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그리고 영국에서 지내는 음력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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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한국에서는 음력설이 추석과 함께 2대 큰 명절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생일에 밀려 음력설은 명절로 보내지 않고 있다는데요,

임경화: 김일성 생일이라든가 이런 때 북한에서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민속 최대의 명절, 큰 명절에는 무조건 송편을 해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백성들의 민속 명절을 박탈하고 개인, 지도자의 생일을 최대의 명절로 지키라고 하는 거죠. 이번 설에도 한국 중국 등 음력설을 쇠는 국가에서는 고향을 찾아 많은 국민들이 대 이동을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북한에서 아예 사라질 뻔 했던 음력설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는군요. 여성 시대 오늘은 탈북자들이 제일 많이 자리를 잡은 영국의 탈북민 주부, 가명의 임경화 씨로부터 북한과 영국에서의 음력설에 얽힌 얘기 들어봅니다.

영국에 자리 잡은 지 7년 되는 40대 초반의 임경화 씨는 온 가족이 함께 영국에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며 북한에서 지냈던 설 명절을 돌아봅니다.

: 저희는 음력설은 크게 안 쇠었거든요 그런데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옛날 분들은 꼭 음력설을 챙기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음력설에는 항상 할머니네 집을 갔어요. 거기가면 설이라고 맛있는 음식을 해놓고 하니까 먹는 재미에 갔어요. 항상 그날이 기다려지고...

북한에서 설 때 먹던 음식이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 있어 지금도 생각이 난다며 바로 고향음식이기 때문이 아니겠는냐고 말합니다.

: 할머니 집에 가면 항상 두부 있잖아요 손 두부를 해요 거기다 기장 찰밥 아니면 조 찹쌀로 찰떡을 치던가,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할머니 집에 가서 먹었어요. 저희 집에서는 따로 설을 안 쇠었어요. 모든 집들이 거의 음력설을 안 쇠거든요 할머니가 계시니까 할머니 집에서 그런 추억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설이면 꼭 먹는 음식이 떡 국이죠, 그런데 유일하게 북한에서는 개성에 조롱떡국이 있는데 이는 전쟁 때 월남한 개성 사람들이 지금도 조랭이 떡국이라고 해서 고향음식으로 즐겨 먹습니다. 그런데 다른 지방에서는 떡국이 설음식이 아니라네요.

: 떡국은 해 먹은 기억이 없고 우리는 항상 설날에 송편과 절편을 하거든요 절편은 설 지난 다음날에는 이게 좀 딱딱해 지거든요 굳어지면 먹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을 가지고 떡국처럼 썰어서 국으로 해 먹었어요.

북한의 형편이 그래도 나았을 때 이야기라며 고난의 행군부터 배급이 끊겨 설 쇠기도 힘들었다고 하는군요. 90년대 전에는 그래도 식량을 조금씩 아껴 설 때 음식을 장만했지만 배급이 끊기자 그나마도 할 수 없었다고 경화 씨는 전합니다.

: 힘들어도 설날에 먹을 것들, 쌀이 많지 않아도 입쌀 같은 것은 조금씩 아꼈다 마련해 가지고 설을 쇠었는데 고난의 행군 이후로는 먹을 것이 없는데 언제 설 까지 챙기겠어요.

그는 탈북 해 영국에 정착하면서 그나마 잃었던 음력설을 쇠고 있다며 북한에서 배급만 받다보니 북한에서 이어져 내려온 전통 음식도 거의 잃어 버렸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조금씩 이나마 회복하고 있다고 하네요.

: 여기 한국 분들이 많으시고 그러니까 음력설을 크게 쇠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음력설을 쇠고 있어요. 음력설에는 우리 가까운 분들 몇 집이 모여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세배 돈을 주어요. 아이들이 한복, 설빔도 예쁘게 차려 입고 한집에 모여서 윷놀이도 하고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설을 보내요. 그러면 북한의 보고 싶은 가족들도 생각이 덜나지 않겠나 싶어서....마음을 그렇게 달랩니다.

음력설에는 아무래도 고향 할머니 집에서 먹었던 음식을 해 먹으며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고 하는군요.

: 여기는 송편이 좀 없어요. 그리고 한국 분들은 보면 떡집에 다 맡기잖아요, 우리는 절대로 안 맡기고 안의 속이랑 겉이 모두 북한 맛이 나려면 북한식대로 여럿이 모여앉아 손으로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모양도 조개 모양, 꽃모양 여러 가지로 했어요.

