 서민들은 많이 입습니다.
김정일이 지금은 건강 악화로 체중이 줄고 머리도 빠진 상태지만 수년 전까지만 해도 작은 키에 불뚝한 배를 가리는 인민복과 까만 색안경은 북핵 문제로 전 세계에 알려진 ‘김정일’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복장이었습니다. 김정일은 예의를 갖춰야 하는 정상회담이나 국빈을 맞이할 때도 늘 양복대신 잠바를 입은 인민복 복장으로 나타나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이 이처럼 잠바 차림을 고집하는 배경에 대해 김정일의 소박한 성품과 효성심이 작용하고 있다고 선전해 왔습니다. 앞서 노동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이 지난 84년 여름 노동당 중앙위 제 6기 9차 전원회의가 끝난 후 고 김일성 주석에게 자신은 전투복을 입고 성실히 일하겠으니 김 주석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쉬엄쉬엄 일할 것을 당부했다는 것입니다. 또 김정일이 짙은 색안경을 쓰게 된 계기도 밤을 새워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눈이 충혈되었는데 아버지가 이를 보고 마음이 아플까봐 색안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외국의 언론들은 세계적 유행이라는 김정일의 복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주장은 근거없는 선전 보도라고 일축하고 다른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지난 7일자 기사에서 김정일이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항상 부풀린 머리 스타일을 하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다고 보도하면서 김정일의 복장은 신체적 결함을 최대한 숨기기 위한 목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김정일이 북한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 오두막에서 태어날 때 쌍무지개와 가장 빛나는 별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며 북한 사람들은 그가 마법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고 전하며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선전을 비꼬았습니다.
영국의 '더 선'지는 북한 노동신문의 "김정일의 패션 스타일이 세계적인 유행을 예감한다"라는 최근 보도를 전하며, 이 말을 남긴 사람은 '신원 미상의' 프랑스 패션 전문가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더 선'지의 패션 편집장은 "김정일의 옷차림은 유행에 걸맞다"라며 "그의 브라우니단(7-11세까지의 소녀들로 구성되는 걸 스카우트단)과 같은 패션은, 책가방만 하나 더 매면 완성될 것"이라고 풍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언론들도 7일 일제히 김정일의 패션에 대한 북한 관영언론의 보도를 전하면서, 북한이 15일 김일성의 생일을 맞아 김정일 띄우기에 나섰다며 옷차림까지 우상화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인민군 공연단의 일원으로 김정일을 직접 본 적이 있다는 탈북자 정미애(가명)씨는 김정일은 작은 키와 불뚝 나온 배 등 신체적 결함을 감추기 위해 인민복을 선호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정미애
: 정장보다 잠바는 골반 위로 잠바가 걸리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하체가 길어 보이고 키가 커 보입니다. 그리고 김정일이는 배가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잠바 자체가 그것을 가려 줍니다. 왜냐면 잠바의7cm의 단이 단추로 채워져서 항상 그 사람은 그것을 열고 다닙니다.
또 김정일이 인민복을 고집하는 것은 신변안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강철환 공동대표는 앞서 가진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김정일은 독일제 최첨단 방탄조끼를 항상 입고 다니는데 이 방탄조끼를 입으면 자신의 불룩 튀어나온 배와 맞물려 너무 뚱뚱해 보여서 절대 양복을 입을 수 없다고 고위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설명한 바 있습니다.
몇년 전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의 푸른색 낡은 잠바 하나가 중국 대륙을 감동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원 총리가 11년 전 산둥성 야채시장을 찾았을 때 입었던 잠바를 지금까지 입는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2006년 초 중국의 한 인터넷 사용자가 올린 사진 한장에 의해 이 사실이 중국 전역에 알려지면서 원 총리의 검소한 생활에 대한 중국인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원 총리는 지금까지 중국인들 사이에서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남몰래 입은 낡은 잠바 한 벌이 다른 나라에서는 주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반면, 스스로 검소함과 효성때문이라고 자랑하는 김정일의 잠바는 선전 도구로 사용되어 주민들에게 우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