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10여년이 넘게 탈북자 구출 활동을 펼치는 미국의 서부 워싱턴 주 시애틀의 윤요한 목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초청해 최근 탈북자들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습니다. 윤 목사가 구출한 탈북자들의 모임인 고향선교회가 주최한 크리스마스 축제는 타코마, 시애틀에서 많은 한인 동포들도 함께해 따뜻하고 의미 깊은 시간을 보냈다고 윤 목사는 밝혔습니다.
윤 목사
: 크리스마스를 모르던 분들이 자유 땅에 와서 맞이하는 성탄절, 첫 번째로 맞이하는 탈북동포도 있었어요.
여성시대 오늘은 탈북자들과 함께한 미국의 크리스마스 축하 모임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2년째 탈북자를 구출하며 선교활동을 하는 윤요한 목사는 지난 2005년에 중국에서 탈북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공안에 잡혀 1년3개월 동안 감옥살이하다 추방당했습니다. 윤 목사는 2002년 당시 처음으로 중국 곳곳에 숨어 있던 탈북자들을 제삼국까지 무사히 탈출시켰습니다.
윤 목사
: 첫 망명자들 32명이 연길, 심양, 청도에 숨어있던 탈북자들인데 집을 얻어주어서 모이게 하고 나는 비행기 타고 이 도시 저 도시 다니면서 성경 말씀 가르치며 먹을 것 주면서 이 사람들을 제3국으로 탈출시키기로 계획 세웠죠. 중국 남단까지 기차를 태워서 전부 집결시켜 라오스 국경으로 넘겼어요. 거기서 배 타고 자동차 타고 걸어서 라오스 대륙을 횡단해서 태국에 와서 태국에서 기차를 타고 방콕으로 가서 대한민국 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신청을 했어요. 유엔 고등판무관 실을 통해서 난민자격증을 얻어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어요.
이 탈북자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고향 선교회를 만들어 탈북자들을 돕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구출된 탈북자들이 하나 둘 씩 선교회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윤 목사
: 이렇게 산 것은 우리만 살라고 한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굶어 죽어가는 내 식구 친척들을 구해야 할 책임이 있지 않느냐 우리가 북한 선교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선교의 이름을 고향선교로 하자고 해서 고향 선교회가 된 거에요.
윤 목사가 구출한 탈북자들은 이제 모두 180명이 넘었다고 하는데요, 물론 이들 중에 여성 탈북자가 많습니다.
윤 목사
: 모두 합해서 182명입니다. 탈북자 중 여자가 많아요. 왜 그러냐 하면 남자들은 전부 군대에 끌려가 10년 동안 있으니까 여자가 더 많아요.
고향 선교회는 탈북자 선교는 물론 남한 미국 동포의 정성어린 선교 기금으로 계속 탈북자들 도우며 올해는 탈북동포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축제에 한국에서 탈북자 4명을 초청했다고 전합니다.
윤 목사
: 크리스마스가 무언지도 모르고 살던 저들 3대 세습 독재 김정은까지, 그 속에서 3백만 명씩 굶어 죽던 이들이 자유를 찾아 신앙을 찾아서 성탄절을 맞이하는데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을 제일 큰 명절로 지켰는데 성탄절이 무언지도 모르던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자는 의미에서 선물 보내기 운동을 하자는 목표거든요.
타코마, 시애틀 두 지역에서 한인동포 250여 명이 참석해 탈북자들을 격려하고 음식도 나누며 선물도 전달했다고 윤 목사는 흐믓해합니다.
윤 목사
: 그들이 북한 실상에 대해 간증도 했고 오대원 미국선교사인데 한국말을 잘해요 한국말로 성탄 메시지도 내 보냈고 이제 자유 땅에 와서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 알려주니까 의미가 있었고 또 선물도 150달라짜리 소니 카메라를 탈북동포에게 주었어요. 아주 기뻐하더라고요.
미국의 동포들이 탈북동포들과 즐거운 자리를 함께하며 북한 생활, 이민생활을 서로 얘기하고 사랑은 전달하는 일 등은 북한으로 전해지면서 외부세계의 자유로운 소식이 탈북자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윤 목사는 강조합니다.
