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선 존 에버라드(John Everard) 전 북한주재 영국대사의 견해를 들어보겠습니다. 정통 외교관 출신인 에버라드 전 대사는 지난 2006년부터 2008까지 약 2년 반 동안 북한 주재 대사로 있으면서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변화들을 몸소 겪은 산증인입니다. 그의 눈에 비친 북한은 당시 평양 곳곳에 커피점이라든가 북한에선 '고기 겹빵'이라고 하는 햄버거 가게, 그리고 근사한 음식점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등 활기찬 변화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일기 시작한 변화가 과연 어디까지 온 것일까요? 올해 벽두부터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이집트를 비롯해 여러 중동 국가에서는 반정부, 민주화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튀니지에선 벤 알리 전 대통령이 24년 만에 독재권좌에서 물러났고, 이집트에선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30년 철권통치를 뒤로하고 대통령 직에서 사임했습니다. 또 리비아에서도 카다피 국가원수의 장기 집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시위가 연일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반정부, 민주화의 무풍지대라고 하던 중동에서 이런 초유의 시위사태를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고 또 이런 소식이 북한엔 어떤 영향을 줄지도 궁금합니다. 하지만 에버라드 전 대사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촉발한 이집트 사태와 같은 현상이 북한에서도 재현될 가능성과 관련해,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당장은 현실적으론 힘들 것 같다고 말합니다.
Amb. John Everard
: The two societies are very, very different, and although the possibility exists of eventual popular uprising to change the regime...
“북한과 이집트 사회는 너무도 서로 다르다. 물론 북한에서도 궁극적으론 민중 봉기가 일어나 북한 정권을 바꾸려는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집트나 리비아 같은 양상을 띠진 않을 것 같다. 두 사회의 차이점 때문이다. 우선 이집트 사람들은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보다 자유롭게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북한에도 외부 정보가 들어가긴 하지만 수많은 텔레비전과 휴대폰을 난무하는 이집트와는 비교가 안 된다. 다음으론 북한이 아주 공동체적인 사회라는 점이다. 이런 사회에 사는 북한 주민들은 무얼 할지를 놓고 지도자들을 바라본다. 바로 이런 특징이 향후 북한의 정치변화의 모습과 관련해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즉 광범위한 북한 주민들이 지도부에 대한 충성심을 저버리길 꺼려하겠지만, 만일 북한 정부가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고 대안이 존재한다는 게 명백해지면 북한 주민들은 전 세계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빨리 행동에 나설 것 같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북한 주민들이 지금이야 잠자코 있지만 앞으로 반정부 시위를 할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이 마련되면 그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는 게 에버라드 전 대사의 견해입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최근의 중동 민주화 사태에 관해 그나마 반응을 보일 북한 사람들은 평양에살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할만한 ‘한담층’(chattering class)이라고 말합니다. 중동사태를 접한 이들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Amb. Everard
: What they will be thinking, and I'm guessing here because I haven't been able to talk to anybody, is doubtlessly if one dictator is overthrown...
“저 자신 누구와 얘기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추측해 보건데 그들은 만일 어느 한 독재자가 거꾸러지면 다른 독재자도 그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러나 과연 정권을 교체할 만한 조직이 있느냐 하면 잘 모르겠다. 북한에 관해 이런 식의 판단을 한다는 게 아주 어렵다. 북한에서 정권을 교체하려던 시도가 있었다는 걸 우리가 절대 확신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건은 1956년에 일어났다. 당시 일단의 반 김일성 세력이 당 대회에서 김일성을 망신주고 전복하려다 실패했다. 그나마 이 사건을 알 수 있었던 건 음모자들이 북한 주재 소련대사관에 가서 자신들의 계획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던들 이 사건은 외부 세계가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 때문에 북한에서 설령 정권에 대한 적극적이고 잘 조율된 저항이 있더라도 조직원들이 외부 세계에 알리지 않는다면 이런 움직임을 파악할 가능성은 아주 적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근래 남한의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남한 인기가요, 남한 물건을 접하면서 점점 남한의 부유함에 관해 알아가는 사람들이 북한에서 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다수 주민에 비해 생활이 넉넉한 평양 시민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북한 정권도 핵심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문제는 남한을 더 알면 알수록 기대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열망을 충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Amb. Everad
: I think that a class is growing who knows now the South is a great deal richer, a great deal more sophisticated...
“남한이 훨씬 더 부유하고 발전된 나라라고 생각하는 북한 주민층이 점점 늘고 있다. 또 이런 주민층은 남한이 제공하게 될 혜택을 맛보고 싶어 한다. 바로 이런 점이 북한 정권에겐 큰 도전이다. 이들 대다수는 평양에 사는데 북한 정권이 이들의 열망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 정권이 늘 달래야 하는 계층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이 정권에 도전할만한 힘은 없다. 평양도 변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평양에 커피점도 있고, 음식점도 있는데 모두 이들을 달래려는 결과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지는 경기를 하고 있다. 남한에 대해 이들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북한 정권이 제공하는 수준 이상으로 이들의 기대 수준도 올라 갈 것이기 때문이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평양 시민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 비해 훨씬 잘 살고 있다면서 북한에서 빈부 격차가 상당히 크다고 말합니다. 그는 특히 “평양에 있는 엘리트층과 지방의 당 간부와 대다수 북한 주민들 간에도 외부 정보에 접할 수 있는 데서도 큰 차이가 있다”면서도 “많은 주민들도 외부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에 대해 알기 시작하고 있지만 정작 엘리트층이 어떤 조건에서 사는지에 관해선 제대로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이어 평양 시민들이 다른 지역의 주민들보다 더 잘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구식 기준에 비하면 여전히 가난한 편”이라고 말합니다. 즉 일부 잘 사는 사람들은 호사스런 가구에 전자제품 등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평양의 대다수 시민들은 2~3개 방이 딸린 소박한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서구식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부자는 아니라는 겁니다.
문제는 가난한 일반 주민이건 이들보다 혜택을 받은 주민이건 과연 이들이 북한 정권에 반기를 들 수 있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북한이 과거에도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반란도 있었지만 성공한 적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북한에 반정부 운동이 벌어질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는 게 에버라드 전 대사의 관측입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주민들에 대한 북한 정권의 통제력이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Amb. Everard
: The regime has been losing its ideological grip on its people during the great famine, and ever since it...
“북한 정부는 대기근 이후 주민들에 대한 이념적 통제력을 잃어왔다. 이들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굶어죽는 걸 보면서 더 이상 사회주의 낙원에 살고 있다고 믿기가 아주 어려웠다. 게다가 외부 세계의 정보가 흘러들면서 정권에 위협을 가했고, 덩달아 이념적 통제력도 약화됐다. 오늘날 북한은 전통적인 제3세계의 억압적 독재정권과 흡사하다. 사실 대기근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북한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정부의 말을 믿었는데 대기근이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다.”
미국의 유명한 민간연구기관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란드 부소장은 북한 주민들 가운데 외부세계에 관한 지식이 널리 퍼지면서 정권에 대한 불만을 품는 ‘반체제’(dissent)층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도 이 같은 지적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이런 불만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지에 관해선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습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또 자신은 “놀란드 부소장이 지적한 불만층을 ‘반제체 집단’이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김정일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고 있다는 식으로 달리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이런 불만층은 “김정일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려는 ‘적극적인 반동세력’과도 거리가 멀다”고 에버라드 전 대사는 말했습니다.
주간기획<내가 보는 북한> 오늘은 존 에버라드 전 북한 주재 영국대사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