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북한-73] 더글러스 팔(Douglas Paal) 카네기 국제평화 재단 부소장② "김정일, 의지만 있으면 중국식 개방, 개혁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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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도 지난 시간에 이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부소장인 더글러스 팔(Douglas Paal) 박사로부터 북한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해 살펴봅니다. 팔 부소장은 1970년대 이후 중앙정보국과 국무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제만을 다뤄온 아시아통입니다. 팔 부소장은 공직을 은퇴한 뒤 지금은 유수한 민간 연구기관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아시아 프로그램 담당 부소장으로 재직하면서 북한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현안에 관해서 각종 토론회는 물론 <뉴욕타임스> < 월스트리트 저널>, PBS 방송과 BBC 방송 같은 주요 언론에 활발한 의견을 개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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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팔(Douglas Paal) 카네기 국제평화 재단 부소장. (RFA PHOTO/변창섭) (RFA PHOTO/변창섭)

팔 부소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우선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다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권력 세습을 “가족 왕조가 빚어낸 기이한 산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3대로 이어지는 북한의 왕조 체제는 다른 부유한 가문처럼 행동엔 여러 취약점이 드러날 것”이라면서 “북한의 3대는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며 돈은 어떻게 벌지도 모르고 오히려 문제만 잔뜩 생길 것인데 바로 그게 후계체제가 직면하게 될 상황”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팔 부소장은 특히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까지 부자세습을 하려는 이유와 관련해 “철저히 가족을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라면서 “최고 지도자를 정점으로 결정이 내려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가족과 정권의 안위에 급급하다보니 김정일 정권이 북한이 생존할 수 있는 개혁, 개방의 길을 외면하고 있다는 겁니다.

팔 부소장은 북한 정권은 한때 시장개혁을 도입했다가 통제력을 잃기 시작하자 후퇴했고, 2년 전엔 급진적인 화폐개혁을 취하다 실패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나가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맹방인 중국을 방문해 개방, 개혁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살펴봤지만 중국의 길을 가는 데 따른 위험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는 겁니다.


Dr. Paal

: Well, they want the benefits of the opening without the messages of opening..

“북한은 개방의 메시지를 받지 않으면서 개방의 혜택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메시지란 바로 북한 정권에 대한 위협이고, 혜택은 국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두 가지 모두 가질 순 없다. 북한은 절대 현대식 자본주의를 채택할 수 없다. 중국이 북한사회에 현대식 공장이나 제분소 등을 지어주고 북한 주민의 소득을 약간 올려줄 수는 있겠지만 그걸로 북한에 조직적인 변화를 가져올 순 없다. 설령 외국 시설이 북한에 들어와도 그 안에서 가둬버리는 게 문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2001년 1월과 2006년 1월, 지난해 5월과 8월,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지난 5월 등 지금까지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해 중국 최고 지도자들을 만나 경제 협력 문제와 후계 문제 등을 논의했는가 하면 상하이와 심천과 같은 대표적인 개혁, 개방 도시들을 찾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난 5월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뒤 북한은 중국 단둥시와 접경한 압록강 섬인 황금평에 대한 개발을 중국과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해서 내외의 큰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팔 부소장은 김정일 위원장도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처럼 결심만 확고히 하면 얼마든지 개혁, 개방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이 중국식 개혁, 개방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국 정권과 체제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는 게 팔 부소장의 견해입니다.

Dr. Paal

: Well, I mean they could learn from the Chinese example...

“북한은 분명 중국에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중국도 천안문 민주화 사태로 겁을 집어먹었다. 북한은 분명 자체 정권의 취약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가 중국 등소평처럼 자신감을 가졌었더라면 분명 중국과 같은 개혁을 시작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에 투자하고 싶은 해외교포들이 있고, 현대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남한 재벌이 참여해 북한경제를 현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북한이 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북한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북한은 개혁을 두려워한다. 북한을 분명 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권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현대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에 관해 수많은 걸 보여줬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식으로 가면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실제로 중국은 등소평 체제 아래인 1978년 제11기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국내 체제개혁과 대외개방에 대한 기조가 정해졌습니다. 특히 최고 지도자로 실용파인 등소평은 선부론을 비롯한 ‘네 개의 현대화’를 국정 지표로 내걸고 시장경제로 이행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농촌에선 인민공사가 해체되고 농민의 생산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생산책임제가 도입됐고 도시에선 광동성의 심천과 복건성의 하문시를 포함해 5곳에 경제특구가 설치돼 외국자본의 유치가 본격화됐습니다. 중국은 특히 1992년 이후 2단계 시장경제가 본격화되면서 연평균 7% 이상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지난해는 국내총생산이 5조8천8백억달러로 일본을 제치고 미국 다음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이 기간 중국은 개혁, 개방을 통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경제발전을 도모함으로써 공산당 권력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팔 부소장은 오늘날 북한에 휴대폰이 약 40만대나 들어가 있고, 남한을 비롯한 외부세계에 관하 정보가 끊임없이 북한에 흘러들어가고 있음에도 북한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을 들어 김정일 정권이 개혁, 개방을 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이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서 개혁, 개방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팔 부소장은 그 한 방안으로 아시아개발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금융기관의 개입을 권합니다.

Dr. Paal

: It's been my belief for quite a long time that we should take the initiative...

“제가 아주 오랫동안 품어온 소신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금융기관을 활용해서 북한 경제를 재편할 수 있는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가용한 자원을 찾아낸 뒤 북한에 대해서 제공할 테니 혜택을 받으려면 공짜는 안 되고 조직적인 변화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북한의 차기 지도자는 그런 기회를 잡으려 할지 모른다. 설령 북한 지도부가 실패하고 정권이 붕괴해도 그런 실패한 북한을 돕기 위해서도 그런 자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국제금융기관을 대북지원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관해 상상력이 부족했다”

팔 부소장이 언급한 국제금융기관의 개입 문제는 새삼스런 일은 아닙니다. 특히 북한은 핵개발로 인해 미국은 물론 유엔에 의해 경제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가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설령 이런 제재가 풀리더라도 북한은 아시아개발은행이나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과 같은 국제금융기관에 가입하는 데 필요한 의무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해도 가입이 어렵습니다. 북한도 한때 가입에 관심을 표시한 적이 있고, 이에 따라 1997년 국제통화기금이 북한에 실사단을 파견하기도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자국의 경제통계와 같은 기초적인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는 등 국제금융기관에 가입하는 데 필수적인 의무를 이행하길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 시대에는 북한이 지금과 달리 개혁, 개방에 나설 수 있을까요? 팔 부소장은 별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Dr. Paal

: He's had many choices, but doesn't have much time left. The son has been...

“김정일은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후계자인 김정은이 해외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아버지만큼이나 상상력이 부족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김정은이 개혁할 것이란 징후는 없다. 그도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 전환할 때가 오면 우리가 북한에 어떤 제의를 할 순 있어도 그 경우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진 않는다.”

팔 부소장은 이어 자신이 김정은의 고문이라면 “자본과 수출지향 경제를 추구한 남한이나 중국, 일본, 싱가포르가 어떤 방식으로 자국의 후발 경제를 경제에서 현대 경제로 전환했는가를 보고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팔 부소장은 북한에 대한 기대치는 “철저히 현실적”이어야 한다면서 “북한이 신속히 개혁, 개방으로 전환하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결국 개혁, 개방을 포함해 북한이 현재 직면해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우선은 ‘정권 교체’가 이뤄져야 하며,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은 “북한에 정권교체의 조짐이 보이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선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더글러스 팔 부소장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