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보내 드리는 ‘김씨 왕조의 실체’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수경입니다. 오늘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 1부부장 리제강의 사망에 대한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북한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유력한 셋째 아들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리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2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한의 관영언론들은 이날 보도에서 리제강 제 1부부장이 교통사고를 당해 2일 0시 45분 80살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리제강이 속해있던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북한의 당•정•군은 물론 사회 조직 전반의 간부 인사를 틀어쥐고 있는 핵심 기구로, 보통 3-4명의 부부장이 부문별로 업무를 분담하고 있으며 부장직은 항상 공석인데 김정일이 직접 권한을 행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리제강은 이같은 핵심 부서에서 37년을 근무했고 김정일의 셋째 아들 김정은의 후계작업에도 깊숙이 관여한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인물입니다.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는 생전에 아들 정철과 정은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리제강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정도로 그의 힘은 막강했다는 설명입니다.
리제강은 고영희가 사망한 후에도 리용철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2010년 4월 사망), 박재경 노동당 부부장 등과 함께 김정은의 후계자로 구축하는 작업을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군내 실권자인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리용철 박재경 등과 함께 정철, 정은 형제를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군부대 내에서 고영희를 `평양 어머니'로 부르게 하는 우상화 작업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이 후 김정일은 자신의 셋째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하기로 결심한 뒤 이같은 교시를 리 제 1부부장에게 직접 내려 보내고 후속작업을 지시했다고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리제강은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숙명의 맞수로 2003년 하반기와 2004년 상반기 사이에 단행된 장성택과 그 측근들의 숙청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뒤 장성택이 다시 2년 만에 복권되면서 리제강과 장성택은 김정일의 후계자 구축을 주도하는 양대 권력자로 당과 군 내부에서 세력을 형성해 왔습니다.
따라서 일부 남한과 외국의 언론들은 이런 요직에 있는 리제강이 심야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80세 고령의 핵심 인사가 밤늦게 혼자 운전을 하다가 한산한 평양의 밤 거리에서 자동차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것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또 앞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가 지난 5월 14일 김일철 국방위원을 '80세'라는 고령을 이유로 전격 해임했는데 공교롭게도 리제강이 사망한 나이가 '80세'라는 점, 그리고 리제강과 함께 고영희 편에 섰던 리용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지난 4월 심장마비로 숨지는 등 리제강의 사망 시기가 묘하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70년대 김창봉 민족보위상이 김정일 세습을 반대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사건을 포함해 북한에서는 고위간부가 김일성 우상화 강화나 후계체제 구축 등 정치권력 변동기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전례가 있었다며 증거는 없지만 리제강 사망도 권력 암투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반면, 권력 암투와 관련한 숙청이나 불미스런 일과 연계된 관리들의 인사에 대해서는 일절 보도하지 않는 북한 매체들의 관행에 비춰볼 때 이번 리제강의 사망은 교통사고가 맞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남한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원의 말입니다.
정성장
: 만약 리제강이 권력 암투로 사망했다면, 북한에서 그의 사망을 곧바로 보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리제강은 저녁 파티에 참석했다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다가 사고가 난 일반적인 교통사고일 가능성이 큽니다.
정 수석연구원은 과거에도 북한의 최고위층 인사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일은 심심치 않게 발생해 왔다며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습니다.
실제로 1987년 당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김정일의 비밀파티에 참석한 뒤 만취한 상태에서 벤츠 승용차를 몰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다 가로등을 들이받고 죽다 살아난 사고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강원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리철봉이 지난해 12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2003년 6월에는 김용순 노동당 대남비서가 음주운전 사고로 그해 10월 사망했습니다. 장성택 행정부장도 2006년 9월 평양에서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쳤다고 알려졌습니다.
리제강의 사망을 둘러싼 여러 주장들은 철저하기 폐쇄돼 있는 북한 정권의 특성상 당장 의혹이 해소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러나 리제강의 사망으로 앞으로 벌어질 북한 권력 구도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리제강의 사망으로 그동안 그의 편에 섰던 측근들은 세력을 점차 잃어가고 반면 숙적 장성택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더욱이 김정일이 최근 건강 문제로 친인척인 장성택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리제강까지 사망함으로 앞으로 김정일의 후계자 구축과 관련해 장성택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