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들어온 탈북자중 로스엔젤스에 제일 많은 탈북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최근 LA 오렌지 카운티에서 이들을 돕는 훈훈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오렌지 카운티의 건강정보교육 센터와 민주평통협의회 여성분과위원회가 탈북자 6가정에 장학금을 전달했는데요, 탈북자들이 미국에서 꿈을 이루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건강정보교육센터 웬디 유 소장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아 민주주의 사회에서 잘 살아보려고 왔고 ...."
건강정보센터 소장이자 평통 여성분과위원장인 웬디 유씨는 올해 까지 3년째 탈북자 가정에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이 일은 로스엔젤스의 시민권자협회의 회장 로버트 홍 변호사와 함께 하는 일인데요, 특히 홍 변호사는 탈북자들을 위해 무료로 변호를 해주면서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등 헌신적으로 이들을 돕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어려운 가정에 아이들 그냥 돈으로 돕는 것보다 공부를 시켜야 하잖아요. 여기서 공부를 시키면 시킬수록 미국을 좋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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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소장은 올해 6가정 중 지난 5월에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들어온 가명의 김현식 씨 자녀들을 돕게 되었다며 이제 막 미국생활에 발을 들어놓은 가정이라고 소개 합니다.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지만 몇 달 동안 이나마 학교를 다닌 두 자녀를 보면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그동안 몇 달 학교를 다녀서 아주 명랑해요 이곳에서 낳은 아이들 같아요. 지금 두 살에 온 애가 5살. 그리고 10살이에요."
김현식 씨가 미국에 정착하게 된 데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작용한 것 같다며 북한을 탈출해 3년 만에 미국으로 오게 된 사연은 김 씨 조차도 상상도 못했다는데요, 유 소장으로부터 얘기 들어보죠.
"아무리 공산주의라도 다 정보는 듣죠. 이 댁은 그곳에서 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 가정은 원래 남한이 아니라 배를 타고 일본을 갈 생각을 했어요. 자유를 찾아서 일본에 가려고 4식구가 그때 막내가 두 살 이었데요,"
김현식 씨 가족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본으로 탈출하기 위해 북한에서 배를 타고 일본 방향으로 탈출하다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어느 곳엔가 내동댕이쳐 있더랍니다.
"배는 다 파산되었는데 깨어나 어느 남해 바다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비무장지대로 떨러진 겁니다. 깨어나 보니 다행스럽게도 이 4가족은 다 살았고 같이 온 사람은 죽었는지 살았는데 모른데요. 이 비무장지대에서는 어느 측이 발견했는지가 중요한데 남측에서 발견한 겁니다."
그래 이 가족의 의사를 물어 남쪽으로 가자니까 북한의 선전만을 믿고 살아온 그들은 남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다 더구나 일본으로 가려는 목적이 분명해 계획을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북한으로 갈 거냐고 하니까 북한은 가자마자 죽으니까 안 간다고 하고요, 판문점으로 가자니까 그것도 못 간다고 해서..."
가장인 김 씨는 식사도 거부한 채 일본행을 고집하다 인권단체인 엠네스티와 연결이 되어서 이 인권단체에서 이들을 만나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그런데요 이 가정이 일본을 가겠다고 계속 우겼지만 엠네스티 인권단체가 일본과의 인권프로그램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아 영국으로 갔어요. 영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들어온 것이 이번 5월 달이었어요."
바라던 일본행은 이뤄지지 않고 결국은 북한은 탈출한 지 3년 만에 미국으로 들어왔다고 유 소장은 설명했습니다.
며칠간 이 부부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김현식 씨 가정이 미국까지 온 것이 너무 신기하다는 유 소장은 김 씨 자신도 이해 할 수 없다며 같이 탈출한 일행은 아직도 생사를 모른다고 전하더라는 것입니다.
난파된 배에서 간신히 살아난 가족, 3녀여 세월을 떠돌다 미국에 안착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이 가정의 주부인 두 자녀의 어머니라고 유 소장은 걱정합니다. 탈출 후유증에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을 하려다 보니 매일 두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특히 영어를 배울 때 더욱 심하게 머리가 아프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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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머리가 아픈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기서 영어를 안배우면 안 된다 이 나라를 처 들어가려면 영어를 배워라, 그런데 영어를 배우러 가면 머리가 쑤시고 병든 사람처럼 아픈거요."
북한에서 대학까지 나온 경력이 있어 영어를 다른 사람들 보다는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유 소장은 이들 가족은 1년 후에는 영주권을 받기 때문에 미국에서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어는 꼭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지금은 단칸방에서 4식구가 기거를 하고 있는데다 아무리 좋은 나라라고 해도 막상 와보니 말이 안 통하는데 도로 갈 수도 없고 우리 남한에서 와서도 괜히 미국에 왔다는 말 하죠 부인은 괜히 왔구나하는 후회도 있겠죠. 그러니 머리도 아프고 몸이 다 아픈 겁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지금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데다 실직지도 매일 늘고 있지만 가장인 김 현식 씨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교회에서 알선해 주어 집고치는 일을 함께하는 하는 팀이 있어요. 하지만 늘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학교 다니며 미국에 더 빨리 적응하자 김현식 씨는 미국에 오기를 잘 했다며 매사에 적극적인 반면 엄마는 모든 것이 걱정스럽고 생소해 온 몸이 아픈 것은 당연하다며 우선 엄마부터 병원에 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유 소장은 말합니다.
