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북한-52] 제임스 호어 (James Hoare) 전 북한주재 영국 대사 "북한, 현재의 국가체제론 지속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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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영국의 외교관인 제임스 호어 전 북한주재 대리대사(Charge d'affaires)로부터 북한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해 들어봅니다. 1969년 외무성에 들어간 호어 전 대사는 1981년부터 84년까지 한국 주재 영국대사관에서 근무했고, 이어 1988년부터 91년까지는 중국 주재 영국대사관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2001년 1월 평양 주재 초대 대리대사로 파견되기 직전까지 영국 외무성 본부의 북아시아태평양연구단(North Asia and Pacific Research Group) 단장을 지냈습니다. 호어 전 대사는 외무성에서 1970년대 이후 간헐적으로 북한 문제를 다룬 적이 있고, 1998년 유럽연합 대표단 일원으로 처음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호어 전 대사는 2005년에는 <21세기의 북한(North Korea in the 21st Century)를 펴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호어 전 대사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지금은 철저히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상태이지만 자신이 북한에서 근무하던 시절인 2001년부터 2002년 초까지도 북한의 대외 상황은 그런대로 좋았다고 술회합니다.

Amb. Hoare

: The circumstances were very different in 2001. There was on the North Korean side, it seemed to have a more positive view of the outside world...

“2001년 당시의 상황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북한에선 외부세계에 관해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북한은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는 데 열심이었고, 영국이 외교관계를 맺자고 하자 이를 반겼다. 북한은 특히 영국이 서울이나 베이징에 대리 대사관이 아니라 평양에 상주 대사관을 개설하겠다고 하자 반가워했다. 그래서 우리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영국이 당시 북한에 대사관을 개설하기로 결정한 데는 남한 정부가 더 많은 나라들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걸 지지하는 햇볕정책을 펼치는 등 고무적인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호어 전 대사의 말대로 당시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을 포용하는 ‘햇볕정책’을 펼쳤고, 호어 전 대사가 평양에 부임하기 6개월 전인 2000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또 미국에선 클린턴 행정부가 말기에 접어들면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그해 8월 평양을 방문했고, 뒤이어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2000년 10월 워싱턴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 등 북한과 미국의 관계도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기조는 북한이 비밀리에 농축 우라늄 핵계획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2002년 10월 들통 나면서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습니다. 호어 전 영국 대사도 자신이 근무하던 시절 괜찮았던 북한의 대외상황이 나빠진 결정적인 원인이 핵문제였다고 말합니다.

Amb. Hoare

: The nuclear issue was probably the biggest problem at the time. There was a two-sided thing. On the one hand there was US suspicion about...

“아무래도 핵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이 문제는 양면성이 있는데 미국에선 북한의 핵 활동에 관한 의구심이 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도 경수로 문제와 관련해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북한은 2002년 8월까지 금호지구의 경수로 부지에 편의 시설이 들어서고 있었지만 정작 경수로 건설엔 별다른 진전이 없는 데 대해 불평을 하던 상황이었고, 감정도 상하던 때였다. 그 해 가을 결국 미국의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일행이 방문하면서 농축 우라늄 핵문제와 관련한 마찰이 빚어졌다”

북한은 켈리 대표단에 처음엔 농축 우라늄 핵 활동 사실을 시인하다 곧바로 부인해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최근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유명한 핵과학자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에게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공개함으로써 2002년 10월 당시 켈리 대표단의 지적이 옳았음을 반증했습니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2001년까지도 미국과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호기를 맞이했지만 결국 핵개발 문제 때문에 스스로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입니다. 호어 전 대사도 “북한은 최소한 1970년대 이후부터 미국과 어떤 식으로든 외교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미국을 설득하지 못했다”면서 핵문제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핵개발로 인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주민들에게 생필품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실패한 국가로 전락한 것과 관련해 호어 전 대사는 그 원인을 북한 정권과 체제 모두에서 찾았습니다.

Amb. Hoare

: Well, I think it's the regime, it's the system. They attempt to control the world as Marxist-Leninist doctrine did indeed. It has proved not very successful...

