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의 신분 상승, 신분세탁

0:00 / 0:00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최근의 북한 두만강 변 지역에 대 홍수로 인한 피해 지역 복구 작업이 어느 정도 복구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고생이 많으시죠 이런 상황에서 홍수 사태 당시 사망이나 실종자들의 확인은 아직도 어려운 힘든 일인데요,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등록변경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큰 물난리 같은 자연재해로 생긴 실종 이나 사망은 단순 한 작업이라고 하는 군요.

김: 어차피 수해가 난 것은 모든 주민들이 다 알고 있고 또 후에 수해 났을 때 사망했다고 하면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일이니까

북한 보안서 안전부 주민등록 과에서는 주민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탈북여성 김시연 씨와 함께 합니다.

김시연 씨가 북한 보안서 주민등록 과에서 일할 때는 굶어 죽는 사람들과 중국으로 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기록 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김: 제가 있을 당시에는 자연적인 큰 피해 사고는 없었지만 굶어서 죽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 중국으로 도망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모두 행방불명이나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주민등록에는 기록했습니다.

또 실종되었다 돌아온 경우에는 앞으로의 생활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꼭 사실 기록을 남겨야 했다는데요.

김: 당시 중국으로 갔다가 잡혀 나온 사람들은 처음에는 행방불명되었다가 다시 들어오면 중국으로 나갔다가 북송되어서 다시 들어왔다고 기록을 해요. 이렇게 등록을 했다 후에 이 사람들이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이런 것도 다 기록해야 하니까 다시 온 기록을 납깁니다.

북한에도 법을 어길 때는 재판을 하기도 했다는데요 주민등록과 관련해서 재판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로 신분 세탁 건이 제일 많다는 거죠.

김: 주민등록과 관련해서 재판을 하는 경우는 간부가 되고 싶은 데 신분이나 토대, 즉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서 간부가 될 수 없는 사람들 중에 돈은 있는데 권력을 쥐고 싶은 사람들이 주민등록과의 과장이나 부부장한데 뇌물, 달러나 엔화를 주고 원래 자기의 신분을 아예 말소 시켜버리고 새로 작성을 해서 새로운 신분으로 만드는 겁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신분으로 그렇게 만들어서 간부로 등용이 되거나 아니면 자녀들이 좋은 대학을 가거나 하는 식으로 제가 있었을 때도 그런 일이 다반사 이었어요.

보안서 주민등록과에서 한창 일하고 있을 당시 당중앙위원회 검열 이라고 해서 지도원이 검열 단속원으로 내려와 1년을 넘게 있으면서 집중적으로 안전원 들을 조사한 일이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들려줍니다.

김: 그때 우리 주민등록과 부부장도 해임 철직 되었거든요, 국가에 엄중한 죄를 지은 거죠 신분을 위조해 주었으니까 중대한 범죄로 보는 거죠 그럴때 재판 받고 수용소로 가거나 또 처형 되었거나 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때 보안서 사회 안전부에서는 숫한 사람들이 처형 되었고 그러다 검열이 끝나고 인민 보안성으로 바뀐 겁니다.

하지만 이때 갑자기 집중적으로 안전원들을 검열한 것은 다른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는데요, 서관희 사건이라고 해서 북한의 권력서열 26위인 71살의 서관희 노동당 농업담당비서가 1997년 9월 평양시내에서 공개 총살당했는데요, 서 비서는 농업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했던 황장엽 비서와의 친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죠. 하지만 주민들이 알고 있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데요,

김: 그때 당시 서관희 사건이라고 만들어, 중앙당 농업 담당의 서관희가 주체 농법을 무시하고 자기마음대로 농사법을 마음대로 했다, 이 사람의 잘못을 한 건 잡아서 딱지를 부치는 거죠.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차지 하면서 김일성 시절에 자기에게 불편했던 사람들을 제거 할 때 서관희를 시작으로 해서 조금이라도 미심적은 일이 있는 사람들은 다 처형했고 바로 이민 보안성 검열이 시작되어 인민 보안성 부분에서 자기 눈의 가시 같은 사람들을 얼토당치도 않은 일을 만들어 가지고 처형했어요. 이렇게 해서 온전히 김정일이 자기 사람들로 중앙당 간부로 채운 겁니다.

