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의 탈북 여성도 폭언과 협박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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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최근에 북한의 선동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서 북한인권과 민주화 운동을 위해 활동하는 탈북자들에 대한 비난과 테러, 협박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이런 테러를 당한 탈북자들이 주축이 되어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 대회를 준비 하고 있는데요, 테러와 협박을 당하고 있는 여러 명의 탈북자 중 여성도 물론 포함되어 있는데요,

김: 그년이 그 나이에 남조선에 가서 매춘행위와 돈에 뒤집혀서 야단한다고 그렇게 썼더라고요.

한국의 민간단체 북한민주화 위원회 김영순 부위원장은 북한당국이 욕설은 물론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붓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오고 한편으로는 가련하고 안쓰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영순 부위원장은 요덕 수용소를 나와 늦은 나이인 65 살 때 국경을 넘었고 67살 때 남한으로 들어간 지 11년째입니다. 그동안 그는 세계 각국으로 다니며 북한의 인권실상, 요덕 수용소 실상을 증언하며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자신을 비난하고 협박하는 내용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는군요.

김: 저는요 우리민족 끼리에서 그 내용을 보고 한참 호탕하게 웃었어요. 왜 그런가 하면 저 이제 한 달 있으면 79살이 되거든요 8순이 다된 고령이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우린민족 사이트에 넣어서 땅 속 깊이 까지 찾아서 갈기갈기 찢어 칼 탕을 쳐 죽인다는 그런 누추한 인간 최하의 발언을 한다는 그 자체를 저는 아주 통쾌하게 웃었어요.

북한의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연재 기사를 통해 탈북 운동가들에 대한 북한식 인민재판을 벌이고 있다고 그는 지적합니다.

김: 개개인의 내용이 다 나왔는데 저한테는 뭐라고 했느냐 하면 유복녀로 태어난 것을 중국에서 자기네가 북한에 데려다가 예술학교를 장학생으로 졸업시키고 조선인민군 협주단 배우로 당의 배려를 크나크게 받은 그년이 그 나이에 남조선에 가서 매춘행위와 돈에 똥 따리 떠 뒤집혀서 야단한다고 그렇게 썼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매춘행위를 한 것도 없고 돈에 똥 따리 뜬 것도 없고, 저의 직업은 정확히 얘기를 하더라고요.

김영순 부위원장은 인민군협주 단의 무용수로 활동하다 그만둔 뒤에 여행자 상점에서 근무하던 중 김정일의 당시 내연녀 성혜림을 안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10년간 온 가족이 요덕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김영순 씨는 성혜림과 친구였기에 고초를 당한 것인데요, 원래 그의 집안은 북한의 애국 열사의 가정이었다고 하는군요.

김: 북한 자기네들이 김일성의 선물을 받은 애국열사의 가정을 그처럼 요덕 수용소에 보냈기 때문에 오늘의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지 정말 조선 노동당에 충실했죠. 왜 그러냐 하면 예술가잖아요, 예술가는 당의 북한의 선동선전자 역할을 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거든요. 그런데도 그렇게 정말 듣기 거북하게 욕을 하고 협박 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니까 매춘 행위로 모략한 것으로 인정하고 전 그거 하나도 개의치 않고 살아요.

우리민족 끼리를 통해 북한은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의 활동가들을 마구잡이로, 심지어는 북한의 남아있는 가족 까지 동원해 폭언과 위협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중의 하나라는 것이죠.

김: 북한은 자기네들이 배려해준 것 만 말하고 배려를 하다 조금만 마음이 안 들면 바로 내치고 오늘의 충신을 내일의 배신자로 몰아 죽음으로 모는 것으로 인민들을 각성시키는 체제를 유지 하지 말고. 우리 대한민국은 김일성을 칭찬 하니 붙들어가요 대통령을 곁집 강아지 나무라듯하니 붙잡아가요? 여기는 5천만이 모두 잘난 나라잖아요, 능력 있으면 기회 있는 나라잖아요, 자유민주주의가 여기에 우월성이 있는 겁니다. 인간을 귀중히 여기는 나라, 어쨌든 검찰에서 무엇이 제기되면 우리는 북한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성격이 급해요, 저거 빨리 취급해서 콱 없애면 되겠는데 왜 저렇게 오래 주물럭거리나 이런 말을 하다가도 아 자유민주주의란 바로 이렇구나 하는 것을 느끼거든요.

김 영순 부위원장은 부모가 수용소에서 모두 영양실조로 숨졌고 직계 가족도 세상을 떠났다고 증언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남은 인생을 대한민국에 와서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 고 있다고 전합니다.

