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가족, 비용 비싸고 위험해도 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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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 사는 탈북여성, 특히 어머니들은 지금도 북한에 두고 온 자녀를 데려 오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던 밤낮 시간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기는 이유도 하루 속히 북에 남긴 가족, 특히 자녀를 데려오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성공하면 아무리 비싼 돈을 들여도 아깝지 않지만 잡혀 북송되면 지금은 무조건 사형, 어쩌다 운이 좋으면 정치범 수용소로 잡혀 간다는데요,

송: 지금은 가차 없어요. 중국으로 가다 잡히면 생사조차도 알 수 없어요. 이제는 막 가둬 놓고 죽이라고 했어요. 자기 고모부도 그 씨족까지 다 죽였는데 백성들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거든요

북한에 두고 온 딸을 데려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50대 후반의 탈북여성은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딸을 꼭 구출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 알아봅니다.

한국에 정착한지 이제 10여년이 넘은 가명의 송경화 씨는 북한에 있던 아들은 데려 왔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딸을 데려 오기위해 봉급이 조금이라도 많으면 직종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송: 한번은 야간에 하고 한번은 주간에 했다 야간에 하면 돈이 더 많아요. 이제는 닥치는 대로 해요 회사에 있다 한번 옮기면 정말 우리나이에 또 다시 회사 들어가기 힘들어요. 만만한 게 식당일이죠. 식당은 아무래도 회사보다 낫죠. 회사는 시급제로 8시간 이상 더 일을 못하는데 식당은 12시간 일 하잖아요, 그런데 야근하면 한국 돈 210만 원 정도 되거든요, 회사에 다니는 것 보다 한 60만 원정도 더 많아요.

원래 북한에서 일을 했던 재봉기술로 남한에서 전문직 직종에서 일을 했지만 오래 하다 보니 신체적인 여건이 따르지 못해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으로 옮겼다고 하네요.

송: 한국에 와서 가방 만드는 곳에서 일을 했지만 핸드백 만드는 곳은 전문직 이었는데 눈이 자꾸 어두워져 제강회사에서도 일 했다가 회사를 옮기려고 서울에 다시 올라오니 회사에 들어갈 자리가 없고 또 나이가 드니까 일할 자리가 없어요. 그리고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도 월급이 적고...

그래도 지금은 북한에서 구출한 아들이 직장을 잡고 한몫하고 있어 딸의 구출비용을 마련하는 데는 훨씬 수월하다고 합니다.

송: 아들은 일 잘하고 있어요. 자동차 엔진 열처리하는 벤처 기업에서 그동안 주임으로 승진하고 이제 이 회사에서 조금 있으면 사장님이 그 기술부분 전공분야에 대한 공부를 시켜 주겠다고 해요. 그래서 자기 직업부분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고 작심하고 일을 열심히 하니까 몸 아끼지 않고... 사는 것은 괜찮아요. 북한에 두고 온 딸을 데려오기 위해 준비도 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두 모자가 정말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탈출비용, 즉 브로커에게 주는 중개인 수수료가 계속 오르고 있어 걱정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올랐는지,

송: 지금 뭐 많이 비싸졌어요. 한 사람이 강 건너는데 한국 돈 800만원이에요. 우리아들 데려올 때 400만원과 대비도 안 되는 2배로 뛰어 올랐어요. 경비가 심하고 그 사람들도 목숨 내 놓고 하기 때문에요.

중개인을 통해 탈출시키는데 혹시 중간 과정에서 연락이 안 되거나 잘못되는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탈출 비용은 선불이기 때문에 다시 돌려받을 수는 없다는데요.

송: 데려 내오다 잡혔잖아요, 그러면 브로커 중개인 비용은 받을 길이 없어요. 그 사람은 종적을 감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중국까지 딱 건너오는 것을 확인하고... 중국에서 동남아 까지 들어오는 것도 위험하잖아요. 그런데 브로커 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저는 아직 직접 겪어 보지 못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가족을 데려오다 중국에서 잡혔거든요. 그런데 그 가족을 꺼내는데 돈을 또 쓴다고 해요. 가족들은 돈을 다시 주고라도 잡힌 사람들을 꺼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종당에 북송되면 그 사람은 찾을 길이 없는 거에요 들어간 돈은 찾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돈 찾겠다고 돌아다니면 그동안 돈을 못 벌죠.

이미 건넨 비용을 찾기 위해 사람을 만나 여기 저기 알아보다가는 일을 못해 오히려 경제적인 손실이 더 크기 때문에 포기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탈출비용도 문제지만 이보다 더 크게 염려하는 것은 김정일 시대보다 탈북 단속이 엄청 심해져 김정은 시대, 지금은 잡힌 탈북자는 사살하라는 명령까지 떨어져 어려움과 두려움이 더욱 크다고 전합니다.

