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한해가 다해가는 크리스마스 절기입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비록 기독교 종교를 갖지 않아도 크리스마스는 지구촌의 축제로 즐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유일하게도 크리스마스 전날인 12월24일을 전혀 다른 의미의 명절로 보내고 있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선출된 날인데다 김정일을 낳은 김정숙생모의 생일이기 때문인데요, 북한 주민들에게는 지구촌 축제날이 힘들고 고달픈 날이기만 합니다. 김정숙을 위한 충성의 노래모임에 이어 김정일을 위한 충성 결의대회까지 치러야 하기 때문이죠.
김: 북한에서는 그렇게 김정일이나 김정은 그들의 사상으로 세뇌되어서 거기에만 충성하고 아무런 자유도 못 누리고 사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빨리 통일이 되어서 북한에 계신 그들도 우리처럼 자유를 만끽하고 이런 세상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또 고향과 가족을 떠나 외국 타지에서 외화 벌이에 여념이 없는 여성 근로자들도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는 탈북여성 김시연 씨 북한 보안 서에서 근무하다 탈 북해 한국에 정착한 김시연 씨와 함께 오늘 여성시대에서 해외 북한 여성근로자에 대한 얘기 들어봅니다.
북한에서는 외화 벌이를 나가기 전에 러시아나 중국 일본 등지에서 들여온 원 자재를 가지고 북한 내 공장에서 일을 하는 여성들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김: 예전에 김일성 김정일 시절 북한 자국 내에서 러시아 피복 공장에서 옷 만들 천을 보내오면 북한 사람들이 만들어 보내고 그리고 일본에서도 옷감이 들어오고 해서 북한 내 옷 공장에서 여자들이 입사를 해서 일 하는 것이 많았어요. 80년대 그 때...
그 당시에도 여성들이 외국으로 보낼 옷을 만드는 일을 선호 했고 늦을 밤 까지 일을 해도 다른 여성들 보다 좀 특별한 옷을 입을 수 있는 기회도 있어 모두가 하고 싶은 일 이었다고 전합니다.
김: 그 옷 공장에 들어가면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면에다 꽃을 프린트해서 찍은 천으로 원피스도 만들고 나일론 재질도 들어오고 해서 북한에서 여자들이 옷 공장에 다니면 직업을 잘 잡았다고 해어요. 그런데 노동 강도가 너무 세서 밤에도 야간작업 계속하고 원자재가 풍부하다 보니까 일감이 많잖아요, 북한 자국 내에서의 생산량은 줄어들고 외국에서 기업을 들여와 원자재를 다 보장 받아 가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 때도 그런 공장에 다니면 옷도 좀 특색 있는 것 을 입고 그러니까 여자들이 많이 선호 하는 직장이었거든요, 그런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지고 러시아, 그 때는 소련 이었죠 그 국가들이 다 붕괴 되고 자본주의 화 되면서 그 피복 공장들이 다 어느 순간에 없어졌어요. 그러다 남아 있는 것이 일본 재일 동포 들이 보내는 천 가지고 만드는 옷 공장들만 평안남도 남포 쪽에 있었거든요.
그 후 러시아의 벌목공이나 낙후된 발전도상의 국가에서 북한의 의사들이 나가 일을 했었는데 북한에서 하는 것 보다 임금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외화 벌이 일꾼으로 나가기 위해 뇌물까지 동원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 이었다고 말합니다.
김: 예전부터 러시아에 벌목하러 많이 나갔거든요 그리고 리비야 라든가 이런데 의사들이 의료 일꾼으로 나간다 그랬고 좀 미개한 나라 발전도상의 아프리카 그런 쪽도 북한의 의사들이 기술을 가지고 의료지원을 해 준다고 해서 나가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때 그 사람들이 외국이라고 해서 나가면 달러 도 벌어오고 북한에서 의사직업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많이 낫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곳에 나가지 못해 엄청 노력을 했어요. 특히 리비아 같은 나라는 그 당시 서로 가지 못해서 그랬거든요 여자 의사들이 특히 산부인과 쪽으로 해서 많이 나가려고 노력하면서 뇌물공세를 하면서 나갔어요.
의사 외화 벌이 일꾼들은 그 나라에서 받은 돈을 국가에 거의 다 바치고 나머지를 받는다고 해도 북한에 돌아오면 정 말 잘 살았다고 하는데요,
김: 제가 아는 사람이 함경북도 청진 쪽 조산원 기술부원장이었어요 제가 중국에 들어 오기 전에 리비야 간다고 수속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평양에 가서 강습을 몇 개월 받고 또 성분이 좋아야 되요 토대가 좋지 않으면 그것도 갈 수 없어요. 기술이 능하면 여자 분들도 가고 어떤 집은 부부가 모두 의사일 때 리비야로 가서 돈 벌어 온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북한에 있었을 그 때는 외국에 노동자로 가든 의사로 가든 벌목으로 가든 아무래도 북한에는 외화를 만저 보기 힘들었을 때니까 우리는 배급으로 살 때 외국 노동자들은 달러나 다른 나라 외화를 벌어오니까 동리에서 소문나게 잘 살았거든요 남부럽지 않게 해 놓고...