"1월 중순경 라파마에서 시티 카운슬을 하시던 분이 전화를 했어요. 우연히 탈북자들에게 도와줄 것이 없느냐구요 그래서 이 여성 이야기를 했더니 많지 않지만 병원비를 보내주겠다고 전화가 왔어요."
유 소장은 탈북자 돕는 일은 자원봉사로 하면서 특히 건강교육센터와 병원 일을 하니까 건강 문제는 어렵지 않게 도울 수 있어 기쁘다고 하는데요,
"가든 그로브 병원에서 일을 해요. 이 병원에서 우리 동네인 라파마를 비롯한 몇 군 데 있어 이 라파마 병원에서 김 씨의 부인 건강검진을 하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로버트 홍 변호사가 시간이 날 때마다 생활에 실질적인 어려움도 헌신적으로 적극 돕고 있는데요, 홍 변호사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죠.
"이들에게 꼭 필요한 쇼셜 서비스 즉,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고 의사 치료나 주거문제 그리고 앞으로는 망명신청이 연기되는 탈북자들도 많아 당장 살기가 힘드니 교육문제 직업알선 그리고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소개해 주는 일입니다."
얼마 전에는 탈북자들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을 초청해 탈북자들을 격려하고 미국 사회에서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홍 변호사는 미국사회의 경험이 없는 탈북자들에게 이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성공한 오렌지카운티의 얼바인 시장으로 당선된 한인, 강석희 시장이 어떻게 아메리카 드림, 미국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는지 직접 듣는 자리였다고 하는데요,
"이분들에게 세상에 절벽같이 막히더라도 도전으로 극복하고 미국에서의 꿈을 꼭 이룩하자, 왜냐하면 미국사회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어 자유스럽게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다 것을 심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강 시장을 강사로 초청한 것은 그가 '유리천장 그 너머' 라는 책을 섰기 때문인데요, 이는 탈북자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잘 극복했기 때문에 도전이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자기가 미국 사회에서 격은 다 훤히 보이지만 넘을 수 없는 장벽 같은 것을 극복해서 미국에서의꿈을 실현 시킨다는 내용인데요, 탈북자들에게도 미국의 생활을 모든 것이 유리천장같이 보일 것 아닙니까 당장은... 강 시장이 여기에서 많이 알려진 사람이라 강 시장의 얘기가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벌써 많이들 반가워해요."
그는 이어 탈북자들에게도 미국에 온 목적이 분명히 있다며 자신이 갖은 미국에서의 꿈은 누구든지 노력 하면 실현 시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식어가고 있어 안타깝다며 이런 행사를 통해 한국 사람들에게도 탈북들에게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홍 변호사는 탈북자들의 망명신청을 도와주면서 한국을 통해온 불법 체류자들도 우선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돕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홍 변호사가 이 일에 발을 들여 놓은 계기는 망명신청을 담당한 미국인 변호사를 돕다가 탈북자들의 얘기를 듣고 아예 자신이 나섰다고 하는데요.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이후 탈북자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이민 변호사들이 많았지만 탈북자들의 망명신청을 할 수 있는 변호사가 없어서 로스엔젤스의 미국 변호사들이 모두 맡았어요. 미국인 변호사가 자원 봉사자가 필요하다고 광고를 냈어요. 그래서 제가 자원봉사자로 가서 일하면서 이분들을 직접만나고 나서 그 분들의 탈출 얘기를 알게 되면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홍 변호사의 부모님들은 실향민으로 고향이 평안도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북한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 주셔서 아직도 북한이 꼭 고향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합니다.
"항상 할머니로부터 들은 북한 얘기로 꼭 그쪽이 정신적인 고향 같아요. 그래서 이분들이 북한에서 왔다고 하니까 친근감이 있어요."
현제 로스엔젤스에는 200여명이 넘는 탈북자중 3분의 1정도는 난민으로 인정을 받아 영주권을 신청 중이거사나 앞으로 신청할 수 있고 3분의 2는 망명신청을 했지만 자꾸 연기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망명 신청한 사람 다 합쳐서 200명이 좀 넘거나 안될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기다리다 지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도 있고 영국으로 간 사람도 있어요. 힘이 드니까."
로버트 홍 변호사는 이들을 만날 때 마다 꼭 영어를 배우고 교육받을 기회를 잃지 말라고 당부 합니다. 특히 주부들이 자녀들과 남편 때문에 기회를 미루거나 아예 놓치고 있어 안타깝다는데요,
홍 변호사와 함께 탈북자들에게 미국사회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며 해마다 장학금을 전달하는 웬디 유 소장도 이들의 꿈을 이루어 가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계속 장학금을 전달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분들이 다 자유를 찾아서 온 거죠. 우리도 다 잘살아 보려고 미국에 온 것 아닙니까? 우리와 똑 같은 기회를 준다면 아주 좋은 거죠."
음악: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