송편의 특징은 반죽할 때 쑥을 넣어 고운 초록색이 나고 포도즙, 치자 물 등을 넣어 예쁜 색이 감도는 송편을 만들기도 하는데요, 이와 함께 송편에 넣는 소도 여러 가지를 넣는데 북한에서는 어떤 것을 넣는지 궁금한데요,

: 송편에다 소를 넣는 것은 팥있잖아요 그 팥 을 삶아서 찧어 단것을 좀 넣어서 했어요. 그리고 줄당 콩에다 북한에서는 설탕이 부족하니까 뉴슈가. 사카린이라고 해요. 북한에서 그것을 조금씩 넣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물엿이나 설탕을 넣어서 해요. 깨도 넣으면 고소하고 진짜 맛있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설 보다 추석 때 송편을 먹죠. 그래서 보통 동부나 녹두를 삶아서 부드럽게 찧어 흰색 또는 녹두 색이 감도는 소를 넣거나 설탕이나 꿀에 비빈 참깨 그리고 콩, 밤, 건포도 등 여러 가지를 넣습니다. 그래서 솔 향이 감도는 송편을 쪄내면 좋아 하는 속이 든 것을 골라 먹느라고 조금씩 잘라 확인하는 바람에 잘려나간 송편이 많았어요. 형제들이 많다보니까, 그런데 지금은 임경화씨가 얘기한 대로 주로 떡집에서 기계로 한 송편을 사다 먹으니까 속도 다양하지 않고 손으로 직접 빚은 것만 못해 정말 송편 맛이 안나요.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 전 그래도 설 명절에 배급이 나왔다는데요,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배급이 나오지 않아 어려웠지만 그래도 순대는 어떻게 하든 만들어 먹었다고 순대에 얽힌 얘기도 전합니다.

: 북한순대 있잖아요, 북한 사람치고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저희 들이 어렸을 때는 국가에서 음력설에도 배급이 나와 식용유 일인당 200그람 식구가 많은 집은 500그람 800그람 뭐 이런 식으로 주었거든요 그런데 90년대 지나서 부터는 기름 같은 것은 받지도 못하고 아버지나 어머니, 부모님의 직장에서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돼지 큼직한 것을 한 마리 사요. 그래서 그것을 다 각을 떠서 나누거든요. 1키로 씩 아니면 1키로 500씩 이런 식으로 많지는 않지만 그렇게 나누어서 명절을 쇠었어요. 그리고 내포, 내장은 여자들이 모여앉아서 순대를 하거든요 순대에는 돼지고기도 들어가고 비계 그리고 돼지 내장 폐, 심장, 혀라든가 간이나 피, 선지 있잖아요, 그리고 찹쌀이 들어가요 또 시래기와 파 등 야채가 절반 정도 들어가죠. 그러면 저희 집 에서 속도 넣고 수다도 떨면서 만들어가지고 직장 성원들이 다 와서 같이 드시는 거예요.

지금 영국에서 순대 만들 때 돼지고기 냄새를 없애는 양념도 여러 가지라 듬뿍 넣지만 북한에서는 워낙 양념이 귀하기 때문에 볏짚을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 생강은 구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구하게 되면 마늘과 같이 넣어요. 그런데 북한에는 고기 냄새를 없애는 조미료가 부족해요 그래서 염소나 양을 삶을 때 볏짚을 넣어가지고 같이 끓이거든요 그래서 냄새를 없애요 그런데 잘 없어지지 않죠. 어쨌든 최선의 방법이 그겁니다 너무 조미료가 없으니까 그리고 파 같은 것도 여름에 나지 겨울에서 온실이 없어 그런 것을 생산하지 못해 겨울에는 여름야채가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겨울에는 볏짚을 넣어서 같이 삶는 거예요.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리고 돼지고기 순대 기름기가 많잖아요 세척제도 없으니까 더운물에 담갔다가 그릇을 씻었어요.

결국 자신들의 돈을 쪼개어 직장 성원들이 함께 돈을 모아 설음식을 장만한 셈이 된 겁니다. 하지만 그 때 그 시절 함께 어울려 순대를 만들어 먹던 고향 음식은 먹을 때 마다 고향의 가족들 친척, 친구들이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 돼지를 사자면 개인이 사기에는 힘 들잖아요 부담스럽고 그러니까 직장에서 사람들이 다 모아서 하는 겁니다. 저도 노후에는 북한에 가서 다시 그런 생활하고 싶어요.

그는 이어 고향을 떠나 영국에서 살고 있지만 때를 맞추어 전통적인 명절 음식을 만들어 이웃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어 많은 위로가 된다고 하네요. 그런데 지금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 얘기가 오가고 있는 소식에 귀를 기우리고 있다며 안타까워합니다.

: 이산상봉 얘기 나올 때 마다 우리는 별나게 들뜹니다. 우리도 저런 날이 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싶어요. 우리 탈북자들도 솔직히 이산가족이잖아요 못 만날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도 좀 만나게 해줄 수는 없는가 정부가 주선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있고요.... 이산가족인 우리는 많이 지쳐 가고 있어요.

여성시대 RFA 이원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