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도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John Everard) 전 대사가 보는 북한의 경제개혁과 그에 따른 문제점에 관해 들어봅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북한 주재 대사직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한 뒤 그간 북한 문제에 관해 영국의 BBC 방송과 미국의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언론에 의견을 개진해왔고, 현재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 부설 아시아태평양문제연구소(APARC) 객원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북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거덜이 난 경제를 살리고 주민들의 궁핍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선 경제 개혁과 대외 개방이 필수적이지만 '개방, 개혁은 김정일 정권의 패망'을 자초할 것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단정합니다. 그런 에버라드 전 대사는 자신이 근무하던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개혁의 기운을 다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구에서 볼 수 있는 정통 시장 경제는 아니지만 평양 여기저기에서 초보적 형태의 시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장에선 당국의 승인 아래 식품은 물론 다양한 물건이 팔렸습니다. 그가 더욱 놀란 것은 북한 당국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식품 등을 팔던 '개구리 장마당'이었습니다. 개구리 장마당이란 당국의 단속이 시작되면 언제든 개구리처럼 이리저리 피해 갈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런 시장들은 존 에버라드 전 대사에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북한처럼 경직된 사회주의 체계 속에서 서구식의 진정한 시장이 존재할 자리는 없다고 믿습니다. 이런 시장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북한 정부에겐 크나큰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Amb. Everard
: The North Korean regime cannot reform. I think we need to be quite...
“북한 정권은 개혁할 수 없다. 이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건 단순히 그런 변화의 압력에 대응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개혁이 어떤 형태가 됐건 이는 주체 혁명의 정당성을 앗아버릴 것이기 때문에 북한을 지배하는 원로들이 배격할 것이다. 개혁은 북한 정권에겐 ‘정치적 자살 행위’와 같다. 만일 북한이 별로 생산성도 떨어지고 효율성도 없는 제2의 남한과 같은 나라로 전락한다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될 바에야 훨씬 더 발전한 남한에 통합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북한 정권도 이를 알기 때문에 개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평양 사람들도 남한 사정을 점점 더 많이 안다. 즉 지난 몇 십 년 동안 들어온 것과 달리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또 이들은 남한의 가요도 알고 있다. 이게 다 북한 정권에겐 위협이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북한 경제가 이처럼 엉망이 된 데는 실패한 사회주의 경제 체제 말고도 부족한 국가자원을 경제 발전이 아닌 군사 부문에 치중한 일도 꼽았습니다. 가뜩이나 부족한 국고의 4분의 1을 군사 부문에 할애하는 건 경제를 전적으로 무시한 처라는 겁니다.
Amb. Everard
: I think the large part of the answer is the diversion of huge amount...
“제가 볼 때 아주 부족한 국가의 자원 대부분을 우선은 외양만 번드르한 사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이를 테면 평양 남쪽에는 아주 으리으리한 선수촌이 있는데 상당히 돈이 많이 들어간 사업이다. 다른 하나는 군사 부문이다.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집중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군인들을 먹여 살리고 무기를 사들이다보니 거대한 국가자원이 낭비된다. 게다가 일반 민간경제에 필요한 노동력까지 잠식하면서 젊은이들이 인생의 가장 힘 있는 시절을 생산현장이 아닌 군에서 보낸다. 그래서 추수철만 되면 이들이 추수 현장에 동원되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거대한 군비지출이 사회주의 제도의 실패 못지않게 문제라고 본다.”
여기서 에버라드 전 대사가 지적한 ‘으리으리한 체육촌’이란 평양 청년거리의 ‘안골 체육촌’을 말합니다. 이곳은 북한 정부가 1989년 제13차 세계 청년축전을 준비하기 위해 건립한 대규모 종합 체육관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만년대계의 민족적 재부’라며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탈북자들에 따르면 ‘안골 체육촌’은 북한 국가 대표선수들이 종종 이용하기는 하지만 주로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전물이란 성격이 강하다고 합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북한이 현재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있어 앞으로도 북한 군부가 부족한 국가 자원을 엄청 흡수할 것”이라면서 그 때문이라도 북한 정부가 인민 경제와 직결돼 있는 분야로 국가자원을 돌릴 것 같지 않다고 진단합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경제가 거덜난 북한이 그나마 살 수 있는 길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경제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문제는 이 길이 북한 정권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추진이 힘들다는 게 에버라드 전 대사의 지적입니다. 또 설령 개혁을 해도 기껏해야 남한의 아류로 전락하기 때문에 더욱 개혁이 힘드다는 겁니다.
