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북한-28] 게오르기 톨로라야(Georgy Toloraya) 러시아 과학원 한국연구국장② "북한, 경제 좋아지면 체제도 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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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게오르기 톨로라야(Georgy Toloraya) 러시아 과학원 한국연구국장으로부터 북한의 경제개혁 문제에 관한 견해를 들어봅니다. 경제학 박사로 직업외교관 출신인 톨로라야 국장은 북한이 조만간 기존의 경제 행태를 바꾸지 않으면 붕괴할 수도 있다고 전망합니다. 그만큼 북한의 고립된 폐쇄경제는 북한이란 사회주의 체제의 존폐를 가늠할 만큼 현재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겁니다.

톨로라야 국장은 북한의 변혁 문제와 관련해 구소련의 경험을 예로 들었습니다. 1980년대 들어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정치와 경제체제의 변혁을 의미하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을 때 대다수 구소련 시민이 원한 것은 소시지와 청바지를 더 달라는 것이었지 정치 자유를 요구한 게 아니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바람은 경제적으로 풍요한 삶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결국, 고르바초프가 이런 요구에 부응해 개혁 바람을 일으킨 페레스트로이카는 구소련 공산정권의 멸망을 불러온 촉진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톨로라야 국장은 북한에서도 페레스트로이카와 같은 변혁이 일어날 수 있을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밝혔습니다. 즉 북한이 조만간 기존의 경제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북한 정권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직면한 본질적인 문제를 두 가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난이고, 다른 하나는 후계작업 문제입니다.


Dr. Toloraya

: North Korea faces a lot of problems. Economic crisis is permanent and chronic. Last year's currency reform was really disastrous...

(더빙) "북한은 현재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경제 위기는 항구적이고 만성적이다. 지난해 도입한 화폐개혁은 정말로 재앙적인 결과를 빚었다. 지금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북한 당국이 공식 환율을 인위적으로 낮추려고 하고 있지만, 시장은 그런대로 작동하고 있다. 시장 상황이 종전처럼 정상으로 돌아가진 않았지만 올해 들어 처음 몇 달보단 나은 편이다. 정치적으론 후계체제 문제가 있다. 사실 후계체제는 미묘한 문제다. 김정일은 최근 중국을 방문하는 등 비교적 건강이 좋아 보이고, 조만간 후계체제 문제도 해결될 걸로 본다. 그렇지만 이런 후계체제가 성공적일지 여부를 판단하긴 아직 이르다. 북한은 경제적 고립과 제재 측면에서 외부의 압력을 받고 있고, 적대적 사상과 외래문화의 침투도 북한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톨로라야 박사는 과거 한때 잘 나가던 북한의 경제가 엉망진창이 된 원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즉 북한의 경제는 초기 산업화가 완수된 1970년대 초를 기점으로 쇠락하기 시작해 구소련을 포함한 공산권이 붕괴하던 1990년대 들어서 사실상 성장의 동력을 잃었다는 겁니다. 북한은 1970년대와 80년대 산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신기술도 없었고, 기존의 공장시설마저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빈곤의 구덩이’에 빠졌다는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 대홍수가 몰아닥치면서 농업생산도 대폭 떨어지고, 대기근까지 찾아오자 북한에선 중앙계획경제와 공공배급의 틀까지 무너지게 됐고, 결국 북한의 명령경제(command economy)가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됐다는 게 톨로라야 국장의 설명입니다. 북한은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1980년대와 1990년대 경제특구를 만들어 외국자본을 유치하려고 노력했고, 2002년 7월 제한적이나 경제 개혁을 도입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1990년대 초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사설 장마당은 점차 확대돼서 북한 전역 5백 군데까지 늘어났고, 수도 평양에서만 스무 군데에 달했습니다. 그 덕에 대다수 북한 주민은 국가가 배급하지 못한 생활필수품을 확보해왔고,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주민이 그럭저럭 삶을 꾸려갈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톨로라야 박사도 북한 경제에서 장마당을 비롯한 사설시장의 역할을 높이 평가합니다.