김: 내 인생을 자유대한민국에 와서 11년 동안 사는 동안에 자유를 만끽했기에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고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의 직계 가족은 다 죽고 없는데 그런데 괜찮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북한이 그들과 동거생활을 했는가, 같이 거래 가 있었는가,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이런 것을 보고 척결하고 처단합니다. 내가 북한에 고위층이 있다면 요덕수용소에가 있는 동안 10-15년을 떨어져 있었잖아요. 평양을 떠나서, 그러니까 그 떨어져 있었던 것을 중요하게 봅니다.

하지만 계속 연락을 하고 살았다면 고위층의 친척 이력에서 파 내쳐진다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핏줄이고 친척의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호적을 제거해 아예 없애 버린다고 하니 사람으로서는 할 일이냐고 반문합니다.

김: 만약 같은 친척으로 거래가 많았고 형제간이면 거래가 많을 수 가있잖아요, 모르고 살 수가 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을 척결 할 때는 가족 이력에서 파 내친다는 겁니다. 제거 해 치우는 거예요.

북한이 이렇게 테러 협박을 하는 탈북자들은 김성민 자유북한 방송 대표, 강철환 북한전략 센터 대표, 조명철 새누리 의원 등 여러 명입니다. 김성민 대표는 우선 일본 도쿄에서 진행되는 북한인권 주간에 참가해 북한의 테러와 협박행위를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결의 대회를 열고 내년에 미국에서 열리는 북한자유주간 행사에서 김정은 정권의 만행을 고발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영순 부위원장은 국내외 어떤 행사든 자신이 담당할 몫이 있다면 어느 곳이든 간다며 지난달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할 때도 유엔을 방문해 눈물로 증언한 것은 자랑스럽다고 말합니다.

김: 탈북자 인권 활동가로서는 제일 나이를 먹은 사람이 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숨 쉬는 동안 대한민국에 북한을 알리는 일은 열심히 하고 저는 해외에서 부르면 가고 지난번에도 유엔의 북한 결의안 채택하는데 갔다 왔잖아요, 그레그, 미국의 북한인권 위원회 사무총장님이 저를 초청해 주었는데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마이클 커비 위원장과 유엔 북한인권 특별 보고관인 마르주키 다루스만 있는데서 첫날 증언을 눈물로 호소했고요.

그는 이어 북한은 50년대 정전 직후 정치범 수용소를 만들어 그곳에서 죄명을 씌운 무고한 사람들이 지금도 죽어가고 있고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김: 북한이 정전직후 정치범 수용소를, 수령을 옹위하는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을 위해서 요덕 수용소를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의 요덕 수감자가 혁명화 구역에 있다는 것, 정말 죄 아닌 죄로 다른 나라 같으면 절대 죄가 아니다 라고 한 것으로 거기서 식구가 다 죽고 살아나온 사람이 저고, 또 70년부터 반동으로 아마 대한민국에 온 것은 저하나 일 것 같다고 얘기 했어요.

그는 이어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다 고향을 등지고 온 탈북 젊은이들에게도 어머니 같은 심정으로 남한에서 잘 정착해 성공적으로 살라고 늘 당부합니다.

김: 탈북자가 한 명 두 명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거대한 숫자에 이르기 까지 한국에 왔습니다.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자유민주주의를 접했으면 나는 북한의 정치적인 것을 모른다면 열심히 돈 벌겠어요. 나는 67에 왔기 때문에 돈을 못 번거에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나라는 돈 없이는 못 살아요. 돈이 필요한 것과 황금만능을 엄연히 분별되어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여기서 열심히 살아 돈을 벌면 여기 일당 5만원 8만원도 많아요. 3디 업종을 탈북자들은 안 해요, 다문화 가족은 합니다.

3디 (Three D)업종이라는 것은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로 탈북 젊은이들이 이런 일을 기피하고 있지만 동남아등 외국에서 온 젊은이들은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돈을 벌고 있다며 탈북 탈북자들이 잘 정착해야 성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아직도 정착을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탈북자들을 볼 때 안타깝다고 하네요.

김: 우리가 자유세계에 와서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잘 살고 있으면서 이것만 분별을 해도 우리의 성공이 아니냐. 열심히 살라고 얘기합니다. 여기의 탈북자들이 그런 것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북한에 간 사람이 많아요.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있고 자유민주주의란 본인이 열심히 일해서 지금 한국은 다 70여년 시장경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에요.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는 게으름뱅이 양성소거든요 부의 창출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회주의 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분별력 있게 보고 자기를 구출할 줄 알아야죠.

김영순 부위원장은 이제 탈북자들에게 문화 계몽사업이 필요한 때라며 탈북자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남북 하나재단'에 탈북자들을 위한 계몽사업 제의 했다는군요.

김: 탈북자들이 두만강을 건널 때 그 누구의 충고도 받지 않고 풀어놓은 송아지다, 그리고 반딧불의 자유민주주의를 중국에 와서 터득했기 때문에 우리가 탈북자 문화 계몽사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