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북송선 탔던 재일교포 고정미 씨 “지구 끝까지 북한 실상 알린다”

0:00 / 0:00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지난 1960년대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조총련의 거짓 선전을 믿고 온 가족이 북송선을 탔던 재일교포 고정미 씨, 37년 동안 북한에서 철저하게 짓밟혔던 인권과 그동안 살았던 북한의 실상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기 위해 오늘도 집을 나서 강연장으로 향합니다.

cut: 북한을 경험한 사람의 말을 주어진 시간에 대충 해도 치를 떨어요.

일본이름 지바 유미꼬, 한국이름 고정미 씨는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 강연한 횟수는 셀 수가 없지만 지금도 자신을 불러준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북한의 실상을 알린다는 각오입니다. 여성시대, 재일교포 고정미 씨의 북한 실상 알리기 강연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일본에 사는 고정미 씨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부지런히 하고 있습니다. 일하면서 강연을 하다 보니 강연 날짜가 잡히면 열 일 을제치고 강연이 우선입니다. 처음에 강연 시작할 때와는 달리 일본인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달려졌습니다.

cut: 이제는 점점 모든 일본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일본의 인권에 관심이 있는 단체들 그리고 납치자에 대해 북한을 알아야겠다는 사람들과 그런 단체들이 있잖아요. 그런 단체는 북한에 대해서 알려고 그리고 강연에 참석하는 분들이 북송된 가족들이 대부분 많이 와서 듣고 슬그머니 안부도 묻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나 재일교포입니다. 라고 말은 안 해도 말씀하시는 투를 보면 아 이분도 재일교포인데 북한의 남아 있는 친척을 걱정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죠.

고정미 씨의 강연은 일본에 있는 대북인권 단체가 주선하고 있지만 참석자들은 각계각층으로 반응도 다양한데요, 북한에 북송 교포 가족이 있는 사람들, 북한에 납치된 가족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가슴 답답한 사람도 있는 반면, 일반인들은 대충 언론을 통해서 알고는 있지만 진실과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전합니다.

cut: 일본 국민은 북한에 대해서 지금은 뉴스도 많이 나오고 하니까 좋지 않은 상황이구나 정도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북송되어서 간 60년대부터 그때 북한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 밖에 여러 나라보다 생활형편이 괜찮지 않았느냐 하는 인식이 많아요. 그런데 그것이 사실과는 반대였다는 것을 알고는 격분하시는 분들이 많고요 지금도 그때 생활과 변함없는 그 생활 속에 일본 국민들이 납치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잠도 안 온다고 강연 끝난 뒤에 저에게 힘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강한 인상을 받고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가다듬곤 합니다.

북송선을 타게 만든 당시 귀국사업은 북한당국이 조총련을 앞세워 교포들을 속인 최대의 유괴 사건이었다고 탈북여성 고정미 씨는 강조합니다. 30여년이 넘게 북한에서 살아온 고 씨는 겨우 3살 나이에 부모 형제와 함께 북한 땅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그 악몽의 세월을 강연에서 풀어놓는데요, 30년의 세월의 그 증언은 시간의 벽 앞에서 막히게 됩니다.

cut: 제가 북한에 도착했을 때 3살 어린 나이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 북한 땅에 떨어질 순간에 느꼈던 부모님의 말씀이나 제가 직접 인민학교 때부터 일본에서 왔다고 따돌림, 집단 따돌림을 받으면서 제가 살아온 것을 시기별로 간단히 얘기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많이 모자라요.

북한에서 귀국자들에게 퍼붓는 극심한 차별과 감시, 그것도 모자라 학창시절에는 같은 학생들로부터 받았던 따돌림, 북한 옷보다 좋은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옷을 벗기고 찢으면서 괴롭혔던 기억들을 전합니다. 일본 사회에도 흔히 있는 따돌림 정도라고 생각한 참석자들은 구체적인 증언에 한숨과 낮은 신음소리도 터져 나옵니다. 이뿐만이 아니고 당시 청진항에 같이 도착한 고 씨의 오빠가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며 울다 항구에서 바로 사라졌다가 8년 만에 유골도 없이 사망통지서만 날라 왔던 쓰라린 가족사도 강연에서 빼놓지 않습니다.

cut: 오빠가 북한에 배가 도착하자마자 일본에 다시 보내 달라 여기 이상하다 이 배를 타고 일본에 다시 가겠다고 하자 북한에서 인간 동물원 같은 수용소로 데려가 비참한 생을 마쳐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 그 말부터 시작하게 되거든요

일본에서 어렵게 살던 교포들에게 북한에 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잘 살 수 있다, 자녀의 교육도 무상으로 대학까지 시킬 수 있다는 그 지상 낙원에서 가족들을 하나 둘 씩 비참하게 잃어버린 충격이 아직도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cut: 76년 때 도끼만행 사건이 있었지 않아요. 3.8선 분계선에서 그때 제가 중학교 졸업하는 해였어요. 그 당시 비상사태 때 아버지가 간첩이라고 무작정 보위부에 끌려가서 고문받고 나오셔서 사람 아닌 형체 없는 살이 찢어지고 예전 사극에서 받았던 그런 고문 등을 잠깐 전해도 사람들이 분노하죠.

