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 입니다.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결의안을 만장 일치로 채택했습니다. 이 내용은 북중 교역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북한산 석탄 수출이 그동안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로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 제재 논의의 쟁점이 되어왔던 부분이었죠. 신규 제재에 따르면 북한의 석탄 수출은 2017년부터는 그동안 수출 했던 선에서 38% 그러니까 62% 가 줄어드는 셈 인데요, 이번 제재가 엄격히 시행 된다면 주민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런지요?
김: 중국에 판매를 맡은 기업체 사람들이 권한을 행사하고 거기서버는 돈을 국가에 바치고 자기 뒷주머니에 넣는 식으로 나가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공급은 절대로없어요.
보안서에서 일했던 탈북여성 김시연 씨는 과연 주민들에게 공급이 가능할지 의문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 여성시대 에서 얘기 들어보죠.
북한주민들의 땔 감 실상은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비교적 괜찮았다고 하는데요 먼저 그 때로 가보죠.
김: 그 때는 해당 기업소 마다 공장이 그나마 돌아 갔고 모든 남성들은 회사에 소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직장에서 석탄을 나누어 주었어요 겨울되면 1년치 석탄을 자동차에다 싣고 다니면서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거든요 그리고 나무도 불소시개 감으로 나누어 주었고요 그 때는 산도 벌거숭이 산도 아니었고 정상적인 석탄을 공급 받았기 때문에 권력이 없는 노동자 들은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군 부대나 간부들에게는 땔감을 넉넉하게 공급해 주었어요.
최근에는 가스로 취사를 하는 렌지가 들어가서 편하게 쓰는 층들이 있지만 김시연 씨가 결혼 했을때 90년도 초, 시 아버지 덕분에 그때 이미 가스 레지를 썼다고 하는군요.
김: 최근에는 가스렌지가 들어온다고 해요 돈 있는 사람들은 가스 통이 배달이 되어서 집에서 사용하는 집들이 있다고 해요. 제가 결혼을 해서 시아버지가 도 당에 계셨는데 그때 도 당 경리부에서 가스를 배달해 와서 밥을 해 먹었는데 그 때가 90년도 초 였거든요.
그런데 각 가정에서 공급받은 석탄은 어떻게 사용했는지 얘기 들어봅니다.
김: 북한에서는 갈탄이 있고 무연탄이 있어요 무연탄은 가루로 나오는 탄이고 갈탄은 덩어리 석탄인데 무연탄을 19공탄으로 만들어서 기계에서 발로 찍어요 그것을 건조 시켜서 쓰고 갈탄은 무연탄 보다 쓰기가 좋고 이산화 탄소가 갈탄에서는 적게 나오거든요 무연탄은 이산화 탄소가 많이 나와서 무연탄 연기 마시고 자다가 죽은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데 갈탄은 거의 그런 경우가 없어요.
당시, 탄광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때인데다 북한에 석탄 매장량이 많았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 교류가 활발 했기 때문에 설비도 많이 사들여 광산에서 기계로 채굴을 했기에 석탄 공급이 원활한 상황이었다는데요, 그런데 동유럽이 무너지면서 북한도90년대 초부터 경제상황이완전히 악화되고 사용하던 설비들이 고장 나면서 주민들이 땔감으로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김: 석탄을 제대로 캐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석탄 공급이 제대로 안되니까 사람들이 산에가서 아무 나무나 베어 겨울마다 불 때고 나무가 없어지니까 애 솔가지 까지 뜯어 말려서 불을 때니까 산들도 모두 벌거숭이가 된 상황까지 오게 된거죠.
주민들이 석탄을 공급받을 당시 취사를 하고 불을 따뜻하게 때니까 불편한 점은 없었는데 석유곤로 는 언제 나왔는지요?
김: 갈탄을 쓰고 석탄을 잘 공급받고 했을때 석유곤로는 있었어요 그때는 동유럽 국가와 교류가 있었으니까 원유 수입이 원할 했어요 일반 노동자 가족들은 석유곤로를 쓰기가 힘들었지만 북한은 그때 석유곤로는 만들어 팔고 그랬어요 여름에 집에서 불을 때면 집이 더워지니까 밖에서 석유 곤로를 썼어요.
이번 유엔 안보리의 경제제재 강화로 석탄 광물의 중국 수출이 줄어든다면 주민들에게 공급이 가능 할지 궁금한데, 그래도 중국의 수출을 지속될 것이라고 김시연 씨는 전합니다.
김: 석탄을 캐는 데 종사하는 사람들도 공식적으로 공급을 해 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네가 일하고 퇴근시간에 배낭에다 석탄을 가지고 퇴근해요 그리고 석탄을 중국에다 팔게 되면 판권을 갖은 무역 업자가 다 틀어쥐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석탄을 중국에다 판매하는 것을 맡은 기업체 지배인들이 거기서 생기는 돈을 국가에 바치고 자기 뒷주머니에 넣는 등 이런 식으로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공급을 할 수 없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이 탄광지역에서 석탄 케는 그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줍던지 아니면 몰래 가져다 사용을 하는일이 많았다며 땔감이 식량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강조 합니다.
