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탈북시인 이가연씨 시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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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은 올 겨울에도 주민들이 먹을 가을걷이 양식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유엔의 식량 농업기구와 세계 식량 계획이 공동으로 발표한 내용을 저희 자유아시아 방송을 통해 보도해 드렸는데요, 북한의 식량 상황은 짧은 기간에 나아지기는 어렵다며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이가연: 북한에서는 1년에 쌀밥 한 번도 배불리 못 먹는 세상인데 한국에서 매일 쌀밥을 먹으면서 고모부 생각이 제일 먼저 났어요.

2011년 중국으로 탈출했다 동남아 3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간 이가연 씨, 지금은 대학에 다니며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 시집 '밥이 그리운 저녁'을 도서출판 마을에서 출간 했는데요 이 시집에는 자신이 20여 년간 북한에서 살았던 때의 고난과 슬픔 그리움 등을 시로 옮겨 놓았습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 이가연 씨의 시와 함께 시에 담긴 의미, 그 배경 등을 들어봅니다.

시 제목: 고모부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 청개구리라고 했다 올챙이로 태어나서 반생을 살기도 전에 숟가락에 먹힌다. 간에 소식이 올적마다 허리를 졸라맨다 한낮에도 어둠을 만들어 준다 해바라기 몸매를 가진 개구리, 먹구름에 꽁꽁 묶여 하루 온종일 울지도 못한다. 감탕 내 나는 개구리도 없어 발자국 소리도 없어 고모부는, 고모부는 숨졌다. 볼수록 손에 넣을수록 눈에 넣을수록 눈물 구멍이 막혔다.

이가연 씨는 북한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황해남도 해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굶주림과 어머니의 병고로 도움을 청하러 국경지대에 살고 있던 고모님 집으로 갔습니다.

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북한사람 300만이 굶어 죽었잖아요, 그때 고모부네 가족도 상당히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어요. 옥수수 가루도 없어서 쌀겨나 풀뿌리 피나무 껍질 이런 것들을 먹고 살았거든요. 그 때 고모부가 먹을 것이 없으니까 개구리를 잡아다 몸뚱이는 다 떼어내고 다리를 구워 먹고 소금도 없어서 그냥 맹물에 삶아서 먹었어요. 그 개구리마저도 겨울이면 다 땅 속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런 개구리마저 없어서 고모부가 끝내 돌아가셨거든요.

'감탕 내 나는 개구리' 냇가나 갯가에 깔려있는 흙 내음 이라는 뜻이죠. 이런 개구리 냄새까지 세심하게 표현했습니다. 고모님 집에 가 보니 역시 거의 굶다 시피 하던 고모, 고모부의 대한 안쓰러움과 그리움으로 이 시를 쓴 겁니다.

이: 다른 사람은 그래도 풀뿌리라도 먹고 살아 계시는데 고모부는 40살 까지 사시면서 쌀밥 한 그릇을 한 번도 드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것이 제일 가슴 아파 고모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 시를 썼어요.

고모님을 살아 계신다는데요.

이: 고모는 지금 계시고요 농사지으면서 살고 계세요.

그런데 요즘은 고모부가 살아 계실 때 고난의 행군 때 보다는 식량사정이 좀 낫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고모 집을 떠나 중국으로 탈 북 할 때 만해도 나아진 것이 별로 없는 어려운 생활이었다는데요 그런 생활을 뒤로 하고 왔다는데요...

이: 제가 2010년도에 떠날 때 고모 네는 그때 까지만 해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고모 네가 계신 곳이 곡장지대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농사가 되긴 하지만 거의 다 평양으로 올려가고 군량미로 실어가기 때문에 고모 네는 계속 어려운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정말 힘들게 사셨어요.

가연 씨는 언젠가부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자기가 느낀 것을 메모를 통해서 시로 쓰기 시작했는데요, 시가 바로 자신의 원동력이라고 하네요.

겨울나무

낮은 아파트 옆에서 겨울나무가 가시 기침을 한다
붉은 피를 토하는 고통의 나무들
바싹 마른 목으로 쒸~~쒸 산을 찾는다.
누가 그들의 숨통까지 아프게 만들었을까?
길거리에서 아파트에서 질병을 키우며
저 저주스러운 평양의 하늘을 보며 할 말을 잃고
서있는 겨울나무여, 누가 그들을 아프게 만들었나,
누가 그들을 죽게 만들었나.

북한의 어렵고 고통스러운 실상을 겨울나무에 비유를 했다는군요. 이렇게 아프고 힘들었던 북한에서의 지난 시절을 잊을 수가 없어 겨울나무라는 시를 쓰게 되었는데요, 어떤 배경인지 들어 보죠.

이: 저는 사실 농촌에서 살았거든요 정말 어려운 사람들은 농촌의 집도 빗물이 새고 막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당 간부들이나 권력자 들은 좋은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제가 겨울나무를 비유한 것은 아파트 밑에 보면 간부들 집 앞에 나무들이 서 있어요. 아파트는 한국도 보면 좋은 나무를 심는데 북한도 간부들 아파트 에는 좋은 나무들을 심거든요, 그런데 북한에는 그 나무들이 큰 나무들이다 보니 잘 뜨지를 못해서 나무들이 뿌리가 잘리고 죽어가거든요.

이가연 씨의 어린 시절 꿈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는데요, 배불리 먹고 살며 예쁘고 싱싱한 화분을 키울 수 있는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최상의 꿈이었지만 그 꿈을 북한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북한의 권력층이나 간부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 아파트에 심겨진 나무를 본거죠. 아파트의 조경을 위해 북한 권력층 아파트에는 커다란 나무를 떠다 심는데 이 나무들이 옮겨 심는 과정에서 뿌리가 잘려나가 숨통을 끊어 놓았다고 표현합니다.

이: 한국에서는 아파트에 심을 나무를 뜨면 정성껏 뜨잖아요, 기계 장비들이 좋아서 그런데 북한에서는 그런 기계 장비들이 없는거에요. 그래서 큰 나무를 뜰 때 뿌리가 다치지 않게 떠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잘 못해서 뿌리가 다 잘린 상태에서 뜨다 보니까 아파트 화단에 심으면 죽는 나무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 권력층, 잘 사는 사람들의 집인데도 불구하고 그 나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생각하면서 이 시를 썼어요.

뿌리가 잘린 체 겉모양만 멀쩡하게 보이던 나무는 뿌리가 성치 못해 시름시름 앓다 결국 하나 둘 죽어가는 것이 마치 북한의 주민들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 북한의 농사꾼들이 힘들게 살아가면서 병들이 많이 걸려요. 의료 무상 치료제라고 하지만 병원에 가면 진단은 해주어도 약을 안주거든요 아니 못 주는거에요. 자기돈 주고 사야 되요. 그래서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잘 사는 권력층들의 아파트에 심어 놓은 죽어가는 나무들과 비교를 하면서 썼던 글입니다.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가연 씨의 꿈과 소원은 이때부터 배부르게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원으로 바뀌었고 그 소원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결심과 의지로 고향을 떠나면서 편지 한 장도 남기지 못한 채

살얼음 낀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이가연 씨는 이렇게 시로 전합니다.

'살얼음 낀 강판 위에서 두발로 걸었다 한 손에 눈물을 쥐고 다른 한손에 폭탄을 붙잡았다'.

탈출과정은 폭탄을 잡은 것처럼 비장했던 것이었죠. 이가연 씨는 한국으로 들어간 지 1년 만에 대한문예 신문사를 통해 등단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에 시 부문 통일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국제 문학인 단체인 PEN 클럽, 탈북 망명 작가 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