Dr. Toloraya

: This Jangmadang, and markets, and all other private sectors have already gained root and they constitute a considerable part of economy... (더빙) "장마당을 비롯해 비공식 사설 시장은 이미 뿌리를 내려 상당한 정도까지 경제의 몫을 차지하고 있다. 장마당은 많은 주민들의 생계를 해결해주고 수입과 기본생필품의 조달원이 되고 있다. 북한은 장마당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동시에 이런 장마당이 성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장마당 자체의 힘보다는 북한 지도부가 장마당과 나란히 공존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 필수품을 대부분 장마당을 통해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가공급체계는 이미 1990년대 붕괴했는데 배급체제를 되살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북한 당국도 이 새로운 형태의 시장을 막기보다는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중국을 드나드는 소위 ‘보따리 장사꾼’은 물론 일반 북한 주민이 거래하는 장마당은 서구식 시장경제와는 다릅니다. 그렇지만 국가의 통제와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에서 장마당은 시장경제와 닳은 점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시장경제가 북한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톨로라야 박사는 힘주어 말합니다.

Dr. Toloraya

: Their strategy is to introduce a market economy, market levels, also it should be guided market, it should be state-regulated market relations...

(더빙) "북한이 사는 전략이란 시장 경제를 도입하는 일이다. 물론 그런 시장경제는 정부의 지도를 받는 것이어야 한다. 즉 국가가 통제하는 관리경제다. 그 경우 중국과 비슷한 경제가 되겠지만 차이라면 중국에선 농업부문부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농업부문이 국민총생산의 20%에 불과하다. 따라서 북한이 산업경제의 지도차원에서 시장중심의 경제를 구축하려면 한국의 재벌 같은 체제를 마련해볼 필요도 있다. 우선은 국가가 소유한 다목적 회사라든가 혹은 광범위한 경제 분야에 책임을 진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 이런 회사들이 국가 소유나 당과 군, 경찰 등 여러 기관에 소속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고 본다. 이런 회사들 사이에 내부 경쟁을 유도해서 시장경제를 시작할 수도 있다고 본다."

톨로라야 국장은 북한은 같은 사회주의이면서 경제 개혁에 성공한 중국과 베트남의 발전 모델을 연구했고, 심지어는 남한의 경제발전도 연구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중국은 북한의 맹방인데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할 때마다 원조를 제공했기 때문에 북한이 중국식 경제 개혁을 뒤따를 법도 하지만 톨로라야 박사는 그 가능성을 낮게 봅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중국처럼 따라가길 꺼리는지 톨로라야 박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Dr. Toloraya

: Because China didn't have a South Korea across the border which immediately would swallow the North if something goes wrong...

(더빙) "중국은 뭔가 일이 잘못되면 금방이라도 북한을 흡수하게 될 남한같은 나라가 이웃에 없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한도 중국식 개방의 길로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북한도 경제개혁에 대해 나름대로 고심하고 시도도 해봤지만, 무척 조심스러워 일을 벌이질 못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최근 방중 결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중국에서 원조를 받는 대가로 뭔가 개혁을 하고, 중국의 안보 다짐을 받아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중국보다는 경제 규모가 비슷한 베트남이 북한 실정에 더 적합하다는 게 톨로라야 박사의 견햅니다. 게다가 베트남이 도이 모이 개혁을 시행하면서도 공산당의 지배를 그대로 유지했고, 값싼 노동력에 기초한 수출 지향적 경제 정책이 북한 지도부의 처지에서 볼 때 매력적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북한 정권이 개방을 해도 정권의 안위에 지장이 없다는 걸 담보하기 전엔 진정한 개혁, 개방에 나서긴 힘들 것으로 톨로라야 박사는 봅니다. 단적인 예로 그는 지난해 하순 북한 당국이 도입했다 실패한 화폐개혁을 꼽았습니다.

톨로라야 박사는 이어 자신이 김정일 위원장의 고문이라면 “현재의 경제상황을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 등과 협상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북한 정권이 좀 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자유화 조처를 하면 좋겠지만 역시 핵심은 경제”라면서 “북한이 앞으로 시장경제화가 되고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 북한체제도 변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은 러시아 과학원 한국연구국장인 게오르기 톨로라야 박사로부터 북한의 경제개혁에 관한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