김시연 씨는 중국에 있었을 때 그리고 한국에 나와서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 그 외 여러 국가에 많은 북한 여성들이 나가 외화 벌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는 군요.
김: 중국에 있을 때도 중국 사람들이 북한 식당이 있다며 저희 보고 가 보겠느냐고 했는데 저희는 그때 신분이 없다 보니 무서워서 가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김정은 시대로 들어서면서 최근에는 외국에 나가 일 해도 악착같이 외화를 뺏어 해외 노동자들이 돌아올 때는 실제로 손에 들어오는 것은 얼마 안 된다고 해요. 그래도 노임으로 받는 것으로 대사관 운영비등을 내야 되는 경우도 있다는 군요. 김: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만 나가 있으면 너 네가 돈을 벌어서 나라에 바치라고 하면 대사관 운영비도 주지 않아 대사관 직원부인들이 나가서 장사도하고 술도 제조해서 판다고 많이 얘기가 들려요. 예전에 김일성 김정일 시대는 그래도 외화를 조금이나마 들고 왔었거든요 북한에 돌아올 때는, 그런데 김정은 시대, 최근에는 달러를 거둬들이느라 정신이 없데요. 나가서 사는 사람들이 형편이 어떤 지 상관하지 않고 한 달에 몇 백 달러 바치라고 규정을 내려서 그것을 하지 못할 때 비판 무대에 올려 처벌하고 이러니까.
중국이나 동남아 외 해외 식당의 여성 근로자들은 북한 음악 등으로 북한 체제 선전을 위한 공연까지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죠. 하지만 본국의 무리한 외화 벌이 지시 때문에 여성들의 근무 태도가 예전과는 많이 변질되고 있다는데요,
김: 접대를 하면서 공연을 동반하는 거죠. 그런데 접대 수위가 엄청 높아졌다고 해요 예전에는 북한 식당에 오는 한국 사람들이 같은 동포니까 동남아나 중국의 북한 식당에 가면 북한에서 왔어요? 북한 어디서 살았어요? 북한 어때요? 등등 물어보면 예전에는 모두 피했데요, "되었습니다, 그런 건 물어보지 마시라요" 이렇게 얘기를 한데요 그런데 최근에는 옆에 붙어가지고 술 한 잔 더 드십시오, 하면서 술병 들고 와서 더 마시라고 한 병이라도 더 팔려고 하고 음식도 질이 예전 같지 않게 재료, 원자재를 적게 써가지고 성의 없이 만들어서 가격만 비싸게 매겨서 팔고 있다고 완전 상품화가 되어서 달러를 더 벌어서 바치라는 지시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해외 근로자들의 고용계약은 길면 6년 이고 보통 3년 정도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여성들은 일정한 연령이 되면 국내로 불러들여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다시 사상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 26살 쯤 되면 국내로 불러드려 사회로 내 보내지 않고 2년 동안 완전 기숙사 생활을 시키면서 너희들은 외국 나가 자본주의 문화를 많이 보고 듣고 왔기 때문에 용광로에서 달구듯이 완전히 개조해야 만이 북한 사회에서 지위를 차지하고 일 할 수 있다는 의미로 기숙사 생활을 시키면서 혁명 학습 김일성 주체 사상 김일성 노작 등을 계속 공부 시킨대요 머리에 자본주의 물이 든 것을 완전히 세척 시켜서 다시 북한 사회에 내 보낸다는데 목적을 두고 그렇게 교육을 시킨대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하다 물든 사상을 다시 교체하는 합숙 훈련을 견딜 수가 없어 동남아 국가 근무지에서 탈출해 아예 탈 북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합니다.
김: 동남아에서 한명이 탈출을 했는데 나는 북한에 돌아가기 싫다 가면 2년 동안 잡혀 혁명과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서 빠져 나가고 싶다 그 근로자들이 북한으로 들어가기 싫다고... 들어가면 감옥이나 다름없이 갇혀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번에 동남아에서 탈출한 여성도 그런 얘기를 하면서 북한에 다시 갈 수 없어 탈출 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유세계에 나와 보니 부모 형제를 떠나 고향을 버릴 수밖에 없는 여성 해외 근로자들의 상황을 이제는 모두 이해 할 수 있다고 김시연 씨는 강조 합니다.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