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보내 드리는 '김씨 왕조의 실체'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수경입니다. 오늘은 김정일이 기차만 타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최근 4년만에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의 외교 행보가 내외신 언론을 달구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이번에도 비행기 대신 특별 전용 열차와 승용차를 타고 베이징과 평양 사이를 이동했습니다. 김정일은 1970년대 말 권력을 잡은 이후 국내 시찰과 외국 여행에서 한번도 비행기를 탄 적이 없습니다.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 비서 시절이던 1983년 6월부터 최고 지도자로서 중국을 방문한 2000년 5월과 2001년 1월, 2004년 4월,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06년 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모두 특별 전용 열차를 이용했습니다.
김정일은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도 열차를 탔습니다.
당시 외신들은 김정일이 2001년 7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방문한 일에 대해 '세계기록'감이라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왕복 2만 Km를 넘는 거리를 무려 24일에 거쳐 열차로 오간 김정일의 해외 방문은 전세계 어느 지도자도 그렇게 한 적이 없고 일반인들조차 엄두도 내기 힘든 긴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김정일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 열차 여행만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김정일에게 고소공포증(높은 장소에서 느끼는 공포)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 5일자 기사에서 김정일이 1976년 헬리콥터 추락사고를 당한 후 심한 고소공포증이 생겨 절대로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김정일이 신변 안전때문에 열차만 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김정일은 1987년 대한항공 KAL 858기 폭파 사건을 비롯해 비행기 테러를 직접 지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행기 폭파나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당시 KAL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북한 간첩 김현희는 김정일의 친필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열차는 다른 교통수단과 비교해 안정성이 높다고 알려졌습니다. 철도 주변을 통제하고 차량의 안전만 확보하면 사고의 위험도 적고 경호하기도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호위총국 출신으로 김정일의 경호원 출신인 이영국 씨는 앞서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김정일이 열차 여행을 할때는 시간 간격을 두고 선발 열차와 본 열차, 그리고 후발 열차가 순서대로 출발해 김정일의 이동 방향을 위장하며 역 주변은 삼엄한 경비가 이뤄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영국: 김정일이 북에 있을 때도 계속 열차는 이리 보내고 차는 저리로 타고 가고 김정일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서 비밀이 담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좌로 가면 좌로 경호를 설정하고 그 다음에 유포시키는 것은 오른쪽으로 합니다.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때도 특별열차가 경유한 단둥과 선양 등 역 주변은 삼엄한 경비와 철저한 통제가 이뤄졌습니다. 중국 당국은 김정일의 특별열차가 보이는 주변까지 수십 명의 사복 경찰을 배치하고 일반인의 접근은 물론 사진촬영까지 금지해 김정일의 방중을 취재하던 기자들을 애를 먹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김정일이 열차를 이용하는 것은 최고 지도자급에 걸맞는 전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북한에는 최첨단 기능을 갖춘 최신식 비행기가 없습니다. 북한 유일한 항공사인 고려항공은 약 40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모두 60-70년대 제작한 러시아제 낡은 항공기로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로인해 북한의 항공사는 유럽연합으로부터 역내 취항 금지 제재를 받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최근 러시아로부터 새 항공기 두대를 구입해 지난달 이 두 항공기에 대해서만 유럽연합의 제재가 풀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김정일이 전용기로 사용할 만한 최첨단 비행기는 보유하지 못한 실정입니다.
북한 당국은 한때 김정일의 최신 전용 비행기를 마련하기 위해 남한의 항공사로부터 기증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에서 대북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익명을 전제로 한 남한의 인사는 지난 1월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회견에서 2006년 평양에 상주하면서 북한의 농업발전을 돕는 어느 재미동포 농업전문가(60대 중반, 여)가 자신을 찾아와 “남한의 A항공사에게 비행기 한대를 기증해 줄 수 있는지 여부를 타진해 줄 것을 부탁해왔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인사는 “당시 나를 찾아온 재미동포가 북한의 고위층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왔다며 북한에는 김정일의 전용비행기가 있기는 한데 구형 프로펠라 비행기이기 때문에 사용 할 수가 없고 그래서 새 비행기가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해 김정일의 전용비행기로 사용할 목적임을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이 외에도 김정일이 북한의 안정된 체제를 과시하기 위해 기차를 이용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김정일의 러시아 여행 때 근 한달이나 북한을 비워두면서 제기됐습니다. 당시 외국의 언론들은 김정일이 러시아 하바로프스크까지만 기차를 타고 가면 러시아 항공편을 이용해 하루만에 모스크바에 갈 수 있었는데 굳이 24일에 걸쳐 열차를 이용한 것은 그가 장기간 동안 자리를 비워도 체제 유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김정일은 매우 드물게도 자신이 열차만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외국 언론에 스스로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회견했던 러시아 기자 올라 말리체바는 김정일에게 왜 기차로 여행을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김정일은 “외신들은 나를 고소공포증 환자로 묘사하고 싶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는 내 눈으로 러시아의 장단점을 직접 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고 말리체바 기자는 자신의 수기 ‘김정일과의 왈츠를’에서 소개했습니다.
한편,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특별열차를 같이 타고 김정일을 수행했던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대통령 전권 대표 저서 ‘동방특별열차’에 따르면, 특별열차 안에는 영화 감상을 위한 대형 텔레비전이 있고 응접실에는 노래방 기기도 비치돼 있습니다. 이와 함께 특별열차에는 프랑스 산 고급 와인이 가득 차 있었으며 김정일이 즐겨 먹는 상어 지느러미를 포함한 최고급 음식의 재료는 북한에서 직접 비행기로 조달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의 말대로 비행기를 타지 않고 특별열차를 이용하는 이유가 외국의 정세를 살피고 인민들의 생활을 시찰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왜 그토록 삼엄한 경비 속에서 가장 호화로운 시설을 갖추고 산해진미를 즐기며 여행하는 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