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중국에서 숨어살며 많은 고초를 겪고 한국으로 들어간 탈북 여성들은 대부분 씩씩하게 잘 정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착의 어려움을 이겨낸 여성 탈북자들은 북한의 가족에게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윤희영: 국경지대 까지 돈 받으러 70 리를 걸어 들어와 돈을 받아 가는데 30% 떼고 주지만 1년은 삽니다. 이를 가지고 장사도 하고...
경북 구미에 터를 잡은 탈북여성, 가명의 윤희영 씨는 한국의 생활이 힘들었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이제 자신을 구출해준 한 탈북자 단체를 돕겠다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 전해 드립니다.
북한의 식량난이 한창일 때 중국으로 탈출한 윤희영 씨는 그곳에서 만난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오랜 기간 동안 식당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남한으로 탈출하는 길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악몽 같은 생활을 이어가다 탈북자를 돕는 한국의 한 단체의 중개인을 만나 한국으로 들어간 지 이제 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윤희영 씨는 중국에서 식당을 했던 경험으로 한국에서도 식당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적응이 되었다는 군요. 처음에는 서울에서 살았지만 경북 구미로 옮겨 살다보니 이제는 서울보다 살기가 낫다고 하네요.
윤: 제가 정말 한국에 와서 이제는 적응이 다 되었어요. 중국에서 10년 동안 식당을 한 경험이 있어 살아보니 지방이 그런대로 좀 나은 것 같아요. 지금 저는 서울에 있으라면 못 있을 것 같아요 지방이라도 많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정착도 되어 지방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북한의 가족을 위해 생활비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보람이라며 중개인을 통해 1년에 한번 씩 돈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요즘 돈을 떼는 브로커 사고도 있고 북한의 단속도 있지만 그동안 같은 브로커 하고만 거래를 하다 보니 배달사고 없이 잘 전달이 되고 있어 안심이라고 얘기합니다.
윤: 30%를 뗴고 보내도 제대로 갑니다. 이렇게 수수료를 떼어도 괜찮죠. 다른 데는 돈을 떼어 먹고 안주기도 하는데 우리 쪽 선은 그래도 70%를 실속 있게 전달해 주니까 그만해도 고마운 거죠. 120만원에서 150만원, 미화 1200-1450 달러 보내면 중국 돈 한 8천 원 됩니다. 그러면 1년 먹고 살아요.
이렇게 보내주는 돈으로 장사도 하고 있어 온 가족이 밥은 먹고 살고 있다는데요, 장사를 하는 것은 물론 이익도 낼 수 있지만 주변의 감시에서 안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 이를 가지고 장사도 하고 그리고 장사를 해야만 다른 사람의 감시 대상이 안 되는 거죠. 쌀장사를 하는데 그래도 쌀장사를 해야 이윤이 떨어지고 식구들이 먹고 살아요. 크게는 못하고 하루 한 끼 먹을 수 있는 쌀을 파는데 그래도 이것으로 죽은 안 먹고 옥수수 밥 이라도 차례집니다. 쌀장사 하면...
북한에서는 항상 쌀이 귀하지만 도매상에서 가져다 파는 중간업체로부터 받아서 팔기에 비교적 힘들지 않게 장사를 하고 있다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합니다.
윤: 중간업체들이 가져오는 것을 받아 앉아서 소매로 팔죠. 쌀을 사는 사람들에게 저울로 달아서 장사를 합니다. 1키로, 2키로, 5키로 이렇게... 지금 북한의 쌀값이 1키로에 북한 돈 5천원입니다. 그래서 한 달 월급은 모두 저축해야 보낼 수가 있어요. 1년에 한 달 월급을 모두 보내고 있죠.
이렇게 조그마한 장사를 하다 보니 북한 돈의 값어치가 형편없어 지금도 일반 주민들은 북한 돈을 믿지 않고 거의 중국 돈으로 쓰고 있다고 하는군요.
