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북한인권기록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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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한국의 국가인권 위원회가 지난달 15일 북한인권침해 센터와 북한인권 사례와 증언을 기록하는 북한 인권 기록관을 열고 탈북자는 물론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이 북한인권 침해센터에 김정일의 반인륜 범죄를 조사해 달라고 탈북 여성 가명의 박소미 씨가 제일 먼저 정치범 출신 탈북자 3명과 함께 진정서를 냈습니다.

박: 지금 피부를 째는 수술이 15번째입니다,15번째 이니까 사람으로서 너무 힘들어요.

여성시대 오늘은 박소미 씨가 북한에서 어떤 인권침해를 당했는지,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 센터 에서는 이런 인권침해 상황을 어떻게 조사하는지 알아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즉 인권위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교화소, 국경 등지에서 벌어지는 고문과 처형 등의 인권침해 사실을 수집, 기록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 공식 제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권위의 북한인권 이용식 팀장은 지금까지 접수된 사안들을 조사관들에게 배당해 조사하고 있다고 자유 아시아 방송에 밝혔습니다.

이용식 팀장: 북한에서 직접 발생한 것은 북한을 직접 갈 수 없으니까 그분들이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나 한국의 정보기관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를 통해 기초 조사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A라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당한 인권침해에 대해서 그곳에 수용되었던 다른 사람도 계시지 않아요. 그런 제 삼자의 증언을 통해 기초 조사를 하는 단계입니다.

기초 조사를 한 후에는 한국 정부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정부에 권고를 하고 그리고 고발할 수 있는 부분은 경찰에 의뢰하는 등 사안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권위에서 더 이상의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는 조사를 중지하고 통일 이후에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겁니다. 그동안 이런 일들은 민간단체에서 해왔지만, 국가기관에서 하기는 처음이라고 이 팀장은 전합니다.

이 팀장: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복권이나 보상, 명예회복, 가해자 처벌을 위한 객관적인 심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이후에는 피해자가 나오면 피해자에 대해서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또 가해자에 대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증언이나 자료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해 객관적인 심사 자료를 미리 확보할 수 있습니다.

모든 탈북자들은 남한에 와서야 인권이 무엇이고 자신들이 당한 인권침해가 얼마나 엄청난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본 거죠. 탈북자들은 한국 헌법에 북한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이런 인권침해 사례가 계속되는 것을 알면서 외면하겠느냐며 남한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해왔습니다. 그러다 2009년부터 한 사람씩 면담을 하면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며 그간의 경위를 이번에 진정서를 낸 박 소미 씨가 설명했습니다.

cut: 북한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사람들이 당시 몇 백 명 되는데 그중 문건으로 작성할 사람이 70명 선정되었습니다. 그 70명중에서 다시 세밀한 면담을 통해 내가 면담할 때 30명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중에서 다시 조사 해서 극심한 인권 침해를 당한 사람들로 올해 3월15일 결정됐습니다.

박소미 씨는 탈북 했다 99년 중국에서 강제 송환돼 교화소로 끌려가 받은 고문, 구타도 괴로웠지만 계속되는 굶주림으로 비참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고 전합니다. 단순히 탈북을 했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죠.

CUT: 북송되자 저는 일이 안되려니까 그때 김정일이 월경자들을 몽땅 교도소에 집어넣으라는 지시가 떨어졌었어요. 내 앞까지는 강제 북송 당해서 해당 지역의 도나 군 안전부에서 와서 데려갔는데 저가 북송된 때는 김정일의 방침에 의해서 교화소에 모두 처넣으라고 해서 꼼짝없이 교화소에 갔죠.

교화소에서 먹은 음식은 쌀이나 보리 한 톨 섞지 않은 통 강냉이밥에 반찬은 새까만 소금국이 전부였습니다.

cut: 강냉이 가루도 아니고 알짜 통 강냉이 짓찧어서 프레스 바, 구공탄 찍듯이 동그란 밥을 주었는데 반찬은 새까만 소금국이에요. 그리고 12-13 시간 죽도록 일해야 하죠.