김: 기차 빵통으로 석탄을 실어가다 역에 섰을때 막 뛰어 올라가서 석탄을 베낭에 담아 뛰어내려요 그러다 기차가 출발하게 되면 사고가 나 바퀴에 다리가 잘리기도한 사람들도 많았고 집을 따뜻하게 할 원료가 없으니까 얼어죽은 사람들도 많았어요. 땔감이 먹는것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로 산 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거기에 그나마 나무가 남아 있어 나무를 해다 몇십리 길을 걸어서 조그만 아이들은 수레에다 나무를 싣고 며칠 씩 걸어서 도시로 나오는 거죠.
많은 탈북자들은 지금도 국가에서 주민들에게 땔감을 공급해 주지 않고 중국으로 헐값에 팔아 넘기는 상황을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김: 북한의 자원이 중국에 너무 헐값으로 팔려 나가는 것이 한국에 와서도 제일 가슴이 아팠어요 차라리 우리 한국과 교류를 해서 가격을 더 주고 우리가 사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엄청 헐 값이거든요 그런데 중국이 석탄 철광이고 히토류 귀금속 광물들을 헐값이 사가는 것이 탈북자들에게는 우리의 재산이 이렇게 빠져 나가것이 너무 가슴아파요.
이렇게 광물을 헐값에 넘기면서 식량이나 다른 물품을 들여 오기도 하겠지만 주로 현금으로 받아 일부는 착복 하지만 거의 상부로 올라간다고 하네요.
김: 무역업자 또 해당지역 맡은 기업소 책임자들 이 뒷주머니를 엄청 차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직책을 맡는 것이 완전히 하늘의 별따기로 이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뇌물 작전도 많이 쓰고 이렇게 영업권을 따가지고 팔아서 뒷 주머니에 채우고 상부에 상납하고…39호 실로 직접 돈이 들어가니까 아무리 경제 제재를 한다고 해도 주민들 에겐 아무런 혜택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땔감, 석탄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한 주민들의 고생은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안타까워 합니다.
김: 전부다 상부로 들어가고 영업을 책임진 사람들이 챙겨먹고 차라리 이런 것을 하지 않으면 주민 개인들이 석탄을 삽으로 캐고 방법을 다 동원해서 땅 굴을 파고 들어가 석탄을 캐내 손 수레에 싣고 나와 도시에 팔고 이런 식으로 살았어요 국가의 관할 지역이 아닌 곳에가서 석탄을 케 내서 파는 것은 지금도 할거에요 그런데 국가에서 이 지역은 개인이 건드릴 수 없다면 더 멀리 들어가야 되고 주민들은 더 살기가 힘들어 지는 거잖아요.
이렇게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캐 오는 석탄은 지금도 장마당에서는 유통이 되기 때문에 그나마 도시 주민들이 살 수있다고 말합니다.
김: 주민들이 그렇게 가져다 장마당에서 팔아야만, 도시 주민들은 땔감이 전혀 없잖아요 주변 산에는 나무가 전혀 없으니까 그것을 사가지고 땔 감으로 쓰고… 서민들은 서민들끼리 상부 상조 하며 살고, 국가는 국가대로 모든 재산을 자기네들 주머니에 차고 헐값으로 중국이 팔아 버리고 그러니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는거에요 김정은 독재 정권이, 오로지 자기의 권력을 유지 하는 것 밖에는 없는 겁니다.
김시연 씨는 이런 사정을 너무 잘아는 탈북민들은 미국이나 유엔에서 경제 제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 합니다.
김: 39호 실로 직접 돈이 들어가니까 정당 한겁니다. 그나마 제재를 안한다면 중국에 그리고 김정은에게 좋은 노릇시키는 거죠.
이미 주민들은 힘 닿는대로 땔감을 마련 했을 것 이라고 하는데 겨울을 나기에 양적으로는 물론 질 적으로도 형편 없을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김: 마른풀 부터 옥수수베고 남은 옥수수대 볏단 등, 불을 땔 수 있는 것은 모두 거두어 모아요 그리고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소나 짐승들의 볏짚 먹은 배설물을 모아 말려서 불을 때고 그런 식으로 자급자족하는 거죠.
김시연 씨는 한국에 와서 탈북민들의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아파트 배정을 받아 집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먼저 한 일이 있었다는데요.
김: 저는 그때 집에 들어서자 마자 수도물 부터 틀어 보았어요 더운물 찬물 다 나오고 방이 얼마나 따뜻한지, 딸하고 둘이 앉아서 "향미야 얼마나 좋은가 봐라 이렇게 집도 생기고 더운물 나오지 아무짓도 안했는데 방이 이렇게 따뜻하고 얼마나 좋으냐" 그러면서 어머니 생각이 나서 ….
지금도 이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하네요,
김: 어머니가 겨울이 되면 땔감이 많지않아 구들이 차니까 동복을 다 입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누우세요 잠자리 드실때, 대신 이불은 두껍게 만들어요 북한 사람들은 목화 솜 이불은 비싸서 못하고 인조 솜으로 무게가 엄청 무거운 나쁜 솜인데 그 이불도 두 껍게 만들어 깔로 덥고 자는데 처음에 들어갈 때 너무 차가우니까 옷 입고 들어갔다가 몸이 조금씩 녹기 시작하면 동복 하나 벗고 겉옷 하나 벗고 이불 밑으로 내보내고…어머니가 잠드실 때 마다 그러시던 기억이 나서 처음에는 엄마 생각이 나서 밤마다 많이 울었는데…..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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