윤: 북한 돈은 이제 믿지 않아요. 화폐교환도 믿지 않아요. 다 중국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중국 돈으로 다 써요. 북한 돈은 조금씩 쓰고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중국 돈을 써요, 안전하니까,
미국, 캐나다, 유럽등지의 탈북자들도 북한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는데요, 한국에서는 더 많은 탈북자들이 고향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있어 한국에서 보내는 액수도 만만치 않을 것 이라고 윤 씨는 말합니다. 이렇게 탈북자들이 땀 흘려 번 돈을 아껴서 보내고 있는데 북한당국이 인민들의 생활을 돌보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고 슬프다고 윤 씨는 한숨짓습니다.
윤: 너무 슬픈 것이 오빠가 군대에 갔다 지금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요. 북한에서 오빠가 군사복무 10년을 했으면 그 대가를 국가에서 해주어야 하는데 우리가 개인적으로 돈 보내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너무 분통이 터져요. 배급, 지원 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이 제가 돈을 보내 오빠 병 고치랴 먹여 살리려고 하니까 북한 사회를 저주하게 되고 누구에게 말 할 사람도 없고...
10년 동안 군대에서 청춘 세월 보내고 병까지 얻은 인민들이 제대하면 알아서 먹고 살라는 식이라며 북한은 인민들을 위해 해주는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며 언제쯤 북한이 변할지 고향을 생각하면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항상 불안 하다고 말합니다.
윤: 우리오빠는 군사복무를 10년을 했어요. 제대되어 집에 오자마자 바로 걷지를 못 했어요. 이렇게 일반 모든 사람이 국가로부터 지원 받는 것이 없습니다. 국가가 치료 해주는 것도 없어요. 그러니 국가가 어디 있어요. 개인집에서 약사 바르고 주사도 놓고 하는데 지금도 아파한데요. 북한이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윤희영 씨는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이라도 한국에 정착해 이제 머지않아 조그만 식당을 꾸릴 계획을 세워놓고 경제가 조금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휴가철이라 지금 일하는 식당도 휴가에 들어갔다고 하네요.
윤: 중국에서 한 10년 동안 식당을 해 여기서도 빨리 제 가게를 문 열어야 하는데 한국경제가 너무 사정이 어려워 이거 좀 지나면 제가 식당을 해 보려고요. 그런데 지금은 모두 휴가철이라 사람들 빠져나가 손님이 없어 가게에서도 3일 동안 휴가에 들어갔어요.
올 여름 휴가는 친구들과 함께 바다보다는 시원한 계곡을 다녀오겠다며 힘든 과정을 넘고 나니 안정된 생활도 할 수 있어 이제 앞으로의 생활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윤: 친구도 만나고 그래요. 바닷가는 피부도 햇볕에 때문에 좋지 않아 바닷가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시원한 계곡 같은데 친구들과 가려고 해요.
그는 이어 중국에서 그 어려움을 당하며 고생하고 있을 때 구출해 주었던 한국의 탈북 단체를 위해 이제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길도 찾고 있다고 전합니다.
윤: 이제는 내가 단체 생활에 신경을 좀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체에서 고발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책도 알리고 팔았는데 많이는 못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한 작가가 쓴 고발 이라는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었는데 북한에서 고통당하는 일반 서민들의 얘기라며 이 책을 읽다 탈북자 자신들이 겪었던 일이기에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윤: 내용이 일반 주민들의 생활인데 책을 본 한국 사람들이 정말 이렇게 사느냐며 믿지를 못해요. 저도 너무 마음이 아파가지고 끝까지 못 읽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읽어보고 북한의 실체를 알았으면 합니다. 기본은 이 책을 쓴 사람이 지금도 북한에서 글을 쓰고 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점 인거죠.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먼저 읽고 도 한국 분들도 읽을 수 있도록 알리고 있습니다.
윤희영 씨는 특히 저자가 북한에 있는 작가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북한의 실상을 전하려고 책을 썼다며 저자가 직접 쓴 서평을 소개해 달라고 보내왔습니다.
"북녘 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처럼 거칠어도 병인처럼 초라하고 석기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 다오.
윤희영 씨는 이 작가의 처절한 외침이 들리는 듯 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탈북 인권 단체를 돕겠다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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