Amb. Everard
: Because if they make a market style transformation, they simply...
“북한이 시장개혁을 할 경우 남한보다 한참 떨어지는 아류국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북한 정부는 남한과 되도록 차별화하면 하고 동시에 강력한 민족주의에 호소해야 그나마 주민들에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만일 북한이 가난한 남한과 같은 나라로 전락하고, 정통성을 잃어버린다면 북한 정권도 무너질 것이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한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혁은 폐망의 길이며, 따라서 북한은 개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 한 적이 있음을 상기시키고, “아직 김 위원장이 그런 마음을 바꿨다고 보진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과거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상하이와 심천 등 개혁, 개방의 상징 도시들을 방문한 전례가 있어 혹시 중국 식 개혁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버라드 전 대사는 북한 지도부가 전통적으로 중국의 말을 경청하긴 해도 실제로 받아들인 선례는 별로 없다면서 개혁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Amb. Everard
: Of course, he visited these places. He needs to keep the Chinese...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의 개방 도시들을 방문한 게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중국을 계속 달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중국이 벌이는 일에 관심이 있다는 인상을 줄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개혁하라는 중국의 권고를 오랜 세월 조용히 경청하면서도, 그런 뒤엔 권고를 무시하는 습관이 있다. 1984년 중국이 대외 개방을 했을 때 중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걸 해볼 것을 권했다. 그래서 김일성은 당시 마음이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일부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1987년 개혁파인 호요방이 실권하자 북한은 곧바로 종전의 비개혁 노선으로 되돌아갔다. 따라서 북한이 상징적이나마 개혁 제스처를 할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북한을 강제해서 경제 개혁과 개방을 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에버라드 전 대사는 “중국도 여러 해 동안 북한이 경제개혁을 하도록 무진 애를 쓴 것 같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어 중국은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훌륭한 대화 통로를 갖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북한이 중국의 말을 제대로 듣는 법이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합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특히 “중국이 북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한다고 해서 북한이 듣는 건 아니다”면서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엔 분명 제한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정권 생존을 위해 가장 긴밀한 우방인 중국의 권고조차 외면하고 있지만, 에버라드 전 대사는 결국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로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사회주의 경체체제 말고도 이런 체재를 고수하고 있는 원로 지도자들을 꼽았습니다.
Amb. Everard
: North Korea is run by very old men who probably really don't...
“북한은 현대 경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모르는 원로들이 지배한다. 따라서 이들은 만일 태도를 바꿔 시장경제를 허용하면 자신들의 모든 권력과 특권이 불가피하게 잠식당하고, 생활수준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북한은 하나의 민족이라든가 주체, 혹은 자급자족과 같은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이런 북한의 제도 안에 개혁의 요구가 높아져도 그걸 주장하는 사람들은 원로들에 의해 배척된다. 북한이 과거 경제 개혁은 시도한 적은 없지만 경제적 변화는 시도해본 적이 있다. 그게 한번은 2002년이고, 다른 한번은 2009년이다. 두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났다. 특히 2009년의 화폐 개혁이 대실패였다. 우리가 알기로 그걸 주창한 사람이 공개 처형됐다. 이런 사회적 배경을 이해한다는 게 아주 힘든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김정일 정권 안에서 어느 누가 개혁을 서두르려 할지 상상이 안 간다.”
그러면서 에버라드 전 대사는 설령 자신이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의 경제 고문이라 해도 “북한의 경제체제가 변하지 않는 한 희망이 없다”면서 “개혁을 권고하기 보다는 차라리 망명하겠다”며 현재의 북한 경제체제에 절망감을 표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