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탈북 기독교인의 종교탄압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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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지난달 말 북한자유주간 행사가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해마다 4월 말경에 열리는 북한자유주간은 1회부터 6회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었는데요, 올해, 7번째는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유린 실태를 세상에 낱낱이 밝혔습니다. 특히 북한자유주간 셋째 날에 탈북여성 인권연대가 주관한 '나는 고발한다.' 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 에서는, 북한여성들이 당한 인권 참상을 전해 많은 사람이 충격을 더했습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 이 행사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의미를 짚어 봅니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주관한 탈북인권연대 강수진 대표는 그동안 북한 자유주간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여성들이 인신매매 당한 사례들을 많이 증언했는데 이번에는 기독교인 여성의 증언이 눈길을 끌었다고 전했습니다.

강수진 : 이 여성은 하나님이 좋아서 믿었다기 보다 먹고살기 위해서 성경공부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먹을 것을 준다고 하니까 하나님을 믿어 그 조직이 다 드러나서 감옥살이를 한 사람이 있었는데 새로운 증언이었어요.

강 대표는 세미나에서 기독교 신앙문제로 중국으로 탈출했다 잡혀 북송 당한 여성의 참상을 동영상으로 상영했다며 선교사들이 중국 사람들과 북한 사람을 통해 물자를 내 보내며 기독교를 전파한 여성의 증언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강: 북한 내부에서 한 명 한 명 기독교 조직들이 늘어났는데 그것이 다 드러나면서 잡혀서 감옥살이도 하고 그런 상황을 증언했습니다.

탈북여성 가명의 윤정화 씨의 증언을 직접 들어보죠.

윤정화: 왜 북한에서 건너오게 되었느냐 하면 엄마가 이미 건넜잖아요. 엄마가 중국에서 기독교 줄을 잡았어요. 그래서 저를 도와주라고 북한으로 보낸 분들이 기독교 성경책을 가지고 와서 나를 교육 시켰어요. 돈도 대주고 ...

이렇게 북한에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한곳에서는 10명도 넘게 그 수가 늘었다고 하는군요. 윤 씨는 중국에서 보낸 돈으로 몰래 모인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면서 전도했습니다.

윤 씨 : 기도하고 여유가 있으니까 도와주면서 전도했죠. 어느 날 오빠와 친구가 왔는데 제가 중국에 가라고 했죠. 그런데 실지로 중국 교회에 가서 대접받고 미 달러를 몸에 지니고 북한으로 건너 와서 너에게 이만큼 주라고 하더라, 그래서 800위안을 받았죠. 그런 식으로 교회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비밀리에 모여 전도하는 일이 드러나 남양에서 일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관련된 가족들이 다 잡혀갔지만, 다행히도 잡혀간 사람들이 윤정화 씨에 대해서 일체 얘기를 안 했다고 합니다.

윤 씨: 거기 전도하는 사람들이 남양 뿐 만 아니라 삼봉, 온성 그쪽으로 쭉 깔렸더라고요 그 사람 가족이 다 잡혀가서 고문받고 병신이 되어서 나왔어요. 그런데 잡혀간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안 불었대요.

강수진 대표는 이 여성이 북한에서 종교적인 문제가 터지자 몸을 피하기 위해 중국으로 들어갔다가 그만 인신매매로 팔려 거의 모든 탈북여성이 당하는 어려움을 겪고 병까지 얻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다시 윤 씨의 얘기입니다.

윤 씨: 우리말도 모르고 가만히 서 있었어요. 다 7천 원, 8 천 원씩에 팔았어요. 저는 6.000위안에 팔렸더라고요. 0:20 팔려가서 이틀 만에 맹장이 터져 알아 누웠어요. 열이 나고 하니까 병원에 가서 한 만 원 돈 썼어요. 수술하는데

수술한 뒤 윤정화 씨는 언제든 여기를 도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애기를 낳았지만 더욱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망칠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도망할 길을 찾던 중에 먼저 중국에 와 있던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윤 씨의 어머니는 교회에서 일을 거들며 살고 있었는데 딸이 팔려가서 사는 것을 보니 너무 기가 막히더라는 겁니다.

윤 씨: 나는 팔려간 곳에서 건강이 더 나빠져 가죽만 남았었어요. 오히려 북한보다 더 스트레스 받고 그러다 팔려간 집에서 (중국 공안에) 잡혔죠. 그래서 파출소에서 나 거기 시집 간 지 10년이 되었는데 아기를 못 낳는다, 그 후에 경찰서에서 도망쳐 어머니가 있는 교회에서 숨어 살았어요.

그러다 한국으로 넘어갈 기회를 잡게 됩니다.

윤 씨: 2004년도에 대사관에 북한 사람들이 들어가서 넘어가게 되었어요. 우리도 저렇게 가면 좋겠다, 그래서 그 동네 있는 사람들 전화해서 우리가 모집해서 6명이 떠나게 되었어요.

이렇게 길을 떠나 대사관으로 향하던 차에

윤 씨: 길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공안과 까만 차들이 포위하고 있었어요. 처음에 제안한 사람이 조선족이었는데 우리를 모집한 조선족이 공안과 짜고 한 거예요. 이미 포위하고 있어 어디로 튈 때가 없어요.

결국 윤정화 씨는 북한 감옥으로 이송됐습니다. 보위부에서는 이 여인이 바로 그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윤 씨: 보위부에서는 내가 도망친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도망친 다음에 알았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것을 ...

윤 씨가 갇힌 감옥은 이에 벼룩이 득실거리고 그곳에서의 고문은 너무도 참담했습니다. 더구나 북송된 탈북여성들이 지닌 돈을 찾기 위해 보위부는 별별 짓을 다 했다고 증언합니다.