이렇게 먹고 힘든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먹을 것밖에 보이지 않아 사람이 아닌 꼭 짐승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립니다.

cut: 토끼가 먹을 수 있는 풀은 다 먹고 개구리, 뱀 ... 개구리를 먹어야 힘이 있고 살 수 있는데 저를 비롯해 교화소에 갔던 사람들은 쥐, 뱀, 개구리 안 먹은 사람이 없어요. 사람정신이 아니고 짐승이에요 내가 저것을 먹어야 산다, 그때 교도소에서는 내가 내 정신이 아닙니다.

박소미 씨는 이런 파충류를 날 것으로 먹다 보니 스파르가눔증에 걸린 것입니다. 스파르 가눔은 기생충 종류의 애벌fp인데요, 주로 뱀이나 개구리 살 속이나 껍질 속에 많이 들어 있습니다.

박: 개구리 날것으로 먹는 것도 마음 놓고 먹는 줄 아십니까? 옆에 따라 다니는 감시도 있고 총 들고 다라 다니는 경찰도 있어요. 그 경찰 눈이 띄면 맞아요. 그래 경찰 눈에 안 띄게 먹다 보니 숨어서 급하게 먹으니 벨이나 건져 내고 먹나요? 몰래 가만히 먹죠. 그 생 거를

개구리나 뱀에 들어 있는 스파르 가눔은 살아 있는 기생충이 개구리를 산 채로 먹을 때 사람 몸속으로 들어가면 그 몸속에서 기생하게 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박소미 씨는 전합니다.

박: 이런 기생충이나 알은 사람 몸에 들어가 배설되는 것이 아니고 몸 살 속에 박혀서 어떤 기생충은 핏줄을 따라다니고 어떤 것은 피부에만 기생해 사는 것이 있고 제 몸에 들어간 기생충은 피부에서만 살고 있는 거예요.

이 증상은 아프기도 하지만 우선 자신의 몸 안에 이런 기생충이 계속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주 끔찍한 거죠.

cut: 간질간질하면서 따끔따끔 아파요 그래서 그 부위를 만져 보면 뭉실뭉실하면서 살갗이 좀 볼록하게 올라오거든요 .

처음 수술을 하고 그 실체를 보는 순간 온몸이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고 박 씨는 전합니다.

cut: 지렁이 같기도 하고 실 뱀 같기도 하고 길이는 20cm, 15cm도 있고 오래된 것을 길이가 길어요. 금방발견해서 꺼내면 7cm, 10cm짜리도 있어요 넓이는 0.5mm 정도 에요.

박 소미 씨는 그동안 일반 병원에서 진료받고 수술을 여러 차례 했는데요, 그때마다 의사들은 기생충이 나타났을 때 마다 수술 해야지 다른 방도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cut: 내가 이렇게까지 되어야 하나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아프지 않았을 때는 모르겠는데 여기저기 아프니까 왜 힘들게 여기까지 와서 좀 살 만하니까 북한에서 당한 것이 꼬리를 물고 지금까지 그 참혹함이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있으니 내가 이렇게 까지....지금은 치료라도 받고 있지만 나중까지 견디어내 살 것인가 하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나요.

박 소미 씨는 이 기생충이 발견되면 바로 수술하고 치료를 해야 했는데 교화소에서 나와 다시 탈북해 중국으로 가서 오랜 기간동안 머무는 바람에 치료시기를 놓치면서 이 기생충이 온 몸속에서 기생하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cut: 제가 북한의 교화소에서 나온 지 10년이 넘는데 이 기생충이 발견된 것이 3년 전이에요. 그러니까 5-6 년 동안 몸 안에서 자라다나니까 여러 곳에 퍼졌던 것이 점점 자라면서 계속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수술받고 그 정도면 다시 안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하네요. 박 씨는 이번에는 남한의 큰 종합대학 병원에서 수술받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 씨는 남한으로 가서 조용하게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하고 남한에 정착에 모든 노력을 기우렸지만 그동안 10번이 넘는 수술을 하면서 육신 적으로 마음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호소합니다.

cut: 사람으로서 너무 힘들어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지금 몰라서 수술 못 받고 있어요. 남한에 온 탈북자 중에도 있고 현실적으로 북한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요.

밖 소미 씨는 탈북해 강제 북송 당해 7개월의 교화소 생활에서 얻은 병으로 치료하고 수술을 해도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은 분명히 반인륜적인 범죄라며 그 책임을 북한 당국과 김정일에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