특히 북한의 실상을 잘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꼭 알려야 한다는 고정미 씨는 청소년들이 북한의 실상에 대해 눈을 떠야 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세계의 깡패 같은 집단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cut: 일본에서 최초로 고등학교에 가서 한번 강연했어요. 그 학생들이 강연을 듣고 마음가짐을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제가 다니면 강연을 하면 모두가 알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또 한 번은 일본 도쿄에 있는 한국 학교에도 한번 가서 말을 했어요. 북한의 유명한 아나운서라는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남조선 괴뢰라고 방송에서 서슴지 않고 말하는 그런 것들이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고 지금 이 순간도 북한 학교에서 그렇게 교육을 하고 있거든요. 북한에 있을 때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일본에 와보니 현실하고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니까 한국학교 학생들도 소리치면서 아 전혀 몰랐다고....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학교에 찾아갈 겁니다.

고정미 씨는 북한에서 상상도 못했던 어려움 속 에서 잘 살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버텼다고 말합니다. 버티지 못하면 오빠, 아버지가 그랬듯이 비참한 죽음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그는 신의주 사범대학에 갔습니다. 졸업 후 체육 단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북한에서의 이런 경험이 학생들에게 하는 강연에 더 호소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cut: 학생들 앞에서 처음에 긴장되지만 북한에서의 교사하고 여기서는 전혀 다르기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학생들 앞에 나서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시작하면 학생들의 마음과 제 마음이 일심동체가 되는 그런 느낌, 그러니까 저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경험한 것을 그대로 알려주면 된다고 그 순간순간에 느끼게 됩니다.

고정미 씨는 귀국자라는 신분에다 아는 다른 귀국자들 도와준 일로 직장을 잃고 추방당했습니다. 당과 법 기관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오히려 당 간부들이 추방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때 고정미 씨는 죽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탈북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강연에서도 꼭 해야 하는 증언이지만,

cut: 아직 일본에서는 탈북하게 된 동기는 잠깐 말할 수 있지만 일본 사람들은 북한 내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생각을 했다가 여기 와서 느낀 점은 무엇이고 확실하게 다르다. 그런데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그에 대한 내용으로 강연해도 시간이 없어요. 너무 짧아요. 그래서 탈북과정에 대한 마음 쓰리고 목숨이 순간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경험에 대해서는 잘 말을 못하고 있어요.

탈북 과정도 위태로웠고 목숨을 내놓을 만큼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 탈북도 실패,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습니다. 신의주 보위부에서 조사받고 한 달 동안 독방에 갇혀 있게 됩니다. 그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지금도 긴장하면 온몸이 쑤시고 가슴이 조여 옵니다.

cut: 저는 강연하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그냥 북한의 실상을 알리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직접 강연할 때는 그때 본 상황 그때 느낀 것 그때의 환경을 눈앞에서 다시 보면서 얘기를 해야 되잖아요 눈앞에 떠오르니까요 그것이 저 개인적으로 얼마나 타격이 되는지 상상도 못 했어요 .

그래서 강연을 할 때 당시의 일들이 되살아나 강연이 끝나면 한 달씩 앓아누워야 하는 탈북여성 고정미 씨, 이렇게 지속하는 강연활동으로 조총련계로부터 드러나지 않는 위협을 늘 받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미 각오한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cut: 조총련이 우리가 너를 위협한다는 것이 없다기보다는 그것을 피하는 거죠. 그 인간들이 눈에 뜨이게 나서서 하지는 않아요. 협박전화는 보통일이고 여러 가지 장애가 엄청 심하고 하지만 각오하고 나섰기에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저는 한 발자국도 밖의 출입을 못해요.

그리고 가장 힘든 부분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입니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말도 안 나오고 먹을 수도 없고 잠도 잘 수가 없습니다.

cut: 하지만 누군가가 나서지 않으면 누군가가 북한의 실상을 알리지 않으면, 그 누군가가 우리 탈북자가 아닌가 싶어서 나섰죠. 북한의 형제나 친척들은 다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그분들 몫까지 열심히 살자 각오하고 강연을 다니고 있어요.

그의 증언은 계속됩니다. 일본 국내만이 아니라 오라는 곳은 어디에도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알리기 위해 37년의 사실과 진실만을 전한다고 고정미 씨는 밝혔습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