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미국 동부에 있는 터프츠(Tufts) 대학 부설 플레처 국제대학원(The Fletcher School)의 한반도 전문가인 이성윤 교수가 진단한 북한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해 들어봅니다. 올해로 10년째 북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이성윤 교수는 플레처 국제대학원에서 ‘북한 국가와 사회(North Korean State and Society)’라는 주제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유력 매체인 <월스트리트 저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포린 폴리시> 등에 북한과 관련한 글을 기고하는 한편 공영 방송인 PBS와 같은 방송 매체에서 종종 출연해 한반도 문제에 관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특히 지난해 8월 영향력 있는 외교전문 매체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대응책을 제시한 ‘평양의 각본(The Pyongyang's Playbook)'이란 글을 기고해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성윤 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현 체제론 핵포기는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 교수는 북한 핵문제는 “남북한이 체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반도 역학 구조를 떠나선 생각할 수 없다”면서 “북한이 현재 남한에 비해 너무도 취약점이 많은 상황에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정치, 경제적 보상을 받고 핵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성윤 교수
: 북한이 워낙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가진 것도 없고 자원도 없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리하니까 핵무기를 과감하게 포기해 엄청난 보상을 받으려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 후엔 어떻게 하겠나? 보상을 받았다고 치자. 이를테면 10억, 100억불 보상을 받았다고 하자. 그리고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정치 경제적 엄청나게 보상을 받았다고 하자. 그러고 핵을 포기하고 나면 정치적 보상, 그게 돈이든 물자든 다 떨어지고 나면 앞으로 10년 후, 심지어 50년 후 어떻게 되겠나? 왜 주변 국가들이 북한에 퍼주겠는가? 북한은 세계에서 제일 크고 부유한 나라인 미국, 중국, 러시아, 한국에 둘러싸여 있다. 북한은 영토나 인구로 볼 때 제일 가난하고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나라인데 북한이 핵이 없다면 미국, 중국, 일본 같은 나라가 왜 계속 퍼주겠는가? 이런 나라들이 왜 6자회담에서 북한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나? 북한은 핵이 없다면 아프리카의 많은 빈곤국가 가운데 하나, 그런 정도밖에 안 된다. 이걸 김정일도 너무 잘 안다. 북한과 핵협상 자체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너무도 어려운 과제다.
현재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은 지난 2008년 하순 이후 중단된 상태입니다. 북한은 지난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정치,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 것을 골자로 한 공동성명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 뒤 북한은 미국과 일련의 핵합의를 통해 2008년 6월 처음으로 핵 신고서를 제출하고 그 대가로 미국의 제재 해제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는 혜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핵 신고서 내용에 대한 검증 문제로 북한과 미국과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09년 1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 북한은 그 해 4월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에 이어 5월엔 2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그에 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추가제재를 가했습니다. 북한은 이에 맞서 6자회담 퇴장을 선언했고 지난해 11월 최신식 우라늄 농축 시설을 의도적으로 공개해 기존의 플루토늄 방식에 의한 핵개발 외에 이번엔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까지 나섰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성윤 교수는 북한이 농축 우라늄 시설을 공개한 게 대미 협상용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결국은 조만간 우라늄 핵실험을 강행할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북한이 국제적 위상을 올리고 핵무기를 계속 개발,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핵실험은 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 교수는 또 북한이 앞으로도 핵협상을 통한 평화 공세를 펼치면서도 한편 핵 실험과 같은 도발 행위도 계속 추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일부에선 1994년 미국과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통해 영변 핵시설을 동결한 북한이 2001년 1월 출범한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대북 강경노선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핵개발에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윤 교수의 분석은 다릅니다.
이성윤 교수
: 북한이 2006년에 1차 핵실험을 했는데 그때 안했다고 해서 영영 안했을 거다 또는 10년 동안 안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좀 무리다. 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이 파키스탄과 공조하면서 우라늄 꾸준히 개발. 94년 제네바 합의문이 긍정적 측면에서 2003년까지 플루토늄 핵개발 안했지만 과연 그게 얼마나 갔을까? 제가 보기엔 부시 행정부가 안 들어서고 다른 행정부가 들어서 (양국관계가) 월등 좋았더라도 언젠가는 터졌을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유수한 민간연구기관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나던 폴락(Jonathan D. Pollack) 선임 연구원도 최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즉 북한이 기본합의문에 따라 핵 활동을 동결했지만 언제든 재가동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1990년대 초부터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부터 원심 분리기 기술을 추구해왔다는 겁니다. 그는 “일부에선 미국이 기본합의문을 존중했더라면 북한도 핵개발에 나서진 않았을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북한이 핵무기 능력을 추구하는 걸 막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지난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을 통해서 처음으로 핵 포기를 명문화했습니다. 이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 수립을 포함한 정치적 혜택과 에너지 지원을 포함한 경제적 보상을 대가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합의를 실천할 것이란 징후는 없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북한이 요즘 들어 또다시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이 비핵화의 첫 걸음이라며 평화협정을 들먹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특히 7월말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미국 방문에 앞서 노동신문을 통해 평화협정의 체결을 촉구했고, 그에 앞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도 ‘평화협정 체결은 비핵화를 포함한 조선반도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마치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겠다는 인상을 줍니다. 문제는 평화협정이 체결된다고 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성윤 교수는 북한이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건 주한미군의 철수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 가능성을 희박하게 봅니다.
이성윤 교수
: 평화협정이란 것 자체는 다른 어느 협정과 마찬가지로 그냥 문서다. 본뜻과 다른 뜻이 있을 대는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전쟁을 방지할 수 없다. 북한은 197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결국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고 그랬다. 1973년 북한이 뉴욕의 유엔대표부에 세계보건기구에 가입하면서 사무실을 열었다. 그때부터 미국에 채널이 생기면서 지속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하기 직전인데다 국내 정치적으로 북한과 전쟁을 치르거나 분쟁을 꺼리는 상황이었다. 미국의 약점을 찌른 것이다. 그때는 남침도 심각히 고려해봤을 것이다. 물론 내일 당장 미군이 철수한다고 해서 북한이 남침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북한은 여러 측면에서 장점을 누릴 것이다. 정치, 경제, 군사적 측면에서 대한, 대미 협상에서 북한의 위상이 올라갈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하면 미국이나 한국에선 주한미군이 왜 남아 있느냐는 얘기가 나올 것이고, 그러다보면 수년 내 주한미군은 철수할 것이다.
일부에선 주한미군이 철수해도 남북한 전력 비교 측면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성윤 교수의 견해는 다릅니다. 현재 남한군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주한미군에 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해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 남한이 대응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성윤 교수는 “세계사적으로 핵을 개발한 나라가 자발적으로 포기한 경우는 정권이 교체돼 새로운 정치 환경이 조성됐을 때만 가능했다”면서 단적인 예로 남아공화국과 일부 구소련 위성국을 꼽았습니다. 남아공의 경우 1989년 F.W. 드 클러크 대통령이 인종차별정책을 종식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더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해 핵 프로그램을 해체했고, 구소련 위성국이었던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세 나라에서도 1991년 새롭게 등장한 지도자들이 구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핵을 과감히 포기하고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적인 원조를 받았습니다. 이성윤 교수는 “북한에서도 민주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져서 완전히 새로운 지도체제가 들어서거나 혹은 북한이 망해 남한에 흡수 통일되기 전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라고 단언했습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터프츠 대학 부설 플레처 국제대학원의 이성윤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