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북한-44] 제니퍼 린드(Jennifer Lind) 다트머스 대학 교수 "김정은이 권력 세습해도 북한의 개방, 개혁은 불가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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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미국 다트머스 대학(Dartmouth College)의 제니퍼 린드(Jennifer Lind) 교수가 보는 북한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해 들어봅니다. 정치학자인 린드 교수는 올 여름 저명한 국제문제 학술지인 <국제안보(International Security)> 여름호에 기고한 ‘평양의 생존전략'(Pyongyang's Survival Strategy) 이란 논문을 통해 북한 정권의 독재 유지방법과 수단을 체계적으로 밝혀내 주목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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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다트머스 대학(Dartmouth College)의 제니퍼 린드 교수. - PHOTO courtesy of Jennifer Lind (PHOTO courtesy of Jennifer Lind)

이 논문에서 린드 교수는 북한 정권이 다른 어떤 요인보다 억압적인 사회정책과 정보의 통제, 인민 봉기와 정변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만든 여러 제도와 기관 등을 통해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린드 교수는 또 지난 2009년 6월 외교전문 잡지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 ‘김정일 이후’(Next of Kim)이란 기고문을 통해 북한의 후계세습 문제점을 분석했고, 지난 1997년엔 외교전문 학술지인 <퍼시픽 리뷰(Pacific Review)>에 ‘북한에 대한 일본의 자금유입과 제재 정책의 방안’이란 논문을 통해 대북 제재에 대한 실효성 문제를 짚는 등 북한 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린드 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우선 강압적인 주민 탄압을 통해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을 가리켜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나라”라고 규정했습니다. 린드 교수는 특히 1990년대 들어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나라들이 줄줄이 망한 이후 북한도 결국 멸망할 것이란 각종 분석과 예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독재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을 몇 가지 꼽았습니다.

Prof. Jennifer Lind

: What we see in terms of the ways the regime sustains itself and prevents coups, prevents the onset of popular revolution...

“북한이 정변과 인민봉기를 방지하면서 정권을 유지하는 방식을 보면 북한 정권도 역사적으로 전 세계의 독재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한 도구에 의존하고 있다. 즉 북한 정권은 주민의 반항할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아무리 작은 반항이라도 발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제도를 설치했다. 예를 들어 북한에선 같은 업무를 놓고 여러 기관이 서로 감시해 경쟁하도록 제도를 만든다. 이런 식으로 여러 보안 기관이 반항적인 북한 주민을 감시할 수 있고, 또 보안원이 그런 사람을 발각하기 마련이다. 만일 반항적인 사람을 발각하지 못한 보안원은 다른 보안 기관에 의해 반역 분자로 찍혀 제거될 수 있다. 독재정권에겐 이런 식의 제도가 중요하고, 폭력의 사용은 특히 중요하다.”

린드 교수는 북한은 아예 처음부터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사회 단체들의 출현을 봉쇄함으로써 인민이 봉기할 가능성을 최소화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북한 정권은 유사시 인민의 봉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성직자 집단은 물론 서구 사회처럼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민 사회의 성장을 분쇄한 탓에 소위 지식 계층도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사실상 정해진 김정은이 북한의 새 지도자로 나선 뒤 부친이 추구한 독재 노선에서 탈피해 개방, 개혁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내 대다수 전문가들은 정권에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 변화를 택하기 보다는 부친이 추구한 노선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린드 교수의 생각도 비슷합니다. 김정은이 만에 하나 개혁 노선을 취할 가능성을 전혀 부인할 순 없지만 일단 본격적인 개혁, 개방을 시작하면 북한 독재정권은 물론 북한 사회 전반이 뿌리 채 뒤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현상 유지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겁니다.

Prof. Lind

: We just don't know anything about him. It could be that he's going to be some historic reformer, and when he comes in after his father's death, I want to...

