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도 일본에서 발행되는 북한 내부에 관한 소식지인 <림진강>의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 편집장 겸 발행인에게서 정권의 통제 약화와 경제난에 빠져 있는 북한의 실상에 관해 들어봅니다. 이시마루 편집장은 1993년 여름 처음으로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를 취재하다가 탈북자들을 만나서 들은 얘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북한 내부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이 만난 탈북자들로부터 북한의 식량 사정이 상당히 악화돼 있고, 강제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이 사실임을 확인한 뒤 도대체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고, 결국 북한 내부에서 소식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을 여러 명을 확보해 2006년 <림진강>을 창간한 겁니다.
이시마루 편집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김일성이 사망한 지난 1994년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을 이끌어온 지난 17년간의 통치를 '실패의 17년'이라고 단정합니다. 지난 1년 간 자신이 만나 본 30여명의 탈북자들에게 김정일 시대에 대해 물어보면 한결같은 '실패'라고 대답한다는 겁니다. 북한에선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시대만큼은 심하지 않지만 지금도 많은 주민들이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한 핵개발로 인한 대외적 고립으로 인해 경제난이 심화돼서 갈수록 주민들의 생활이 갈수록 어려운 게 오늘의 북한 실정입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사회 통제력도 약해지고 있다는 게 이시마루 편집장의 진단입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장마당이 확산되고, 대다수 주민들이 국가의 배급망에서 벗어나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편집장
: 선군정치를 표방하면서도 군대의 식량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걸 봐도 기존의 김정일 정권의 사회통제 시스템이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또 장마당 활동을 통해 60-80%가 살고 있는데 이건 배급제를 통해 사람을 통제해왔던 그런 시스템이 많이 무너졌다고 볼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립해서 먹고 살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정부의 말을 안 듣고 노동당 지도하에 살고 있는 게 아니고 경제활동의 자유를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건 주민통제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시마루 편집장은 특히 북한 정권의 사회 통제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확실한 예로 요즘 북한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민간인끼리 중간 거래업자를 통해 매매하거나 주택 건설을 하면서 돈을 주고받는 일종의 ‘고용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또 이 같은 현상이 일고 있는 것은 북한 당국이 주택을 제대로 공급해주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단속이나 통제도 그만큼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편집장
: 예를 들어 개인 노동, 개인 고용관계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북한에서 노동제도는 기본적으로 국가 아니면 협동단체가 규정에 따라 배급을 주고, 월급을 주며 실업자가 없는 노동 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없으니 사람들이 장사를 해서 먹고 살려고 하니까 돈 벌려면 인력도 필요하게 된다. 예를 들어 물건을 어디서 어디까지 운반한다든가 옷이나 신발을 가공한다든가 혹은 집을 건설한다든가 하는 데서는 사람들이 돈을 바란다. 그러니까 돈을 주는 노동현장에 가서 일하는데 이건 국가 월급제와 완전히 관계없는 시장경제에 바탕으로 한 노동현장이다. 이런 시장경제 식 고용관계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부동산 거래도 많이 활발하다. 이사하거나 좋은 데 살고 싶으면 지금 정부가 주택을 못 지어주기 때문에 개인거래가 일반화됐다. 부동산은 국가소유물이었는데 이것조차 시장경제 거래가 일반화됐다. 돈 있는 사람들이 모여 투자도 하고 팔기도 하고, 현장에선 개인이 고용을 해서 건설현장 노동자를 쓰고 있는데 이들은 월급도 배급도 안주니까 현장에 나가서 매일매일 하루 돈벌이를 한다. 이걸로 장마당에서 쌀을 사서 먹고 사는 상황이다. 부동산은 사회주의 기본인데 이게 무너지고 있다.
이처럼 개인끼리 주택을 사고파는 일은 북한에선 물론 불법입니다. 하지만 북한 정부가 주택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 보니 이런 식의 민간 거래가 점차 늘고 있고, 심지어는 이들 중간에서 ‘부동산 업자’가 개입해 땅이나 주택을 거래하는 게 일반화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부정부패도 흔하다고 마루 편집장의 설명합니다. 실제로 부정부패를 하지 않으면 보안원도 먹고 살기 힘들며 돈만 주면 이들의 통제도 피할 수 있다는 게 오늘의 북한 현실이라고 이시마루 편집장은 진단합니다.
이시마루 편집장은 이어 북한 정권의 사회 통제력이 이처럼 이완 현상을 보이고 있는 데는 장마당의 역할이 크다고 진단합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 당국은 식량배급을 통해 주민들을 통제해왔지만 이런 식의 배급망이 사라지고 대다수 일반 주민들이 국가가 아닌 장마당을 통해 식량을 조달하면서 나라와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편집장
: 역시 시장 경제가 많이 확대되고 시장경제 속에서 사람들이 십 몇 년간 살아오다보니 자립한 경제활동을 통해 살았으니까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자립했다고 본다. 옛날에는 배급을 줄 테니 말을 들어라 하는 ‘배급노동제도’를 했을 때 말을 듣지 않으면 배급을 주지 않으니 먹고 살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도 많이 희박해졌고, 배급제에 의존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60~80% 된다고 보는데 이런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해 살면서 당연히 정치를 보는 시각, 그리고 왜 이렇게 계속 어렵게 사는가라는 원인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본다.
실제로 일반 북한 주민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개방, 개혁을 한 중국과 베트남이 북한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개혁, 개방을 미루고 있는 데 대한 좌절감도 적지 않다는 게 이시마루 편집장의 지적입니다.
이시마루 편집장
: 노동당 간부들부터 농민, 장사하는 아주머니들까지 지금 생활고의 원인은 개방, 개혁을 안 하니까 그렇다는 건 다 똑같다. 그럼 왜 못하나? 내부 사람들은 그거 하면 외부 정보가 많이 유입되고 정권에 거짓말들이 많은 거짓말들이 폭로되고, 정권유지가 어려워지니까 그럴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한다. 지금 정권의 지배층들이 개방, 개혁하면 체제유지, 정권유지가 어려워지니까 못한다는 건 북한 내부에서 일반적인 반응이다.
이시마루 편집장은 장마당이 어떤 측면에선 많은 북한 주민들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킨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면서 “바깥에서 보면 북한 내부의 변화가 잘 안 보이지만 정부가 경제적으로 일반 주민을 통제하던 모습은 거의 사라졌고, 주민들이 대부분 자기 힘으로 살고 있을 정도로 큰 변화가 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시마루 편집장은 이어 “현재 김정일 위원장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면서 “결국 부분적이나마 개혁, 개방으로 가지 않으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비도 마련하지 못할 것이고 이 대로라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은 북한 내부에 관한 소식지인 <림진강>의 이시마루 지로 편집장 겸 발행인의 견해를 소개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