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왕조의 실체] 김정일의 숨바꼭질

0:00 / 0:00

매주 보내 드리는 '김씨 왕조의 실체'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수경입니다. 오늘은 숨바꼭질을 즐기는 김정일의 외교행보에 대한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올초부터 김정일의 중국 방문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4월 방중설의 시기가 좀더 구체화되면서 중국과 남한, 일본의 기자들이 국경 지역에 몰려들어 취재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김정일이 과거 방중 통로로 이용했던 압록강 철교 주변의 호텔들은 요즘 기자들로 북적거려 빈방이 없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김정일의 방중 임박설이 나도는 가운데 한국의 한 언론은 지난 3일 새벽 북한 열차가 단둥에 도착했으며 평소와는 다르게 새벽 시간대에 운행됐다는 점에서 이 열차에 김정일이 탑승했을 것이란 보도를 긴급 타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단둥에 도착한 북한 열차는 김정일이 탄 특별 열차가 아니라 화물 열차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이날 보도를 인용한 전세계의 언론들이 모두 오보를 내보낸 웃지못할 일도 발생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3일 저녁 신임 주 북한 중국 대사를 환영하는 연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함으로써 그가 이날 방중하지 않았음을 시사했습니다.

4월 초가 유력해 보였던 북한 김정일의 방중이 결국 현실화되지 않자 언론들은 김정일의 방중 시점을 점치는 여러가지 추측들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생일인 15일 이후에 방중할 것이다', '북한의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오늘 전격 방중할 수도 있다', '무기한 연기될 것이다', '김정일이 3일밤 연회에 참석했다는 정보는 국제사회의 관측과 예상의 허를 찌르기 위한 역정보로 현재 중국에 머무르고 있을 수도 있다' 등 엇갈린 관측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오리무중에 빠진 김정일의 방중을 파악하느라 국제 외교가와 언론들이 분주한 이유는 김정일의 외교 행보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서방의 지도자들은 해외 순방에 나서기에 앞서 공식적으로 일정을 발표하고 주요 안건도 공개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입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해외 방문길에 오르면서 무슨 첩보 영화를 찍는 것처럼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꽁꽁 장막에 가려져 있습니다. 김정일이 해외 일정을 모두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온 이후에야 그가 어디를 방문했다더라 이렇게 간단한 한 줄 보도와 사진 한장이 공개되는 게 전부입니다. 이 때문에 김정일이 순방길에 오르면 그의 행적을 추적하느라 애꿎은 기자들만 애를 먹습니다.

전직 김정일 경호원 출신으로 지난 2000년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이영국씨는 자신의 수기 "나는 김정일의 경호원이였다"를 통해, 김정일의 모든 행보는 철저한 보안에 부쳐지고 있고 동선이 노출됐다고 판단되면 행보가 취소되거나 변경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이씨는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전화 회견에서 이처럼 김정일이 비밀리에 움직이는 이유는 자신의 신변 안전에 최우선을 두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영국

: 북에서 경호 사업 원칙이 비밀과 노출이 안 되는 것이 첫째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자기 신변에 대해 엄청나게 예민한 사람인데 자기를 방어하는 것이 첫째이거든요. 한마디로 김정일의 행보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해도 모르는 상당히 힘든 인물입니다.

김정일은2001년 특급 열차를 이용해 러시아 방문했을 때도 철통같은 경비로 러시아 열차 승객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2006년 초 중국 방문 때는 북한과 중국 두 나라가 김정일의 중국 방문의 시점을 비밀로 하기 위해 김정일이 평소 외국여행에 이용하는 전용 열차를 먼저 출발시키기는 등 보안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당시에도 세계 언론들과 각국 대사관은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파악하느라 큰 혼란을 겪은 바 있습니다.

김정일의 이같은 특급 경호작전은 국내 현지 지도를 갈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일의 경호원 출신 탈북자 이영국 씨는 김정일은 자동차로 이동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열차로 이동 한다면서, 열차로 이동 시에는 행사 열차의 앞뒤로 선발 열차와 후발 열차를 함께 출발시킨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중에서 어느 것이 김정일이 탄 열차인지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입니다.

이와 함께 김정일이 출발지에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북한 철도는 전 구간의 전원을 끄고 모든 열차의 운행을 정지 시키는데, 이 때문에 열차를 기다리던 북한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6-8시간동안 발이 묶여 있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그는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연구기관인 해군분석센터(CNA)연구소의 켄 고스 해외지도자 연구이사는 김정일이 철저하게 외부 노출을 꺼리며 비밀스런 정치 활동을 펼치는 것은 그가 신비화된 지도자로 인식되기를 갈망하고, 또 신처럼 여겨지기를 원하는 이유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KEN GAUSE

: 이같은 김정일의 정치 행동은 김정일이 북한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왜냐면 김정일은 신비화된 존재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모든 불만과 원성이 김정일에게 직접 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고스 국장은 이같은 김정일의 성향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김정일은 이해하기 힘들고 예상할 수 없는 지도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투명한 서방세계의 지도자와는 달리,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김정일은 국제 무대에서 신뢰도가 낮고 협상하기 힘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