윤 목사
: 자기 가족들에게 전화 통화가 됩니다. 한국에서도 되고 중국에서도 됩니다 다만 몰래 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통화는 돼요. 긴 말들은 못하지만 한마디라도 좋다, 우리가 알고 있던 우리가 세뇌받았던 세계와는 다르다 ‘한국이 거지가 많고 데모만 하는 남조선 괴뢰’라고 했는데 남조선 동포들도 얼마나 자유롭게 신앙생활, 경제생활도 하고 인권도 보장된 생활을 하는지 모른다는 말을 자신의 친척들에게 해주고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탈북자들이 쏟아져 나올 때 가 있다는 거죠. 나는 목표가 5만 명만 나오라 그겁니다. 당 간부들도 술렁술렁하거든요. 탈북자로 인해서 한반도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윤 목사는 9:30 우리가 탈북자들을 우리의 사랑으로 또 예수님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해 주는 일이 바로 나라를 위한 것이고 북한에 사는 굶주린 동포를 살리는 일이라고 확신하기에 탈북자 구출, 탈북자 선교는 멈출 수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2만 명이 넘은 탈북자들이 머지않아 5만 명이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윤 목사
: 2만 명이 되기까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5만 명이 되는 것은 5년 안에 혹은 2-3년 안에 탈출할 수 있어요. 2만 명의 탈북자들이 다 자기네 가족을 데려온다고 해도 5만 명이 되기는 쉽습니다.
그는 이어 지금도 끊이지 않고 구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지만 경제적인 여건으로 다 감당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합니다. 윤 목사: 지금 북한에서 중국까지 데려오는 데 한국 돈으로 100만 원, 천 달러가 넘어요. 브로커, 중개인을 통해 안전하게 오는 길인데 보초 서는 인민군들에게 돈을 엄청 주어야 해요. 중국으로 온 다음에 3국으로 넘길 때는 1.500달러가 들어요. 올해도 내가 한국에 12명을 데려왔어요.
윤 목사는 자신이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훨씬 적은 금액으로 탈북자들을 한국까지 데려올 수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중개인 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을 동원해 구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고향선교회에서 꾸준히 모금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 탈북자들을 데려올 수 있다며 탈북선교가 앞으로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어느 곳이든 정착이 빠른 여성들의 활동도 윤 목사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윤 목사
: 여성들의 정착이 더 빨라요 그것은 탈북동포들만이 아니라 어디나 여성들이 활발하게 더 잘하는 것 같아요. 탈북자 선교가 앞으로 남북관계도 그렇고 통일을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윤요한 선교사는 중국에 숨어 사는 탈북자는 전같이 많지는 않다며 이는 모두가 휴대전화, 손 전화 때문이라며 손전화로 해서 많은 정보를 전할 수 있어 이제는 탈북자가 중국으로 탈출하는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하네요.
윤 목사
: 지금은 전화가 있기 때문에 그때는 탈북에 대해 전혀 캄캄한 그런 때였어요. 들은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이 무작정 있다가 굶어 죽느니 나가다 죽어도 죽자 이왕 죽을 것 이래서 그때는 나온 거에요. 지금은 전화로 가만히 있으라거나 언제까지 준비하라거나 돈을 보낼 테니 언제까지 기다려라, 그러니까 북한 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집에서 기다리면 이미 탈북 한 식구들이 돈을 보내 중국으로 내와 중국에서 브로커를 시켜 제삼국으로 넘겨요 그러니까 중국에 숨어서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는 거죠.
이번에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 탈북자들은 한결같아 모두가 놀라며 감탄하는 표정이 역력해 조그만 관심과 사랑이 이렇게 탈북동포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한인 동포들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고 윤 목사는 덧붙였습니다.
윤 목사
: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 따뜻하게 초대를 해주셔서 뭐라고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감탄을 하더라고요. 우리들을 파티에 초대해 주고 많은 사람이 우리를 환영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며 놀라는 표정이었어요. 영사님도 격려사를 해주고 워싱턴 주 정부 상원의원 신호범 의원도 와서 자기도 옛날에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며 자신의 과거사를 얘기하자 탈북자들이 큰 격려를 받았어요.
신호범 의원은 4살 때 고아가 되어 6.25 때 미군 병사의 하우스 보이를 하다 19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습니다. 미국에서도 신 의원은 온갖 좌절을 이겨내고 워싱턴 주 정부 상원의원으로 워싱턴 주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게 하였고 소수민족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 탈북동포들이 받은 위로와 격려는 그들이 자유의 땅에서 살아나갈 때 큰 힘과 용기가 될 것이라고 윤 목사는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