그러니까 서관희와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는 사람들을 다 검열 대상에 올려 조사를 한 것이라는군요

김; 주민등록부서의 부정과는 상관이 없지만 이일로 해서 사회부 안전성에 있던 대표적인 사람을 필두로 이 사람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그 아래 기관까지 다 치는 거죠. 또 그런 기관만 검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사회 안전원들이 주민들을 단속하고 검열할 때 너무 비인간적으로 대했다던가, 인권을 유린했다던가, 거기서도 인권이라는 말을 쓰는거에요.

아울러 서관희와 관련된 핵심 인물들만 처형 한 것은 웬만한 북한 사람들은 당시 김정일의 이런 행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물 타기를 한 것이라고 김시연 씨는 지적합니다.

김: 사회 안전원들을 검열하고 단속 할 때 너무 인권을 무시하고 사람을 막 때리고 구타하고 이런 식으로 했느냐 경중을 따져서 너무 심하게 한 경우 당시 우리 보안서에서도 11명이 제대 되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주민들을 단속하고 통제할 때 너무 심하게 했다는 죄명으로 해서 해임 철직되고 제대되고 그랬는데 우리 부부장은 주민등록 문서를 위조 한 것으로 해서 해임 철직이 되었어요. 이런 식으로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서 처벌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었던 주민들은 그동안 보안 원들이 주민들을 단속 하고 통제 할 때 너무 심하게 구는 보안 원들 분명히 있었고 또 당 했기 때문에 댱국에서 처벌을 한 것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고 설명합니다.

김: 못되게 구는 안전원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런 처벌을 받으면 속 시원해 했어요 그런데 이런 것을 김정일이 정말 주민들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위신을 세우고 주민들에게 못되게 구는 관리들을 자기도 이렇게 처벌한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더 그렇게 했는데 당시 못된 안전원들이 철직 되고 그랬을 때 그 사람들에게 당했던 주민들은 어유 잘됐다 시원하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실제로 안전부 내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다며 이는 서관희 사건을 잠재우며 내부 단속과 함께 주민들의 불만을 억누르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김시연 씨의 증언입니다.

김: 11명 철직된 사람들 중에는 사실 힘없고 뒤에서 받쳐 주는 배경이 없는 안전원들이 제대 되었거든요 안전원들이 위에서 통제하라고 그러면 다 거의 비슷하게 통제하고 그러는데 특히 그중에는 못되게 노는 사람들도 있지만 철직된 사람들 중에는 억울하고 불쌍하게 철직된제사람들이 있었어요, 저희는 내부 사정을 아니까 그중 너무 열심히 하다 그렇게 된 건데 처벌까지 받는 것은 안됐다 이런 식으로 얘기한 사람도 있었는데 김정일이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희생된 거죠. 결국은 주민들을 많이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겁니다.

북한에서도 인권은 있다는데요. 이는 최고 지도자가 주민을 생각한다는 것을 앞세워 정당한 재판이나 처벌이 아니라 힘이 없는 안전원들이 피해자로 또 다른 인권 사각 지대 주민들의 몫 이라고 강조합니다.

김: 처벌된 사람들 중에서 너무 힘이 없다 보니까 그보다 더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은 살아남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힘이 없는 사람 중에 조그마한 비리로 걸린 사람들은 처벌이 되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김시연 씨는 그 예로 안전부에서 일하던 남편이 사망해 혼자된 여성이 뇌물을 주고 좋은 곳으로 배치되어 그곳에서 착취한 뇌물을 안전부의 더 높은 간부들에게 바치며 불륜 등의 온갖 비행을 저지르다 이때 검열이 시작되면서 사표를 내고 빠져 나갔지만 불륜에 연루된 간부들은 아무 일 없이 검열에서 제외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김: 저희 안전부 정치 부장은 혼자된 젊은 여성과 연애를 한 20년 가까이 했어요 남편이 보안서에서 일하다 사망 하고 32살에 혼자되어 우리 안전부로 배치되어 왔는데 그 여자하고 계속 불륜관계 였어요 당시 검열이 내려 왔을 때 도든 사람들이 이번에는 정치부장과 그 여자가 쫓겨 날거라고 모두 생각을 했는데 정치부장은 아무 일 없던 듯이 지나간 거죠. 그러니까 힘이 있으면 이렇게 다 무마가 되는데 힘없는 안전원들이 처벌된 경우가 안전부 내에서도 많이 있었어요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