“북한 정권이자 체제 때문이라고 본다. 북한은 마르크시즘과 레닌주의 강령에 따라 세계를 통제하려고 해보지만 이런 시도는 어디에서도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성공한 사회주의 나라도 마르크시즘-레닌주의가 설파한 경제원칙을 더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두 나라는 자본주의 경제를 채택하고 있다. 북한 경제체제는 필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과고 한 때 북한 경제가 작동한 적도 있는데 그건 외부세계, 즉 구소련과 중국, 동유럽의 지원 덕택 때문이었다. 북한은 이런 지원 덕에 경제가 굴러간다는 사실을 참작하기 보다는 자기들이 잘 해서 그렇게 됐다는 환상에 빠졌다. 결국 북한의 경제 체제가 잘 못된 것이다. 북한은 또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 경직된 방식을 취했는데 공산체제와 마르크스주의, 주체사상 같은 이념을 믿으면서도 변경을 시도하지 않았다."

호어 전 대사는 북한이 2002년 소위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취한 것이나 국가배급체제를 사실상 포기한 게 북한 경제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반증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Amb. Hoare

: My impression was in 2002 when they announced economic changes, they had come to accept that their system wasn't working properly...

“북한이 2002년 경제 개선책을 발표했을 때 내가 받은 인상은 북한도 자신들의 경제체제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됐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북한은 그런 체제를 작동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측면에서 북한은 기존의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취해야 했다. 대신 북한은 임금과 함께 물가도 올렸다. 북한 주민들은 처음엔 행복감에 젖기도 했지만 곧이어 이런 개선책이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구경제 체제는 절단났다고 본다. 수도 평양과 인근 지역처럼 북한 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경제 지역 외에 말이다. 이런 곳은 그런대로 배급체제가 작동하지만 다른 곳에선 주민들이 장마당에 의존하기 때문에 더 이상 먹고사는 문제로 국가를 바라보지 않는다.”

호어 전 대사는 자신이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의 고문이라면 “현재의 북한 체제론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을 깨우쳐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호어 전 대사는 근래 북한에서 남한의 유행가나 TV 연속극이 담긴 동영상 DVD가 몰래 유포되는 등 변화가 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결국 북한의 가장 큰 위협은 이런 변화 못지 않게 잘 사는 이웃 남한이란 존재라고 지적합니다. 즉 북한 경제가 엉망이고 결국 주민들이 대안을 찾기 시작할 때 결국은 자본주의국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자랑하는 남한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Amb. Hoare

: Part of their trouble is the existence of South Korea. It means they can see what an alternative there is. The existence of Chang Kaiseok on Taiwan was...

“북한 문제의 일부는 남한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북한은 잘 못되면 대안이 있다는 것 알게 된다. 과거 장개석이 이끄는 대만은 1970년대까지도 중국에겐 별로 대안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에게 남한은 정말로 문제가 된다. 남한의 훨씬 큰 인구 규모도 그렇고 거대한 경제력도 그렇다. 북한이 늘 걱정하는 것은 이거다. 즉 만일 변화를 시작하면 결국 예전처럼 경제적으로 통일 한국을 원하는 소리가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남한이란 이웃이 북한 주민들이 매력을 느끼고 그래서 북한에서 일이 잘못되면 모두 남쪽으로 갈까봐 두려워한다.”

호어 전 대사는 포용정책의 대안은 대결과 충돌뿐이기 때문에 결국 북한을 바뀌게 하려면 접촉하고 교류하는 길이 최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북한의 젊은 세대들도 북한의 체제에 좌절감을 느낄 것”이라면서 “북한 외교관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도 북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기들 힘으론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호어 전 대사는 “만일 우리가 이들에게 어떤 지식을 제공하면 그런 지식을 지도부에 전달할 것”이라면서 “결국은 지속적인 교류와 포용만이 북한의 생각과 태도를 바뀌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은 제임스 호어 전 북한주재 영국 대사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