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냉전 시절 미국 측 군비축소 협상 대표를 지낸 바 있는 제임스 굿비(James Goodby) 전 핀란드 주재 대사가 보는 북한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해 들어봅니다. 굿비 전 대사는 오랜 공직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미국의 권위있는 싱크탱크, 즉 두뇌집안으로 꼽히는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e)의 선임 연구원으로 북한 핵문제를 포함해 주로 한반도 안보 문제를 집중 연구하고 있습니다. 굿비 전 대사는 군축협상 전문가답게 2007년엔 미국과 구소련간의 전략핵감축 문제를 다룬 <다시 가본 레이캬비크(Revisited Reykjavik)>이란 저서를 비롯해 역대 미국 대통령의 핵정책을 다른 <아마겟돈의 경계선(At the Borderline of Armageddon)>, 핵무기의 위중함을 경고한 <가장 중대한 위험(The Gravest Danger)>, 유럽의 안보협력 문제를 다룬 <안정적 평화전략 (Strategy for Stable Peace)> 등 여러 권의 저서를 갖고 있습니다.

굿비 전 대사는 현재 미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들의 최대 외교 현안인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일단 핵무기를 개발한 이상 포기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굿비 전 대사는 북한이 아주 오래 전부터 핵개발 야욕을 품고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Amb. Goodby
: It means a great deal to North Korea, and the history of it goes way back into the period just after The Korean War, 1953..
“핵은 북한에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북한의 핵 역사는 한국전 직후인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일성은 핵개발 문제를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래서 1950년대부터 이미 연구 프로그램을 시작해 적어도 1960년대 들어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 이걸 보면 북한이 핵 능력을 개발하는 데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핵 프로그램은 두 가지 용도가 있는 데 하나는 전력발전을 위한 민수용이고, 다른 하나는 이 범위를 넘어 군사용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짐작컨대 김일성은 두 가지 가능성을 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건 하나 씩 차근차근해야 해야 한다. 우선 핵 프로그램을 위한 생산 기반을 건설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북한은 구소련의 도움을 받아 천연 우라늄을 이용해 유럽형 모델을 본 따 흑연감속로를 지었다. 그로부터 북한은 마침내 2번의 핵실험까지 이어진 군사용 핵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걸 보면 북한이 단순히 에너지 안보 뿐 아니라 대외 억지력도 염두에 두고 핵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굿비 전 대사의 지적대로 북한은 이미 1960년대 들어서 구소련과의 과학협력협정에 따라 영변에 핵연구 시설에 착수해 1965년 구소련형 2메가와트용 원자로를 건설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 규모가 큰 5메가와트용 원자로를 건설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연구용 원자로로 시작하긴 했어도 김일성이 처음부터 군사용 핵개발에 관심이 있었을 것으로 굿비 전 대사는 설명합니다.
Amb. Goodby
: I think they had military purposes in mind from the very beginning. There're archives now that can be read, and there're documents in east European...
“저는 북한이 처음부터 군사용 핵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본다. 지금은 관련 문서도 읽어볼 수 있고, 과거 동유럽국이 갖고 있던 외교 문건도 요즘 공개되고 있는데 그걸 보면 김일성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존재에 대해 다소 불쾌감을 나타냈다는 구절이 있다. 이 조약에 따르면 어떤 국가는 핵무기를 가질 수 있지만 다른 나라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미 그 당시부터 핵을 개발하고 싶은 성향이 있었다고 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이런 핵 야욕은 1980년대 들어서 본격화됩니다. 북한은 200메가와트에 달하는 거대한 핵시설과 부대시설을 영변과 태천에 짓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핵개발에 착수했다는 구체적인 단서를 1985년 입수했고, 이에 따라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핵확산금지조약은 서명하면서도 국제원자력기구와 핵안전협정을 한사코 거부하다 무려 7년 뒤인 1992년에 들어서야 국제원자력기구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용 핵개발을 의심한 국제원자력기구가 특별 핵사찰을 요구하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1993년부터 북한과 국제사회의 마찰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핵사찰 요구를 거부하면서 1994년 봄엔 미국과 북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한반도에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그해 10월 제네바 협정이 타결되면서 일단 핵 위기는 해소됐습니다. 당시 제네바 협정을 통해 북한은 기존의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경수로를 제공받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굿비 전 대사는 북한이 당시 민수용 핵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농축 우라늄 핵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해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Amb. Goodby
: But what we have to bear in mind now is that what we did not know, although we suspected, at the time was there was a parallel program...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이거다. 즉 우리가 당시 의심은 가도 파악하지 못한 게 바로 북한이 병행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북한은 두 개의 핵 정책을 갖고 있던 셈이다. 하나는 아주 분명한데 그건 영변의 플루토늄 핵시설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철저히 비밀리에 추진한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으로 미국도 지적한 바 있다. 북한은 아마도 파키스탄의 핵과학자인 A. Q. 칸의 지원을 받아 구축했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전 무샤라프 대통령의 회고록을 보면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파키스탄 지도부가 묵인한 가운데 북한에 제공됐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런 원심분리기를 어디서 얻었던 간에 북한은 이미 외부세계에 공개했듯이 오늘날 대규모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갖고 있다. 물론 우라늄을 살짝 농축하면 민수용으로도 활용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우라늄을 일정 수준 이상 농축하면 고농축 우라늄이 돼 핵무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고, 바로 이런 고농축 우라늄으로 간단한 핵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미국과 핵협상이 한창이던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일행으로부터 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의 추궁을 받자 처음엔 이를 시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 곧바로 부인했습니다. 북한은 전임 부시 미국 행정부와 핵협상을 하는 내내 우라늄 농축 핵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12월 미국의 핵과학자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에게 영변 핵 단지 안에 현대식 농축 우라늄 시설을 공개함으로써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은 없다’는 그간의 주장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한편으론 핵협상을 벌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거짓말을 해온 북한과 미국이 과연 핵협상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굿비 전 대사는 “북한과 핵협상을 하는 게 지난한 과제”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북한 핵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결국은 협상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고 말합니다.
Amb. Goodby
: It's obviously difficult, and one's tempted to say, "Let's not talk any further with people who can't tell us the whole nuclear program..."
“북한과 핵협상을 하는 건 분명 어렵고, 그래서 핵 계획의 전모를 밝히지 않는 한 북한과 상대하지 않고 싶은 유혹도 있다. 그러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말한 대로 리얼폴리티크(Realpolik), 즉 현실 정책의 입장에서 북한을 들여다보면 이런 문제에 감정이 앞서선 안 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무력 사용을 배제한다면 남은 건 두 가지 방안뿐이다. 하나는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지만 실제론 이런 게 잘 먹히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과의 국경 지역에 안정을 바라고 있고, 그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나는 북한이 핵 계획을 포기할 정도로 중국이 충분히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으론 보지 않는다. 고립 정책도 효과가 없다면 다른 유일한 방안은 북한에 대해 개입하는 일이다. 비록 개입 정책(engagement)이 불편하고 불유쾌하지만, 그게 유일한 방도다.”
굿비 전 대사는 과거 남아공화국이나 리비아처럼 핵을 가지려다 포기한 나라들이 있다는 선례를 들어 북한에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특히 “북한에 새 지도자가 나서서 경제 개선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고, 북한의 안보 상황에 대한 충분한 조치가 이뤄지면 핵 문제는 타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굿비 전 대사는 현재 정전상태에 있는 한국 전쟁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보다 큰 틀 속에서 북한 핵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선 제임스 굿비 전 미국 대사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