송: 김정은이 하도 권력이 세니까, 김정일이 있을 때는 그때는 걸려도 용서가 있었거든요 한 두 번 용서 했는데 지금 김정은 시대는 용서란 것이 없대요.

이런 상황이지만 그래도 남은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많은 탈북자들은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데요, 돈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군요. 그런데 정작 딸의 연락처를 알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는 송경화 씨,

송: 같이 일하는 동생이 있는데 딸을 데려 오려고 브로커들과 계속 연락하고 있거든요. 저는 아직도 딸과 연계가 안 되어 작년부터 데려오려고 하다 아직도 못 데려오는데 돈만 있으면 다 데려와요 위험이 따르지만요

그는 이어 북한에서 아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눈치 챈 보위부에서는 여러 번 집을 찾아와 이 아들이 어디로 갔느냐고 채근을 하자 딸은 이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송: 동생이 누나와 같이 있다 내가 갑자기 아들을 데려 왔더니 보위부에서 동생이 어디 갔느냐고 세 번 찾으러 왔대요. 그러니까 딸이 매형한데 한 대 맞고 집을 나갔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고 말을 했다는군요. 그러니까 겁이 나서 동생을 모르는 곳으로 이사 가면 주위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그래 이사를 갔는지 몰라 안타까운 거죠

인민들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또는 장기간 집에 없는 것을 알면 더욱 엄격하게 감시를 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고 전합니다.

송: 갔다가 왔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감시가 붙잖아요. 그래도 나는 감시 속 에서도 뚫고 중국 쪽으로 탈출 했거든요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데 걸렸다하면 용서가 없는 거죠 지금은....

하지만 아직도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오기 까지는 국경 수비대들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 때문에 중국 까지 무사히 올 수가 있다고 전합니다. 역시 돈이면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는 것이 국경경비대 사람들이라며 걸리지만 않으면 돈벌이로는 최고라고 말합니다.

송: 그래도 다 와요. 군인들 다 끼고 군인들도 뭐 자기 위의 간부들도 다 끼고 그렇지 않으면 군대들이 돈 어떻게 벌어요. 옷을 벗는 한이 있어도 돈을 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거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요 일반 군인들은... 국가 국경경비대 나온 사람들은 정말 잘하면 평생 먹고 쓸 수 있는 돈 벌 수 있다는데 그러다 걸리면 자기네도 강 뛰는 거죠.

송경화 씨는 탈북 과정에서 생긴 병도 이제는 다 나아 북한의 딸만 무사히 데려 오면 바랄 것이 없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딸을 찾을 것 이라고 다짐합니다.

송: 어쨌든 사람을 띄우긴 띄웠어요. 우리 딸 찾아보라고.. 한국에 와서 많이 병 치료도 하고 입원도 해서 그 후에는 병으로 입원한 적은 없는데 아무래도 나이 먹어 가니까 여기 저기 쑤시고 해요, 일도 힘들고 하니까.

이제는 생활 여건이 많이 안정이 되어서 가족이 모이면 정말 고생스러웠던 북한 생활, 탈출 등을 옛 말하고 살 수 있는데 아직도 마음에 커다란 뭉치를 지닌 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하네요.

송: 가족이 다 온 사람들은 근심 걱정이 없는데 자녀 딸 두고 부모님 거기 두고 온 사람들은 한국에 와서 암만 잘 살아도.... 처음에는 와서 지상 천국 같아서 벙벙했는데 나만 잘 사나 하는 것이 항상 가슴에 걸리고 그래요.

송경화 씨는 20대 초반인 아들도 그 동안 한국에, 직장생활에 적응하느라 때로는 힘든 모습을 보여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송: 주임으로 되다 보니 아무래도 욕도 많이 먹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한번은 자기하고 같이 일하는 한국형과 크게 다투었데요. 그래서 내가 웬만하면 그러지 말고 참았어야지 네가 어린데, 그랬더니 아들이 '참는 것도 정도가 있지 북한 사람이라고 깔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느냐' 고 그래서 그러지 말라 그것은 네 스스로 생각하는 거지 하면서 옆에서 잘 얼러주며 말해주니까 무난해 졌어요.

아들과 함께 사는 송 씨는 아들이 옆에서 직장 생활을 잘 하면서 어머니를 위로 하며 힘을 실어 주고 있어 딸을 찾는 희망을 붙잡고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