“우린 김정은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김정은이 북한에서 역사적인 개혁자로 나설 수도 있을지 모른다. 즉 부친 사망 후 김정은이 들어선 뒤 ‘주민에 대한 독재를 끝내고 남한과 통일하고 싶다’라고 말이다. 물론 자기 자신과 가문, 나아가 자신을 지탱해준 측근들이 받게 될 엄청난 피해를 감안할 때 김정은이 실제로 이런 일을 벌인다면 정말 깜작 놀랄 일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인류 역사를 보면 어느 한 지도자 개인의 선택이 그 나라의 진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례가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김정은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가 그런 길을 가기 보다는 오히려 가문의 일을 인수받는 데 만족할 것 같다. 왜냐하면 개혁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일가친척에겐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에 개혁이 시작되면 기성 제도가 뿌리째 뒤흔들릴 것이고, 볼썽사나운 내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통일이 되면 과연 자기들이 남한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국제사회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을지 걱정하는 북한 지도층이 많다고 본다. 다시 말해 북한 지도부는 개혁으로 얻는 것보단 잃을 게 너무 많다. 따라서 김정은은 삼촌과 고모, 측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의 가문이 해오던 일을 그대로 이어갈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린드 교수는 김정은이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 나서도 북한에서 개혁, 개방이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경제 개혁에 따르는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경제 개혁이 확대되면 더 많은 외부 정보가 필연적으로 북한에 흘러들 수밖에 없고, 경제 개혁과 관련한 다른 부수적인 일들이 너무도 많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 예견되기 때문에 김정은도 아버지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개혁, 개방에 관한 한 상당히 보수적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린드 교수는 진단했습니다. 린드 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삶이 향상되고, 북한이 좀 더 가난에서 벗어나 끔찍한 기근을 겪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이를 위해서 북한 정권이 경제 개혁을 해야 하지만 이런 개혁을 아주 위험스런 일로 여기고 있어 가망성은 극히 적다”고 말했습니다.

린드 교수는 특히 북한은 김일성에서 김정일을 거쳐 다시 김정은에게 권력이 세습되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3대 권력세습을 벌이고 있지만, 역사상 아무리 권위주의적인 정부라 해도 권력을 물려주는 일만큼 힘든 일이 없다는 점에서 북한은 현재 중대한 정치적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합니다.

Prof. Lind

: One of the most difficult things authoritarian governments will do is to try and extend his regime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사실 권위주의적인 정부에서도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정권을 계속 넘겨주는 일이다. 역사적으로도 독재 나라에서 권력이 2세대에서 다시 3세대로 물려주는 것은 선례가 없다. 따라서 이런 과정은 어느 권위적인 정부라 할지라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 정권은 유별나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분명 정치적 전환기에 놓여 있다. 그러나 북한은 상당한 복원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3대 세습은 북한 정권의 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 정권은 최대한의 안정 구조를 내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 정권이 만든 제도는 심지어 군부의 쿠테타조차 거의 일어날 수 없게끔 돼 있고, 설령 그런 움직임이 있더라도 즉각 발각하기 쉽게 만든 제도다. 나아가 무력 사용과 민족주의적 이념 등 김씨 가문의 통치를 정당화해주는 모든 요소들 덕분에 북한 정권은 지난 1990년대 극심한 기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다.”

린드 교수는 서구 민주주의 나라 같으면 어느 정권이든 국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면 투표라는 국민이 심판에 의해 정권이 언제든 갈릴 수 있지만 북한같은 독재국가에선 주민들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발적인 주민의 동원조차 불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정변을 일으킬 수 있는 결정적 세력인 군부조차 북한에선 철저한 감시 아래 놓여있기 때문에 군부에 의한 쿠테타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린드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린드 교수는 이어 이처럼 철저히 통제된 북한 사회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정권에 항거할 수 있는 방법이나 수단은 사실상 없다고 단언합니다. 인류 역사상 아무리 혹독한 정권에서도 혁명이나 쿠테타, 즉 정변이 일어난 선례는 찾아볼 수 있지만 지금까지 북한 정권이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동원해온 수단과 도구를 감안할 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린드 교수는 일부에선 탈북자들의 증가와 북한과 중국을 넘나드는 교역상들의 증가, 남한의 텔레비전 연속극을 비롯한 문화의 유입, 나아가 북한 사회에 뿌리를 내린 준시장 성격의 장마당 확산 등이 북한의 독재정권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북한 정권이 일체의 반체제 움직임을 사전에 발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지금처럼 확고하게 유지하는 한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겁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은 다트머스 대학의 제니퍼 린드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