윤 씨: 거꾸로 엎드리게 해서 팔 뒤로 하게 하고 무릎 꿇고 각목으로 종아리를 치고 사람들이 감옥에 돈을 가지고 가면 살길이 열린다기에 나는 돈을 작게 말아서 자궁에다 넣어갔어요. 피임기구인 고무 피임 통에 돈을 넣어서... 보위부에 들어가니 '모조리 다 벗고 똑바로 서라, 그리고 팔을 등 뒤로 해서 앉았다 섰다 백번을 시켜요.

지시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거꾸로 세워놓고 손으로 다 뒤지는데 이 여인은 돈이 나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안 나왔다고 합니다.

윤 씨: 며칠 뒤부터 출혈하기 시작하는데 출혈하면서 보름 지나니 나는 일어설 수도 없고 밥도 못 먹고 잘 못 들어가 출혈을 하는 겁니다. 보위부 관리가 왜 그러느냐고 해서 '사실은 중국에서 자궁암진단을 받았어요.' 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보위부원이 구급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원장선생이 나이가 많으신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진료실 문 앞에서 보위부 사람들이 지키는 가운데 막 하나를 치고 병원장이 들어와서 진료했습니다.

윤 씨: 병원장이 보더니 이 안에 뭐가 있다 그래서 무릎을 딱 꿇었죠. '선생님 나 좀 도와주세요.' 그러니까 병원장이 '그렇게 못 한다 내가 잘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러나 그 병원장은 불쌍하다며 마이신 주사를 놓아주고 병원장, 부원장이고 회의실에 다 모였다는 겁니다.

윤 씨 : 보위부에서도 나를 진단한 것을 그 병원장이 책임져야 한다며 자궁암이라는 진단서를 쓰라고 하니까 다 쓰더라고요.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 그때 막 울었어요.

살길이 열린 것입니다, 윤 씨는 5명이 있는 곳으로 옮겨 그 곳에서 두 달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보위부에서는 윤 씨의 처리 문제를 놓고 계속 회의를 했다는데요,

윤 씨: 나를 죽여야 하는가, 아픈데 집으로 보내야 되나. 그래서 잠시 집에서 머무는 것으로 병보석으로 나왔죠. 오빠 집에 가서 치료받으며 쉬었습니다.

보위부에서는 정말 자궁암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이제 출석을 부르지 않을 테니 어디 가지 말고 집에 꼭 있으라고 해서 윤 씨는 오빠 집에 머물게 됩니다.

윤 씨: 오빠는 얼마나 불쌍한지 먹지도 못하고 탄광에 들어가서 탄 괴를 몰래 빼와서 옥수수 한 키로 바꿔 먹으며 사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어요.

윤 씨는 오빠의 사정이 딱해 생각 끝에 어느 새벽 구급병원의 병원장을 찾았습니다. 자궁에서 뺀 돈 일부만이라도 찾고 싶었다는데요, 그 병원장이 이 여인을 보고 깜짝 놀라더라는 겁니다.

윤 씨 : 너 어떻게 나왔느냐고 그래 나 좀 도와주세요. 병원에 갔다가 통에다 그대로 담아 놓았더라고요 그것을 꺼내니 그대로 돈이 있어요. 그것을 선생에게 500위안을 주고 나는 300위안을 가지고 왔어요. 그것으로 곡식을 사서 오빠와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어머니는 중국에서 나를 잡아 (북한으로)가게 한 조선족을 찾아 낸 겁니다. 그래서 당장 나를 찾아오라고 시켜서 한 달 만에 나한테 왔어요.

이렇게 해서 두 번째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갔다가 2008년 도에 한국으로 들어간 증언이었습니다. 강 대표는 이들을 직접 인터뷰한 것을 동영상으로 상영을 했는데요, 참석한 사람 중 에도 이런 북한 여성들의 참담한 인권 피해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강 대표는 안타까워했습니다.

강 대표: 국회에서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탈북 여성들의 북한에서 인권 상황이나 중국에서의 인신매매 상황들을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다 아는 것 같아도 다 모르거든요.

그는 이어 이번에 서울에서 처음 열린 북한자유주간에서 한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했던 사람들이나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어 의미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강수진 회장: 보면서 울기도 하고 그런 상황인 줄 몰랐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북한자유주간이 열리다 보니 이번 기회에 한국 국민과 대한민국 정부와 한국교회들에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올해 7번째로 맞는 북한자유주간 행사였지만 아직도 북한 내의 인권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강 대표,

강 대표: 이런 인권 주간을 통해서 한국사회는 물론 모든 국제 사회에 알려야 한다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대표는 북한의 인권 이라고 하면 우선 크게는 정치범 수용소, 교화소, 노동단련대 등에서 강제 북송당한 탈북여성 인권 참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 합니다. 90년대 후반부터 이런 곳에 수감되어 있는 탈북자들은 거의 중국에서 북송 당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북한 내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국 내 탈북자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강 대표 : 지금 현재는 북한 내부의 인권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인권개선을 하라고 하면그들이 말을 듣지도 않죠. 탈북여성들을 계속 인터뷰를 하다 보면 다 중국에 왔다가 잡혀서 북한으로 나가 교화소에 가고 노동단련대로 가고 한국에 가다 잡힌 사람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가고 다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북송시키지 말고 난민으로 인정해주면 수용소내의 북한 인권 문제, 큼직한 문제들은 어느 정도 개선되지 않겠나 생각하고요

탈북여성인권연대의 강수진 대표는 중국의 탈북자 문제는 북한자유주간이 열릴 때 마다, 북한의 인권문제가 나올 때마다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도 달걀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탈북자를 북송시키지 말고 난민지위를 주라는 탈북여성들의 외침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